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사직 50일…벼랑 끝 의료현장, 곳곳 ‘아우성’

전공의 사직 50일…벼랑 끝 의료현장, 곳곳 ‘아우성’

병상 가동률 18.8% ‘뚝’…적자에 휘청이는 대형병원
‘최후의 보루’ 응급실도 차질…7곳 중 5곳 진료불가 메시지
항암 치료까지 지연…“의정 협상보다 중증 환자 치료가 먼저”

기사승인 2024-04-09 06:00:42
서울 시내의 한 대형병원. 사진=곽경근 대기자

전공의들이 집단사직에 나선지 50일째인 9일, 의료현장에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남은 의료진들은 번아웃을 호소하고, 병원은 하루 평균 수억원에 육박하는 적자를 감내하고 있다. 환자들은 무기한으로 밀리는 입원·수술·진료 일정에 하루하루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의정 갈등이 길어지며 의료현장이 한계에 봉착한 모습이다. 

8일 의료계 등에 따르면 대형병원들은 쌓여가는 적자에 허덕이는 실정이다. 지난 2월19일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잇따라 제출하면서 병원들이 진료를 축소했기 때문이다. 대한병원협회(병협)에 따르면 전공의가 떠난 뒤 50개 병원의 전체 병상 가동률은 지난해보다 18.8%p 떨어진 56.4%에 불과했다. 입원 환자와 외래 환자는 각각 27.8%, 13.9% 줄었다.

병원들 수입도 크게 감소했다. 병협이 500병상 이상 전국 수련병원 50곳의 경영 현황을 조사한 결과, 전공의가 이탈한 2월 말부터 지난달 말일까지의 수입이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4238억3487만원(감소율 15.9%)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당 평균 84억8000만원가량 손실을 입었다. 특히 1000병상 이상 대형병원은 평균 224억7500만원의 수익이 감소했다. 서울아산병원의 경우 의료기간 순손실이 511억원에 육박한다고 밝혔다.

이에 병원들은 비상경영체제로 전환한 뒤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마이너스 통장 한도를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2배 늘렸다. 서울아산병원은 교수들의 학술 활동비를 감축하고, 해외 학회 참가를 제한해 비용을 절감할 예정이다. 병협은 복지부에 건강보험 급여를 미리 지급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심지어 대부분의 병원은 의사를 제외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무급휴가 신청도 받고 있다. 비상경영체제가 계속되자, 병원 노동자들은 실직 걱정에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노재옥 대형 의료기관 노동조합 대표자회의 집행위원장은 8일 쿠키뉴스에 “병원에서 수익 보전 노력을 하고 있지만, 무급휴가 범위를 확대하고 있어 걱정”이라며 “사태 이후 무급휴가를 강요받고, 다른 병동으로 보내지니 그만두려 고민하는 분도 꽤 있다”고 털어놨다. 간호계 관계자도 “병원 경영이 어려워지니 무급휴가 신청을 반강제적으로 받고 있다”면서 “현장에선 이러다 실직자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크다”고 토로했다.

서울 시내의 한 대형병원. 사진=곽경근 대기자

전공의가 떠난 자리를 묵묵히 지켜오던 교수들도 ‘번아웃’을 호소하고 있다. 8일 충남대병원 비상대책위원회가 충남의대·충남대병원·세종충남대병원 비대위 소속 교수를 대상으로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7일까지 업무 강도 및 신체적·정신적 상태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10명 중 7명 이상은 신체적·정신적 어려움을 호소했다. 심지어 전공의 사직으로 인해 주 100시간 이상 진료를 보고 있다고 밝힌 비율은 11.9%에 달했다. 

환자들의 최후 보루인 ‘응급의료’도 무너질 위기에 놓였다. 응급의학과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7일 성명서를 통해 “500여명의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응급실을 나갔다. 남아있는 의료진들의 피로와 탈진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면서 “이번 사태가 조속히 해결되지 않을 경우 사직을 포함한 구체적 행동을 준비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미 응급실 곳곳에선 진료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8일 오후 3시 기준 중앙응급의료센터 종합상황판에 따르면 서울의 권역응급의료센터 7곳 중 고대구로병원과 서울의료원을 제외한 5곳은 ‘진료 불가능 메시지’를 띄웠다. 

서울대병원은 오후 6시 이후 안과와 이비인후과 진료를 제한하고 있다. 고대안암병원도 인력 부재로 안과 응급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대목동병원은 성형외과 의료진 부족으로 오전 0~8시 단순봉합이 불가하다고 공지했다. 강동경희대병원은 성형외과, 치과, 정신건강의학과 환자의 응급실 진료가 불가하다. 한양대병원은 응급실 인력 부재로 비응급·경증 환자는 받지 못한다고 전했다. 

전공의 집단행동이 길어지는 사이, 환자들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에 접수된 피해사례에 따르면 희귀 갑상선암 진단을 받은 한 환자는 병원에서 5월은 넘겨야 수술 일정을 조율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한 간암 환자는 색전술을 받을 수 없다고 통보 받았다. 항암치료를 받던 한 환자는 장폐색이 왔는데, 손쓸 수 없다며 호스피스 병동으로 이전해야 했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회장은 “중증 환자들은 하루하루를 넘기며, 이러다 죽는 거 아니냐고 절규하고 있다”며 “50일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의정 협상이 먼저가 아니다. 중증·응급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기본적인 시스템부터 갖춘 다음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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