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2023년 12월 26일부터 30일까지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개최하고 회의에서의 논의 내용과 결론을 31일자 로동신문 등을 통해 보도했다.
북한은 2019년과 2021년, 2022년 12월 말에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개최하고 그 결과를 그다음 날인 1월 1일에 발표함으로써 김정은의 신년사를 대체해홨다.
그런데 올해에는 12월 30일에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종료하고 한 해의 마지막 날에 그 결과를 발표하는 파격을 보여주었다.
북한 당중앙위원회 8기 9차 전원회의에서의 결정 사항 중 가장 주목할 부분은 대남정책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노선’으로 제시한 것과 김정은이 ‘남한 영토 평정을 위한 대사변 준비’를 지시한 것이다.
이는 북한이 해방 직후부터 남북한 ‘혁명세력’의 통일전선 형성에 의해 통일정부를 구성하려는 ‘혁명주의적 통일전략’을 추진하다가 1948년 남북한에 두 개의 분단정권이 수립되자 북한의 우월한 혁명무력에 기초하여 통일을 달성하려는 ‘군사주의적 통일전략’으로 바꾸어 전쟁을 향해 나아간 것과 유사하다.
박명림 교수는 1948년에서 1950년까지 남북한의 통일전략을 특징 지웠던 두 개의 경향으로 군사주의와 급진주의를 들고 있는데, ‘군사주의’(militarism)는 “전쟁과 전쟁을 위한 준비를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사회적 행동으로 간주하는 태도나 조합”으로 그리고 ‘급진주의’는 이것을 급진적 방법으로 조급하게 성취하려 의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시기에 남한은 급진주의와 군사주의의 정도에서 현저히 떨어졌으나 북한은 이 두 가지가 거의 완벽하게 결합하여 ‘급진군사주의’로 나아갔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의 30일 전원회의에서의 발언과 지시 사항에는 ‘급진군사주의’의 특징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김정은은 30일 전원회의에서 “불신과 대결만을 거듭해온 쓰라린 북남관계사를 냉철하게 분석한 데 입각하여 대남부문에서 근본적인 방향전환을 할 데 대한 노선”을 제시했다.
김정은은 “우리[북한] 제도와 정권을 붕괴시키겠다는 괴뢰들의 흉악한 야망은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이제는 현실을 인정하고 남조선것들과의 관계를 보다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우리를 《주적》으로 선포하고 외세와 야합하여 《정권붕괴》와 《흡수통일》의 기회만을 노리는 족속들을 화해와 통일의 상대로 여기는 것은 더이상 우리가 범하지 말아야 할 착오”라고 주장했다.
김정은이 이처럼 남한의 진보정부와 보수정부의 대북정책이 모두 북한 흡수통일에 있다고 평가함으로써 향후 한국에서 진보정부가 출범하더라도 북한의 대남정책이 바뀔 가능성은 희박하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은 김여정 담화 등을 통해 대남정책의 전환 필요성을 지적한 바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것을 노동당의 중장기적인 정책 기조인 ‘노선’으로 구체화해서 제시했다.
김정은은 “우리가 동족이라는 수사적 표현 때문에 미국의 식민지 졸개에 불과한 괴이한 족속들과 통일문제를 논한다는 것이 우리의 국격과 지위에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남한을 ‘식민지 졸개’로 비하․조롱하며 한국과의 대화를 전면적으로 거부했다.
그리고 “북남관계는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되었다”고 평가했다.
김정은이 30일 전원회의에서 발표한 ‘국가방위력의 급진적 발전’ 방침은 북한의 이 같은 새로운 대남 노선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김정은은 한미 정상의 ‘워싱턴선언’과 ‘핵협의그룹(NCG)’ 신설, 한미일 3자 훈련의 연례화, 미국 핵잠의 한국 기항, 2024년 8월의 한미연합훈련계획 등을 비난하면서 “현실은 미국이 고질적으로 남발하고 있는 반공화국 적대행위들이 단순히 수사적 위협이나 과시성 목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군사적 행동으로 이어져 쌍방무력 간 충돌을 유발시킬 수 있는 범행단계로 명백히 진화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라고 비난했다.
김정은의 이같은 비난은 1950년 6․25전쟁 전 북한의 대남 비난과 유사하다.
그때와 차이점이 있다면 1950년에 한미는 동맹 관계가 아니었다는 점과 당시에는 북한이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보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재는 한미가 동맹으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북한이 전면전을 일으키기 어렵지만, 반대로 북한이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유사시 미국의 개입을 막을 수 있다고 오판할 수 있다.
김정은은 30일 전원회의에서 “만일의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핵위기 사태에 신속히 대응하고 유사시 핵무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과 역량을 동원하여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계속 박차를 가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은 남한을 공격해 군사적으로 점령하기 위한 전면전을 의미한다.
김정은은 이 같은 목표하에 구체적으로 ‘2024년도 핵무기생산계획’까지 언급하고, 2024년에 3개의 정찰위성을 발사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또한 “선박공업 부문에서 제2차 함선공업혁명을 일으켜 해군의 수중 및 수상전력을 제고하며 국방력 발전 5대중점목표 수행에서 미진된 과업을 빠른 기간 안에 집행하는 것을 중심과업으로 제시” 했다.
