효과가 떨어져 해외에서는 사용을 제한하고 있는 대상포진 백신을 국내 지방자치단체들이 무료로 지원하는 것을 두고 비용 대비 효과성을 분명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쿠키뉴스가 질병관리청으로부터 받은 ‘지자체 대상포진 백신 무료접종 현황’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9개 지자체 총 39개 보건소에서 고령층을 대상으로 대상포진 백신 접종을 무료로 지원하고 있다. 지자체는 구군별로 백신 개별 입찰을 진행한 후 의료기관에 위탁하거나 보건소에서 자체 접종을 실시한다. 접종은 1회에 한해 지원하며 금액은 1만9610원에서 14만원까지 다양하다.
다만 이 같은 지원 사업으로 접종할 수 있는 백신은 ‘생백신’에 한정된다. 조달청으로부터 입수한 ‘2023 지자체 대상포진 백신 입찰공고’를 살펴보면, 사백신 접종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는 보건소는 없다. 39개 보건소별 대상포진 백신구입 내역서와 과업지지서 등을 통해 생백신 혹은 특정 생백신 제품을 구매했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국내에 허가된 대상포진 백신은 미국 제약사 MSD가 내놓은 생백신 제품 ‘조스타박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SK바이오사이언스의 생백신 ‘스카이조스터’, 영국 GSK의 사백신 ‘싱그릭스’로 나뉜다. 업계에 따르면 지자체 무료 지원 사업의 백신 사용 비중은 조스타박스가 높았지만 지난해부터 조스타박스의 공급 물량이 부족해지면서 스카이조스터 점유율이 일정량 늘었다. 싱그릭스는 지난해 12월 국내에 출시된 이후 해당 사업 입찰이 이뤄진 바 없으며 일부 보건소에서 유료 접종사업을 위해 도입한 견적이 있다.
생백신이란 살아있는 병원체의 독성을 제거한 백신을 말한다. 병원균이 살아있는 만큼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접종하면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 면역저하자 등에게는 투여가 어렵다. 생백신은 가격이 저렴하고 1회 접종만으로도 면역 기능이 생긴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예방 효과는 50% 정도에 불과하다. 나이가 들면 백신의 효과는 더 떨어진다.
사백신의 경우 죽은 병원체를 재조합해 만든 백신으로, 면역저하자에게도 안전하다. 또 2회 투여로 80~90%대의 예방 효과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가격이 비싸다. 2회 기준 40~50만원 내외로 평균 15만원선인 생백신과 비교하면 3배가량 높은 수준이다.
지자체들은 사백신을 무료 접종 지원 사업에 도입하기에는 재정적 부담이 크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서울 지역의 한 구청 관계자는 “대다수 지자체가 대상포진 생백신을 지원하고 있다”며 “사백신은 국내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가격도 비싸 부담이 크다”고 했다.
미국, 캐나다, 독일 등 사백신 권장… “효과 높아 가격 부담 상쇄되면 사백신 써야”
대상포진은 신체 노화나 질병 등이 원인이 된다. 고령층에서 자주 발생하는 질환으로, 고령화가 심화됨에 따라 의료비가 늘고 사회·경제적 부담을 증가시킬 것으로 예측된다. 국내에서는 그 부담을 덜고자 일찍이 지자체가 주관하는 예방접종 사업을 시작했고, 현 정부는 국가예방접종사업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하지만 일각에서는 생백신 위주의 접종 지원은 전반적으로 예방 효과가 떨어져 재정 투자 대비 질병 부담을 완화하기에는 아쉬움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미국 예방접종자문위원회(ACIP)는 생백신의 효과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사백신 접종을 권장하고 있다. 실제 미국은 지난 2018년 생백신의 부작용과 효과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2020년 11월 이후 조스타박스를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캐나다 국립예방접종자문위원회(NACI), 독일 상임백신위원회(STIKO) 등에서도 50세 이상 성인에게 사백신 접종을 권장했다.
대구 지역에서 신경외과를 운영하는 A원장은 “예방률이 50% 내외인 생백신은 대상포진 후 신경통을 막을 확률도 66%에 그치지만, 사백신은 두 가지 기능이 모두 90%에 달한다”면서 “나라에서 무료로 지원한다고 좋을 게 아니라 실질적 효과를 보고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 지역 가정의학과 전문의 B원장은 “대상포진은 뇌졸중, 심혈관질환 위험을 키울 뿐 아니라 치매 발생률과도 연관이 깊어 예방이 중요한 질환이다”라며 “특히 면역저하자에게 흔한 질환이기 때문에 이들에게도 투여가 가능한 사백신의 효과성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라고 짚었다.
이어 “지자체 지원 사업에서 사백신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며 “환자가 사백신을 원한다면 1, 2회차 비용을 일부 지원해주거나 1회차를 전부 지원하되 2회차 접종은 자부담으로 두는 방안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피력했다.
대상포진의 국가예방접종 도입에 앞서 사백신에 대한 비용효과성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생백신에 대한 연구는 지난 2019년 질병관리청이 진행한 바 있다.
김우주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예방 효과가 확실한 사백신 접종을 권장한다. 물론 국가 차원에서 이를 부담하려면 비용을 중시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생백신, 사백신 두 종류 백신의 비용 대비 효과성을 따져봐야 한다. 비용이 비싸더라도 효과가 높아 가격 부담을 상쇄하고도 남는다면 사백신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라고 전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