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이혼 소송에서 항소심 재판부가 ‘치명적인 오류’로 판결문을 수정하면서 재계 안팎에서는 과거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사건이 재소환되고 있다.
당시 1심 재판부가 삼성SDS 주식 가치 계산 방식에 오류를 범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이 선대회장의 배임 액수가 늘고 혐의도 바뀐 것처럼 최 회장의 이혼 소송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18일 재계에 따르면 2008년 7월 이건희 선대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사건 1심 재판부는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적정가액을 주당 9,740원으로 계산해 배임액수를 최대 44억원으로 산정했다.
재판부는 삼성SDS 경영진이 제3자 배정방식으로 BW를 저가 발행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고 이 선대회장 등이 이에 공모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로 인한 손해액이 50억원에 미치지 못해 공소시효가 만료됐다며 면소 판결했다. 이후 항소심에서도 무죄가 선고됐다.
하지만 삼성SDS BW의 적정가격을 놓고 계속 논란이 불거졌다.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단체는 “재판부가 수익가치 기준점을 기업회계기준이 아닌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당기순이익을 기준으로 해 주당 순손익가치를 저평가했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삼성SDS BW 가격을 재산정하라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서울고법은 삼성SDS BW 적정가격을 주당 1만4,230원으로 보고 배임액을 227억원으로 수정했다. 주가를 약 1.5배로 재산정하며 배임액이 5배로 늘어났다.
배임액이 50억원을 넘으면서 업무상 배임이 아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가 적용됐고, 공소시효가 10년으로 늘어나면서 유죄가 인정됐다.
재계에서 이 사건이 재소환된 것은 최태원 회장 측이 이혼 항소심 재판부를 상대로 ‘치명적인 오류’를 발견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최 회장 측이 거론한 오류는 현재 SK그룹의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SK㈜의 모태가 된 대한텔레콤(현 SK C&C) 주당 가치를 1,000원이 아닌 100원으로 잘못 산정한 부분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최종현 선대회장 시절 SK C&C 주가가 액면분할 반영 시 8원에서 100원으로 12.5배가 됐고, 최태원 회장 시절 100원에서 3만5,650원으로 355배가 됐다며 최 회장을 ‘상속승계형’이 아닌 ‘자수성가형’으로 규정했다.
최 회장 측은 두 차례 액면분할을 고려하면 1998년 5월 당시 대한텔레콤 주식 가액은 주당 100원이 아니라 1,000원이라고 설명했다.
이 오류를 정정하면 SK C&C는 최 선대회장 시절 12.5배가 아닌 125배 성장한 것이 된다.
최 회장의 법률 대리인인 이동근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재판부는 최종현 선대회장 별세 이전과 이후 성장률을 잘못 판단해 최 선대회장과 최 회장의 기여도를 잘못 판단했다”며 “재판부의 판단대로라면 최 회장은 ‘자수성가한 재벌 2세’라는 형용 모순에 빠지게 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날 최 회장 측의 기자회견 이후 1998년 대한텔레콤의 주식 가액을 주당 100원이 아닌 1000원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판결문을 수정했다. 최 회장의 기여분도 종전 355배에서 35.6배로 수정했다. 다만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1조3,800억원대의 재산을 분할하라는 주문은 그대로 유지했다.
최 회장 측은 “잘못된 계산에 근거한 판결의 실질적 내용을 새로 판단해야 하는 사안인 만큼 재판부의 단순 경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법적 절차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재판부의 오류와 이에 따른 판결문 수정이 향후 대법원 판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정혜선 기자 firstwoo@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