따라서 2024년도에 북한은 2021년 8차 당대회에서 제시했으나 ‘미진된 과업’으로 남아있는 핵추진잠수함 건조 계획을 집행하고, 기존의 중형 잠수함들을 ‘전술핵공격잠수함’으로 개조하는 작업도 진전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이처럼 핵능력 고도화와 대남 전면전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미 행정부와 한국 정부는 여전히 실현 불가능한 ‘한반도 비핵화’ 또는 ‘북한 비핵화’라는 목표에 집착하고 있다.
북한은 현재 생존이나 협상에 필요한 수준을 훨씬 넘어서서 핵전력을 강화하고 있다.
북한의 목표는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현상을 타파하고, 미국의 핵우산을 약화시켜 한반도 유사시 미군의 군사적 개입을 차단하며, 김정은이 30일 전원회의에서 밝힌 것처럼 “유사시 핵무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과 역량을 동원하여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는 것이다.
북한은 빠르면 2024년 1월 8일 김정은의 40세 생일 전에 2023년 3월에 공개한 전술핵탄두를 가지고 제7차 핵실험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북한은 2024년에 3차례 정찰위성 발사, (일본과 괌도 등을 불시에 타격할 수 있는) 고체연료 중거리탄도미사일의 시험발사, 전술핵공격잠수함에서의 SLBM 시험발사, 다탄두 ICBM 개발 등으로 강대강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몇 년 동안 북한은 열병식에서 ‘화성포-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대체로 1~4기 정도 공개하다가 2023년 2월 열병식에서는 무려 10여 기 가량을 공개했다.
북한은 2023년 2월 열병식에서는 화성포-18형 고체연료 ICBM을 한 기 공개했지만, 이후에 시험발사에 성공했기 때문에 앞으로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가 2024년 열병식에서는 화성포-18형 ICBM 여러 기를 공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2024년 열병식에서 다탄두 ICBM을 공개하고 이후 다탄두 ICBM 시험발사에 나설 수도 있다.
만약 북한이 다탄두 ICBM 시험발사에까지 성공하면 미국도 더이상 북한의 ICBM 능력을 무시할 수 없게 되고,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신뢰성은 더욱 약화될 수밖에 없다.
2023년 10월 4일, 미 외교전문 싱크탱크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CCGA)에 따르면 9월 7~18일 미 성인 3242명을 조사한 결과 ‘북한이 한국을 침공할 경우 미군이 한국을 방어해야 한다’는 응답은 50%였다. 2021년 같은 조사에서는 63%, 지난해에는 55%였다.
집권 민주당 지지층 57%는 미군의 한국 방어를 지지한 반면 공화당 지지층은 46%만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미군의 한국 방어에 반대한다’는 49%였음. 공화당 지지층의 53%는 미군의 한국 방어를 반대한다고 답했다.
2024년 대선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부상과 함께 ‘고립주의’, ‘미국우선주의’ 흐름이 확산되면서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을 방어해야 한다는 미국 내 분위기가 약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결과와 관련 CCGA는 “미국의 동맹국 방어에 대한 당파적 분열이 커지고 있다. 이는 새로운 현상”이라며 “공화당원들은 (중남미) 불법 이민자를 막는 데 미군을 활용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여긴다”고 분석했다.
그러므로 만약 2024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트럼프 후보가 재선된다면 미국의 한국 보호 의지를 신뢰하기 어렵게 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2023년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까지 이어지면서 최근 미국 국민들의 48%는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너무 많은 돈을 쓰고 있다고 본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그런데 만약 한반도에서 무력충돌이 발생하면 미국 국민들의 전쟁 피로감은 더욱 높아질 것이고, 미국의 한국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과 서방세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 축소로 우크라이나가 최근에 패퇴하고 있는 사실은 동맹의 ‘선의’에 의존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큰 피해를 입히고 많은 지역을 점령했지만, 미국은 러시아의 핵사용을 피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공격을 말리고 우크라이나에게 방어에 필요한 최소한의 지원만 해왔다.
만약 한반도에서 무력충돌이 발생한다면 미국도 북한의 핵사용을 피하기 위해 한국의 대북 보복을 막으려 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고체연료 ICBM을 본격적으로 양산하고, 김정은이 8차 당대회에서 목표로 제시한 것처럼 핵잠수함까지 보유하게 되며, 북한의 핵무기가 2030년까지 200개 이상으로 증가한다면 미국은 더욱 더 북한의 핵과 미사일의 방어 능력에 한계를 느끼게 될 것이다.
미국에서는 4년마다 대통령 선거가 있고, 대선에서 고립주의를 표방하는 정치인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한국에 대한 방위 공약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한국의 운명을 4년 또는 8년마다 대통령이 바뀌는 미국에 거의 전적으로 의탁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고, 북한의 오판에 의한 핵사용과 핵전쟁을 막기 위해 한국의 자체 핵 보유가 중장기적으로 반드시 필요하다.
중단기적으로는 우리가 일본 수준의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능력을 확보해 중국의 대만 침공 등을 계기로 일본이 핵무장의 방향으로 나아갈 때 우리만 비핵국가로 남지 않고 일본과 같이 갈 수 있는 핵잠재력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
핵잠재력 확보를 위해 한국 정부는 (박인국 최종현학술원 원장이 최근에 제안하고 있는 것처럼) 민간 원자력 발전소에 사용할 농축우라늄 생산 및 공급을 위한 한미일 3자 국제 컨소시엄 구축부터 추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북한의 잠수함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일 간에 원자력추진잠수함 공동 건조 및 운용을 위한 컨소시엄 구성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