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
분노한 문화예술인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지난달 27일 작고한 배우 고(故) 이선균 사건을 두고 수사 당국과 언론 등의 조처에 불합리함을 표하기 위해서다. 12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는 고인과 ‘기생충’으로 연을 맺은 봉준호 감독을 비롯해 29개 문화예술 관련 단체를 중심으로 모인 일명 문화예술인 연대회의가 결집했다. 배우 최덕문 진행 하에 가수 겸 작곡가 윤종신과 이원태 감독, 배우 김의성이 회견문을 낭독했으며, 이외에도 최정화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와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를 제작한 장원석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소속 BA엔터테인먼트 대표 등 다수 대중문화예술인들이 자리했다.
빈소에서 시작한 고요한 분노… “도리 위해 모였다”
이번 회견의 발화점은 고인의 빈소였다. 조문을 위해 모인 각계 대중문화예술인들은 “수사 과정에서 문제를 짚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해선 안 된다는 데 동의”(장원석 대표)했다. 공감대를 형성한 대중문화 예술인들은 장례식을 마친 뒤 성명서 초안을 작성하고 연명 작업을 벌였다. 29개 문화예술 관련 단체를 비롯해 배우 송강호 등 약 2000명의 개인 문화예술인이 동참했다.
서문 낭독을 맡은 김의성은 지난해 10월19일 한 일간지가 ‘배우 L씨의 마약과 관련한 정보를 토대로 내사 중’이라는 인천시경 관계자 말을 인용한 최초 보도 이후 나흘 뒤인 23일 이선균이 정식 입건되고, 이후 약 두 달 동안 벌어진 수사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짚었다. 이선균은 19시간의 수사가 진행된 3번째 소환조사에서 거짓말 탐지기로 진술 진위를 가려달라는 요청을 남기고 지난 12월27일 유명을 달리했다. 김의성은 “두 달여 동안 그에게 가해진 가혹한 인격 살인에 대해 우리 입장을 밝히는 게 최소한의 도리”라며 이선균이 보호 장치 없이 언론·미디어에 노출된 점을 비롯해 언론이 사건과 관련성이 적은 녹음파일을 공개한 점 등을 꼬집었다.
“수사당국과 미디어는 이 비극에서 자유로운가”
봉준호 감독과 윤종신은 각각 수사당국과 미디어에 진상규명 및 변화를 촉구했다. 단상에 선 봉 감독은 “고인의 수사 내부 정보가 최초 누출된 시점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2개월 동안 경찰의 수사 보안에 한 치 문제도 없었는지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한다”고 했다. 그는 세 차례에 걸친 소환절차에서 고인의 출석 정보가 공개된 것을 문제라고 봤다. 봉 감독은 “‘적법 절차에 따라 수사했다’는 한 문장으로 모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서 “수사 과정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만이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들지 않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윤종신은 “고인에 대한 내사 단계 수사 보도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공익 목적이라 할 수 있는지”를 지적했다. 대중문화예술인이라는 이유로 사생활 부각해 선정적 보도를 이어간 게 아니냐는 질문 역시 던졌다. 혐의 사실과 동떨어진 사적 대화를 전한 KBS의 보도도 문제 삼았다. 윤종신은 “검증되지 않은 소스를 흘리거나 충분한 확인절차 없이 이슈화에만 급급한 일부 유튜버를 포함한 황색언론, 이른바 사이버 렉카 병폐에 우린 언제까지 침묵해야 하나”며 자정을 촉구했다.
문화예술인들의 성난 발걸음… 정부와 국회로
이들은 이날 발표한 성명서를 정부와 국회에 전한다는 계획이다. 수사당국의 절차 적법성을 떠나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 현행 법령에 문제점이 없는지를 점검해야 한다는 의도다. 필요 법령의 재개정 작업에도 착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중문화예술인이 대중의 인기에 기반한다는 사실을 악용해 무리한 수사나 인권에 반하는 행태가 이어지는 걸 용인할 수 없다”는 게 이들 발언의 취지다.
문화예술인의 발걸음은 국회와 함께 경찰과 언론에게도 향한다. 이원태 감독은 “피의자 인권과 국민의 알 권리 사이에서 원칙과 예외가 뒤바뀌는 일이 없도록, 수사당국이 법의 취지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적용하는 일이 없도록 명확한 입법 개선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정화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는 “국회를 비롯해 황색 저널리즘에 빠진 언론의 자성을 촉구하고자 경찰청 및 KBS에 성명서를 전할 예정”이라면서 “속칭 ‘이선균 방지법’을 제정하기 위해 뜻을 함께하는 단체와 적극 협력하겠다”며 향후 계획을 밝혔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