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kg 무게의 짐을 들고 버스에 오르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80세가 되니 발걸음이 늦어지고, 버스를 탈 때 손잡이를 잡고 당겨야 몸이 올라간다.
등산이나 답사에서 앞서가는 젊은이들의 발걸음을 못 쫓아가겠다. 두 시간 동안 서서 연속 강의를 하고 나면 저녁에 허리를 펴고 잘 수가 없다.
플라톤(Platon)이 왜 “지도자는 다리가 튼튼해야 한다”(Statesman, § 306d~307b)고 말했는지 알겠다. 그래서 서서 원고를 쓰는 학자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지난주부터 미사 시간에 앞자리의 경로석에 앉기 시작했다. 봉헌금 내러 나가지 않고 영성체 때 불편하게 나가지 않아도 된다.
몸이 불편해서가 아니라 미사 경전과 신부님의 강론이나 알림이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난청이 시작되었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젠체하느라고 앞자리에 않는 줄 알 게다.
왜 노인들은 귀가 어두워지나? 듣고도 못 들은 체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대우를 받는 것이 편의롭기는 하지만 왜 이리 마음이 허허로운가?
늙었으니 늙었다고 말하는 것을 탓할 수 없지만, 면전에서 대놓고 “많이 늙으셨군요.”라는 말은 듣기에 좀 불편하다. 우리 대학병원 내과 수간호사 이 선생이 침상에 누운 나를 내려다 한 말이 참으로 인상적이고 잊히지 않는다.
“선생님의 얼굴에도 세월의 흔적이 스쳐 가고 있군요.”
얼마나 싯적인가? 얼마나 아름다운 표현인가?
길을 가다가 괜찮은 커피집을 만나면 들려서 혼자 차 한 잔을 마시기 시작한 것이 80세가 되던 해였다. 나는 인생을 왜 그렇게 살았나? 50세에 그 찻집에 들어갔으면 더 좋았을 걸…….
나폴레옹이 어느 날 센트 헬레나의 들길을 거닐며 이렇게 자탄했다.
“왜 나는 한 곡조의 심포니를 깊이 있게 들어보지 못했고, 한 송이 들꽃을 보면서 시상에 잠겨보지 못했는가?”
돌아보니 근검하며 열심히 산 것이 미덕이기는 하겠지만 인생의 어느 부분을 유보한 것이 너무 많다. 그것이 후회스럽다. 내 자식들은 아비와 스키장이나 스케이트장에 한 번 가 본 추억이 없다는 것이 너무 미안하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1942년 충북 괴산 출생. 건국대 정외과와 같은 대학원 수료(정치학 박사). 건대 정외과 교수, 건국대 중앙도서관장 및 대학원장, 미국 조지타운대학 객원교수, 한국정치외교사학회장(1999~2000), 국가보훈처 4⋅19혁명 서훈심사위원(2010, 2019),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서훈심사위원 및 위원장(2009~2021) 역임.
저서로 '한국분단사연구' '동학사상과 갑오농민혁명' '한국사에서의 전쟁과 평화' 등 다수, 역서로 '정치권력론' '한말외국인의 기록 전 11책' '군주론'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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