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서 “핵을 사용할 생각이 전혀 없다”며 “나에게도 딸이 있는데 딸 세대까지 핵을 머리에 이고 살게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문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외교안보 분야 내용을 담아 17일 펴낸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에서 당시 김 위원장이 자신의 비핵화 의지를 국제사회가 불신하는 데 대해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며 이같이 전했다.
회고록에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북미 사이 ‘중재자’ 역할을 자임했던 문 전 대통령의 고충이 비중 있게 담겼다. 특히 북미 비핵화 협상이 진행되는 와중 양측이 상호를 비방하는 언사를 주고받다가 2차 북미정상회담이 2019년 2월에야 열린 배경도 공개됐다.
문 전 대통령은 “북한은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 국무장관이 북한에 와서 실무교섭을 하며 ‘핵 리스트’를 내놓아야 한다고 해 정상회담이 늦어졌다고 했다”며 “그 때문에 북한이 발끈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위원장이 내게 한 표현으로는 ‘신뢰하는 사이도 아닌데 폭격 타깃(목표)부터 내놓으라는 게 말이 되냐’는 것이었다”며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 대통령에게 그 말을 그대로 전했더니 ‘나라도 그렇게 생각했겠어’라고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 후로는 트럼프 대통령 입으로 그런 요구를 한 적은 없지만 폼페이오나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막지 못했다”며 당시 미국 정부의 요구로 북미 간 대화가 어려워졌다고 전했다.
회고록에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 위원장과 단독으로 진행했던 ‘도보다리 대화’의 내용도 실렸다. 문 전 대통령은 “나는 북미회담을 잘 하라고 얘기했고, 김 위원장은 어떻게 하면 미국을 설득하고 자기들의 진정성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을지를 물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에 대해선 “보도를 보면 북한에서는 굉장히 폭압적인 독재자로 여겨졌는데, 내가 만난 그는 전혀 다른 모습이어서 예의 바르고 존중이 몸에 뱄다”며 “말이 통한다고 느껴지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다만 김 위원장이 지난해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적대적, 교전 중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것을 두고는 “매우 유감스럽다”며 “결코 평화를 지향하는 국가지도자의 자세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선 “전혀 이념적이지 않았고, 서로 조건이 맞으면 대화할 수 있고, 거래할 수 있다는 실용적 생각을 갖고 있었다”며 “그런 면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하는 나로서는 아주 좋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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