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굴 위한 정부인가”…시민·유족, 눈물 속 추모 행진 [10·29 그리고 1년]

“누굴 위한 정부인가”…시민·유족, 눈물 속 추모 행진 [10·29 그리고 1년]

기사승인 2023-10-29 23:05:02
이태원 참사 1주기인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에서 유족 및 시민들이 추모시민대회가 열리는 서울광장 방면으로 행진하고 있다. 사진=이예솔 기자


유족과 시민 4000여명이 두 시간가량 함께 걸었다. 행진 내내 “책임자를 처벌하라” “윤석열 대통령은 사과하라”는 구호 소리가 울려 퍼졌다. 보라색 점퍼를 맞춰 입은 이태원 참사 유족과 노란 점퍼를 입은 세월호 유족, 검은 옷을 입은 시민들이 한데 뒤섞였다. 

29일 오후 3시 서울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시청역 광장까지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 행진을 했다. 10·29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와 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가 주최한 이태원 참사 1주기 시민추모대회 ‘기억, 추모, 진실을 향한 다짐’의 사전행사로, 159명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열렸다.

일부 유족들은 영정 사진을 손에 들고 눈물을 흘렸다. 서울 용산동 전쟁기념관 앞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유연주씨 아버지 유형우씨는 “아들, 딸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찾았던 이태원에서 돌아오지 못한 지 1년이 됐다”며 “대통령은 159명 영정 앞에서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 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우리는 정치 집회가 아닌 추모 집회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추모식을 정치 집회로 간주해 불참한 대통령실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참사 유족들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으로 행진에 함께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단원고 조은정양 어머니 박모(50)씨는 “세월호 참사와 비슷한 것 같다”며 “어른들이 아이들을 지켜주는 안전한 나라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세월호 참사는 10년이 다 돼 가는데도 재판 중이다”라며 “초반에 처벌하지 않으면 시간이 흐를수록 책임자를 잡기 어려워진다. 진상 규명이 빨리 이뤄져서 세월호처럼 길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이태원참사 1주기인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에서 유족 및 시민들이 추모시민대회가 열리는 서울광장 방면으로 행진하고 있다. 사진=이예솔 기자


이날 집회에는 자녀와 함께 참석한 부모들이 많았다. 일곱 살 자녀의 손을 잡고 걷던 이선미(43)씨는 “아이가 전체적으로 이해하진 못하지만, 이태원 참사 장소에 가서 함께 추모도 하고, 행진도 나왔다”고 말했다. 유모차를 끌고 온 A씨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참석했다”고 말했다.

온가족이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김포시에서 온 손재원(15)군은 “어제 여동생과 ‘크러쉬’라는 이태원 참사 다큐멘터리 영상을 봤는데 동생이 슬퍼하더라”라며 “정부는 아무런 책임도 지려 하지 않고, 1년이란 시간이 흘렀는데 수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우리라도 뭔가를 해야 하겠다고 생각해서 행진에 나왔다”고 설명했다. 손군의 아버지 손태환(49)씨는 “아이들에게 참사 관련해서 설명해 줘야 하는데, 설명을 못 해주겠다. 진상규명도, 처벌도 안 됐기 때문이다”라며 “부모로서 무력감이 든다”고 씁쓸해했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시급하다고 얘기하는 시민들이 많았다. 손태환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부터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참사가 계속 생긴다”며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 바로 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B(20대)씨는 “우리가 가장 바라는 걸 외치고 있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며 “예견된 참사를 막지 못한 이유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선미씨는 “제일 급한 건 이태원 특별법 제정”이라며 “유족들이 간절히 원하는 진상 규명도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단국대에 재학 중인 대학생 정모(24)씨는 “추모하러 이태원에 왔다가 행진하는 걸 보고 참여하게 됐다”며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모르겠다. 우리(시민)는 정부 속 어디에 자리 잡고 있는가”라며 분노했다. 김희용(65)씨도 “대통령은 책임을 지거나, 사과해야 하는데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며 “자식 잃은 슬픔이 감히 상상이 안 간다. 외국 같으면 난리가 났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을 책임지지 못하는 정권은 물러나야 한다”라며 “도망가지 말고 책임을 져라”라고 주장했다.

이태원참사 1주기인 29일 오후 서울광장 앞 이태원 참사 분향소에서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시민들이 줄을 서고 있다. 사진=이예솔 기자

추모 행진 이후 이날 오후 5시 서울광장에서 열린 시민추모대회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 등과 유의동 정책위의장, 이만희 사무총장 등 여야 인사가 자리했다. 오세훈 서울시장, 김동연 경기지사 등 일부 자치단체장이 함께했다. 5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이란의 사이드 구제치 대사도 자국민의 사망을 애도했다.

이날 서울광장 분향소엔 시민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졌다. 무릎을 꿇고 흐느끼는 시민도,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오열하는 시민도 있었다. 대학생 C(20대)씨는 “청춘들이 그렇게 많이 갔다. 다 내 또래”라며 흐느꼈다.

이예솔 기자 ysolzz6@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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