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역 참사를 계기로 정부가 고령자 면허를 제한하는 정책을 검토 중인 가운데, 고령 운전자 자격을 검사하는 현행 제도부터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75세 이상 운전자가 운전면허를 갱신할 때 받아야 하는 치매인지선별검사(CIST)가 운전 능력 평가와 직접적인 연관이 부족하고, 평가 기준도 모호하기 때문이다.
최근 고령 운전자의 면허 갱신에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1일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16명의 사상자를 낸 운전자가 68세인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불거진 이후 70~80대 운전자의 교통사고가 연이어 발생한 것이 계기였다.
이미 2019년부터 서울시 등 지자체는 고령 운전자의 면허 자진 반납을 유도하는 제도를 운영 중이다. 경찰청도 특정 기준에 미달하면 야간 운전, 고속도로 운전 등을 제한하는 ‘조건부 면허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고령자의 이동권을 한정한다는 시각도 있다.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새로운 제도를 검토하는 것과 함께 적용 중인 현행법에 문제가 없는지 들여다봐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75세 이상 운전자는 지난 2019년 개정된 현행 도로교통법에 따라 3년마다 면허를 갱신할 때 CIST와 교통안전교육, 안전능력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 중에서 치매 검사는 운전 능력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치매 검사는 기억력, 주의력, 시공간기능, 언어기능, 집행기능 등 인지기능을 평가하는 도구다. △오늘 날씨가 어떤지 설명하기 △세 단어를 외우고 기억하기 △100 빼기 7이 무엇인지 계산하기 △ ‘백문불여일견’ 등 말 따라하기 같은 문항으로 이뤄져 있다.
강북구치매안심센터 센터장인 이찬녕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신경과 교수는 “치매 검사는 학력이 낮으면 점수가 미달되는 경우도 많다. 100 빼기 7을 모른다고 해서 운전을 못 하는 건 아니지 않나”라며 “인지기능과 운전 능력 간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 밝힌 연구도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치매선별검사 자체 기준 역시 모호해 운전 능력을 판단하는 잣대로 삼는 게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남양주 치매안심센터의 협력의사인 최호진 한양대학교 구리병원 신경과 교수는 “심각한 치매 환자에겐 확실하게 ‘운전 못 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경도인지저하나 초기 치매 환자는 기준이 모호하다”라며 “기억력 점수가 낮게 나왔다고 해서 사고를 낼 것이라고 단정할 순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찬녕 교수도 “치매 판정을 위한 검사 도구로 운전 능력을 평가하니 불만을 토로하는 어르신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치매선별검사에서 정상 판정을 받지 못할 경우 ‘운전이 가능하다’는 내용의 의사 소견서가 필요하다. 하지만 소견서 발급에 관한 뚜렷한 가이드라인이 없다. 운전자가 검진 받는 의사에 따라 면허 갱신 여부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최호진 교수는 “소견서 가이드라인이 불명확하기 때문에 의사마다 판단이 달라질 여지가 있다”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노화가 진행될수록 인지기능이 저하돼 반응속도가 느려진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하지만 각자의 신체기능과 운전 능력이 아닌 나이를 기준으로 면허를 제한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입을 모은다. 노인정신의학 분야 전문의인 강동우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나이를 기준으로 면허 제한을 일괄 적용하기보다 실행능력과 반응속도를 정확하게 반영해 운전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검사 도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라며 “해외에선 이미 평가 도구를 개발하는 등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