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슴푸레한 영안실에 놓인 심상치 않은 관 하나. 그 앞에 비장하게 선 새끼무당과 경문 읊는 베테랑 무당 옆 평범한 남성이 밧줄을 들고 익숙하게 추임새를 넣는다. “아이고~ 오셨네, 오셨어.” 구성진 맞장구에 혼이 오는지 긴가민가하던 분위기가 비로소 잡힌다. 영화 ‘파묘’(감독 장재현)에서 혼 부르기 굿에 참여한 영근(유해진)이 자연스럽게 몰입감을 덧입히는 장면이다. 지난 26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유해진은 “대본에도 없던 추임새가 절로 나오더라”며 껄껄 웃었다.
‘파묘’에서 유해진은 장의사 영근을 연기했다. 영근은 영적 능력도 없고 무속과도 거리가 멀다. 풍수지리 전문가도 아니다. 시신을 염하고 유골을 수습하는 장례 지도사일 뿐이다. 개성 강한 주인공 4인방 중 가장 현실과 맞닿은 인물. 유해진은 처음부터 다른 이들의 뒤편에 서야겠노라 마음먹었다. “이야기와 한 발짝 떨어진 위치에서 관객 입장을 대변하는 진행자”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극에 참여하는 연기자이자 극 흐름에 기름칠을 하는 바람잡이로도 기능한다. 자잘한 추임새를 비롯해 인물에 현실감을 부여하는 자잘한 설정들을 덧입힌 결과다. 유해진은 “관객들은 몰라볼지라도 캐릭터에 습관을 불어넣는 데서 느끼는 희열과 재미가 있다”며 흡족해했다.
묘를 이장하고 악귀가 나오며 모든 게 시작되는 영화. 오컬트라는 특수 장르인 만큼 유해진은 영근이 해야 할 몫을 고민했다. “이야기 자체가 강한 만큼 잠깐씩 쉬어갈 곳이 필요했다”고 설명하던 유해진은 “‘험한 것’만 있는 영화보다는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웃긴 요소를 넣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그가 “진행자이자 쉼표” 역할을 자처한 이유다. 과거 극단에 몸담던 시절 연극 ‘춘풍의 처’를 통해 비슷한 장르를 경험했던 유해진은 적재적소에 추임새와 애드리브를 가미해 극에 재미를 끌어올린다. 관객 사이에서 ‘영근이 나올 때 비로소 한숨 돌렸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선배 배우 최민식과 마찬가지로 유해진 역시 오컬트 장르와 연이 깊진 않다. 그랬던 만큼 ‘파묘’ 현장은 그에게 놀라움과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낯설어도 적응은 빨랐다. 컴퓨터 그래픽(CG)을 배제한 현장 분위기 덕이다. “오컬트일수록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감독님의 지론이 있었어요. 비과학적 장르인 만큼 다른 부분은 진짜 같아야 한대요. 그 말을 듣고 이거구나 싶었죠.” 장 감독이 현장에 피어올린 ‘진짜’ 도깨비불에 입이 떡 벌어졌단다. 유해진은 “프로와 고수를 어느 때보다도 많이 만난 현장”이라고 돌아봤다. 말하는 내내 그의 입가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파묘’는 개봉 엿새 만에 300만 고지를 넘는 등 뜨거운 흥행세를 보이고 있다. 무대 인사를 다니는 발걸음 역시 가볍다. 400석 크기의 대형관을 꽉 채울 정도로 관객들이 열띤 성원을 보내고 있다. “이게 얼마 만에 느껴보는 극장의 맛인지 모르겠다”며 씩 웃던 유해진은 “잊었던 기쁨을 누리고 있다”며 흡족함을 감추지 못했다. 팬덤이 생기며 속편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유해진은 “좋아하는 장르에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접목한 장 감독의 능력이 정말 대단하다”면서 “후속 영화를 만들어도 잘 해낼 것”이라며 씩 웃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