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6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코로나19를 비롯해 독감(인플루엔자), 마이코플라즈마 폐렴, 백일해 등 각종 감염병이 동시 확산하고 있다. 독감 유행이 장기간 이어지고 단기간 내 환자가 폭증하며 의약품 부족까지 심화되고 있어 의료 현장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14일 의료계와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44주차(10월29일~11월4일) 독감 환자는 외래환자 1000명당 39명으로 1주 전보다 6.4명 늘면서 4주 연속 증가했다. 9월 첫째 주 11.3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3배 넘게 늘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8년 같은 기간 5.7명에 그친 것을 고려하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특히 소아·청소년 사이에서 독감 유행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7~12세 어린이는 1000명당 90.8명, 13~18세 청소년은 84.8명이 감염됐다. 1~6세 아동도 33.6명으로 나타났다.
독감뿐만 아니라 최근 중국 어린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마이코플라즈마 폐렴도 국내에서 유행할 조짐이다. 마이코플라즈마 폐렴에 감염돼 입원한 환자는 44주차에 168명을 기록했다. 41주차 90명에서 42주 102명, 43주 126명으로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주로 사람의 비말을 통해 전파되는 마이코플라즈마 폐렴은 호흡기에 영향을 주며 주된 증상으로는 발열, 피로, 인후통, 기침 등이 있다. 보통 3~4주간 증상이 지속되다가 회복되지만 일부 환자는 중증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어린이 백일해 확산도 무시 못 할 수준이다. 급성 호흡기 질환 중 하나인 백일해는 100일 동안 기침한다고 할 정도로 격렬한 기침이 장기간 지속되는 것이 특징이다. 국내 백일해 환자는 지난 4일 기준 83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5명)보다 3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백일해 환자 중 58명(69.9%)이 12세 이하였다. 영·유아가 백일해에 걸리면 중증·사망 위험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러 감염병이 동시 유행하는 ‘멀티데믹’이 닥치자 의료 현장은 비상이 걸렸다. 최용재 대한아동병원협회 회장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협회가 8월부터 10월까지 1724명을 대상으로 호흡기 PCR(유전자증폭) 검사를 시행한 결과를 들며 “이 중 32명이 마이코플라즈마 폐렴에 걸렸고, 32명 가운데 24명에서 다른 호흡기 바이러스가 함께 검출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중복 감염 시 바이러스의 상승 작용을 일으켜 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며 “중복 감염된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입원 기간이 길고 중증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감기 환자를 주로 보는 이비인후과 의사들도 현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신광철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 공보부회장은 “계절성 질환들이 해마다 유행한다지만 올여름부터 이어져온 독감 유행이 이렇게 지속되는 것은 이례적이다”라고 평가했다.
신 공보부회장은 무엇보다 의약품 부족 상태가 심화되는 것을 우려했다. 특히 마이코플라즈마 폐렴은 다른 세균감염병과 달리 페니실린계, 세팔로스포린계 항생제가 듣지 않는다. 아지스로마이신, 클라리스로마이신, 레보플록사신 등 매크로라이드계 항생제를 써야 하는 상황에서 수급이 쉽지 않다. 원료의약품 대부분을 중국에서 수입하는데 중국의 주요 도시에서도 마이코플라즈마가 유행하며 의약품 수요가 높아져 국내 의약품 수급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 공보부회장은 “약을 쓰고 싶어도 약이 없다. 브루펜 계열의 처방약이 동나서 환자와 보호자에게 일반약을 구매해 복용할 것을 안내하고 있다”며 “매크로라이드계 항생제도 대체제를 구해야 하는 실정인데 마땅치 않아 보인다”고 전했다.
약국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민필기 대한약사회 약국이사는 “소아 독감의 경우 세파3세대 항생제를 주로 쓰는데 부족한 상황”이라며 “중국에서도 항생제 수요가 높아져 다국적 제약사의 의약품들이 중국으로 쏠리면서 구하기가 더 어려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감염병 전문가는 본격적인 유행은 지금부터라고 짚었다. 조동호 명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12월에 유행 정점을 찍고 점차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며 “유행을 억제하려면 결국 마스크를 잘 쓰고, 백신을 접종하고, 손 씻기 등 개인위생을 챙기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방역당국은 동절기 인플루엔자 대응계획을 수립해 병원체 감시기관을 확대하는 등 내년 4월까지 지역사회 유행 상황 감시를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질병청 관계자는 “각 의사회 홍보를 통해 진단검사 등 적극적 관리를 당부하고 예방접종을 독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