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환자 한 명당 연간 돌봄 비용은 2000만원 이상으로 추산되는데, 이로 인한 국가 예산 손실은 이미 20조원을 돌파했고, 2050년에는 100조원을 넘긴다는 전망이 파다하다. 미국에선 이미 치매 환자 돌봄 비용이 심장 질환⋅암 환자 돌봄 비용을 크게 상회한 지 오래다.
노르웨이 과학자들이 305가지 직업에 종사하는 7000명을 대상으로 업무와 두뇌 사용 상관관계를 조사한 논문도 화제다. 17일 미국 신경학회 의학저널 ‘신경학(Neurology)’에 공개된 논문에 따르면, 30대부터 60대까지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받은 인지 자극이 70세 이후 경도인지장애(치매 전 단계) 위험과 연관이 깊다.
연구 결과는 충격적이다. 우편집배원이나 건물 관리인 등 요구 인지 능력이 가장 낮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인지 자극이 가장 큰 교직에 종사하는 사람과 비교 했을 때 경도인지장애에 걸릴 위험이 무려 66%나 높았다.
지난해 할리우드에선 인공지능(AI)의 업무 침범에 맞선 ‘인류의 첫 파업’으로 기록된 미국작가조합의 파업이 있었다. 역대 두 번째로 긴 148일 동안 파업을 이어간 결과 AI 규칙을 마련하는 계기를 만드는 등 유의미한 성과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장면은 18세기 말 산업혁명 당시 ‘러다이트 운동’을 떠올리게 한다. 잠깐 시기를 늦출 순 있을지 몰라도, 인간이 담당해오던 일의 상당 부분이 AI로 대체되는 시대적 흐름을 거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농경 시대에는 ‘헬스장’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과거에 비해 신체를 덜 사용하게 된 인류는 스스로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하며 신체 건강을 유지한다. AI 시대에는 두뇌를 덜 사용하게 될 것이 자명한데, 그렇다면 ‘두뇌 운동’을 하면서 뇌 건강을 유지할 공간이 필요하다.
두뇌 스포츠로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각광 받은 종목은 단연 바둑이다. ‘알파고’가 등장해 전 세계를 충격과 공포에 휩싸이게 했을 때, 인류와 인공지능이 맞선 분야가 바로 바둑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바둑의 신’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알파고 조차 바둑의 정답을 찾지는 못했다는 사실이다. 19로 반상에서 나타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10의 172승’으로,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의 수(10의 80승으로 추정)보다 많다.
과거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최고령 프로기사 최창원 6단(당시 77세)과 40대 직장인의 뇌를 비교한 적이 있다. 두 사람의 뇌는 거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판명됐는데, 이는 바둑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다수의 연구 결과와도 일맥상통한다.
지난해 11월에는 서울 종로에서 보건복지부장관배 바둑대회가 열렸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기우회(棋友會)가 주축이 돼 개최한 이 대회는 코로나19 이후 4년 만에 재개됐다. 이는 국가적으로 치매 예방을 위한 각종 대책과 사업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현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대한바둑협회 회장을 역임한 한의사 서효석은 대한노인회 ‘치매 예방 전담 고문’을 맡아 ‘바둑을 통한 치매 예방론’을 주창하고 있다. 서 고문은 “바둑을 두면 뇌 구조가 바뀌면서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각종 연구 조사 결과를 통해 증명됐다”면서 “60세에 바둑을 배워 10년간 대국을 하면, 70세에는 치매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뇌를 갖게 된다”고 역설한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특정 직업이 아니라 현존하는 대다수의 직업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되는 시대다. 바꿔 말하면, 치매 위협으로부터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인공지능 시대, AI도 정복하지 못했던 두뇌 스포츠 바둑을 통한 ‘두뇌 체육’이 개인의 치매 예방은 물론 국가적 손실을 예방하는 최고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이영재 문화스포츠부장 youngja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