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수 없으니 지원도 없어요” 관리 사각지대 ‘숨은 치매’

“갈 수 없으니 지원도 없어요” 관리 사각지대 ‘숨은 치매’

치매안심센터 등록 53만여명… 전체 추정 환자 절반 수준
센터 서비스 받으려면 정해진 시간에 환자 직접 방문해야
거동 힘든 환자나 생활고 겪는 보호자 지원체계 접근 어려워
“치료 못 받아 악화”…정부, 장기요양 연계 체계 구축 진행

기사승인 2023-09-24 06:00:02
한 어르신이 치매안심센터를 찾아 검사를 받고 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 직장인 손지민(가명·30세)씨는 86세의 친할머니를 홀로 모시고 살고 있다. 가장이 된 손씨는 휴일도 없이 주말까지 일하는 일상을 반복한다. 지난해 할머니가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생활은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궁지에 몰렸다. 문제는 할머니가 병원을 가보자는 손녀의 손을 뿌리친다는 것이다. 수개월째 제대로 된 검사 한 번 안 한 상황에서 받아야 할 치료도 때를 놓치고 있다. 현재 할머니의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손씨의 마음이 답답하다.

손씨는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지원을 받아 평일 4시간씩 할머니를 돌봐주는 요양보호사에게 동행을 요청했지만, 자신이 강제로 병원 진료를 보게 할 순 없다고 했다”라며 “치매안심센터 등의 지원을 받고 싶어도 등록이 안 되면 불가능하다. 그 시설과 지원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라고 토로했다.

숨겨진 치매 환자들이 치매안심센터를 통해 발굴되고 있지만, 여전히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이미 증상이 시작된 치매 전 단계 ‘경도인지장애’ 환자 중 치료 의지가 떨어지거나 돌봐줄 보호자가 없는 경우 치매안심센터 또는 병원 접근성이 떨어지고 관리도 이뤄지기 어렵다.

중앙치매센터는 경도인지장애(치매 고위험군) 및 치매 환자에 대한 전반적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예방, 사례 관리, 돌봄, 교육 등을 환자와 가족에게 지원하며 전국 256개 치매안심센터를 운영한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65세 이상 치매 환자는 93만5000명으로 추정된다. 전체 노인 인구 901만명의 약 10%를 차지한다. 그러나 치매안심센터에 등록된 환자 수는 절반 수준이다. 지난해 말 기준 53만5959명으로 추정 치매 환자의 56% 정도에 그쳤다.

지자체와 센터는 찾아가는 치매 진단 검사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추정 환자와 등록 환자의 간격을 줄이고 있지만, 추적 관찰이 어려워 놓치는 환자들이 있다. 바로 관리가 되지 않는 경도인지장애 환자들이다.

현재 치매안심센터에는 16만7000명의 경도인지장애 환자가 등록돼 있다. 치매안심센터는 이들을 대상으로 △인지강화교실 운영 △1년 주기 검사 안내 △모니터링을 실시한다. 교육 프로그램과 진단 서비스는 대부분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 맞춰 치매 환자와 가족이 직접 보건소나 약속된 장소로 방문해야 한다.

신체적으로 이상이 없어 참여가 가능하고, 이에 대한 의지와 시간이 있어야 관리를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사실상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이나 생활고에 시달려 환자와 동행할 여력이 안 되는 보호자들은 접근이 힘들다.

서울지역 보건소 치매관리사업 담당자 A씨는 “코로나19 유행 시기에는 센터 직원들이 직접 집을 찾아가 검사를 진행했지만 지금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제공하지 않고 있다”라며 “방문 관리는 병원 진단을 통해 치매 환자로 이름을 올린 사람들을 대상으로 주로 제공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센터에서 ‘간이 정신상태(MMSE)’ 검사를 시행해 경도인지장애로 보이면 병원 방문을 권하는데, 환자들이 병원을 가지 않아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치매로 악화되는 사례들이 있다”라고 전했다.

경기권 보건소 치매관리사업 담당자 B씨도 “경도인지장애를 진단받았더라도 직접 병원에 연계해주진 않는다”라면서 “결국 환자나 보호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센터에서도 추적 관찰이 어렵고 서비스를 지원하기 힘들다. 모든 고위험군을 세세히 케어할 수 있을만한 인력이 부족한 현실이다”라고 언급했다.

임재성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는 “치매안심센터가 생긴 뒤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환자들에 대한 치료 접근성이 높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동기 부여나 관리가 필요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라며 “간혹 완치할 수 없는 병, 나이 들어 생기는 당연한 병이라고 생각해 병원을 찾지 않거나 검사를 거부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는 중증 치매로 가는 지름길이다. 증상에 따라 6개월 또는 1년마다 추적 검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행정복지센터나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 등을 통해 동거자 유무에 상관없이 75세 이상 독거노인을 파악해 1년에 2회에 걸쳐 치매 조기검진 홍보물을 발송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 노인건강과 관계자는 “등록되지 않은 환자를 확인하기 위해 장기요양 시스템과의 연계 체계를 구축하는 중”이라며 “장기요양 등급자를 확인해 등록·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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