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탕 후에 탕후루, 삼겹살 먹고 두바이 초콜릿, 치킨 뒤엔 망고 케이크. 오늘도 ‘단짠의 굴레’에 갇히셨나요.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성인의 하루 당 섭취량은 총열량의 10% 이내입니다. 하루에 2000㎉를 섭취하는 경우 일일 당 섭취 권장량은 50g입니다. 하지만 식사 후에 마신 연유라테 한 잔에 들어간 당이 무려 54g. 이러니 권장량을 지키기 쉽지 않죠. 후회 속에 철저한 식이요법을 다짐하지만, SNS나 유튜브에 올라오는 음식들을 외면하기 어렵습니다. 당과 나트륨 섭취가 늘어 고민하는 건 개인만이 아닙니다. 전 세계 정부들도 이 문제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한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20·30대 젊은 당뇨병 환자들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먹는 당과 나트륨이 어느 정도인지, 몸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또 당국은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전개하는지 살펴 5일부터 10일까지 엿새에 걸쳐 보도합니다. <편집자주> |
“밤에 먹방(먹는 방송)을 보면서 마라탕, 라면, 막창 등 다음날 먹고 싶은 걸 정해놔요. 며칠 과식하거나 자극적인 걸 많이 먹은 것 같으면 이틀 정도는 샐러드나 다이어트 식단을 먹어요.” (24세, 대학생 이유리씨)
“만약 저녁에 술자리가 있다면 다음날 점심으로 샐러드나 단백질바 같은 식사 대용 선식이나 쉐이크를 챙겨요. 한 끼 과하게 먹더라도 다음날 덜 먹으면 건강이 유지될 거라 생각해요.” (33세, 직장인 강도현씨)
젊은 층을 중심으로 상반된 식품 소비 트렌드가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건강과 쾌락 사이를 오가는 ‘푸드 밸런스’ 경향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지고 있다고 봤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 균형적인 식단 조절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이어졌다.
식생활 문화도 유행을 탄다. 최근 수년간은 달고 짜고 매운 자극적인 음식들이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SNS나 동영상 플랫폼 속에는 ‘마라탕후루’라는 밈(meme)까지 등장했다. 유튜버들의 매운 음식 도전기가 잇따르면서 라면 업계는 앞다퉈 극한의 매운맛을 강조한 신제품을 내보였다. 올해 상반기에는 ‘두바이 초콜릿’이 품절 대란을 일으켰다. 두바이 초콜릿은 카다이프와 피스타치오 스프레드를 넣어 만든 초콜릿으로, 유튜브 방송에서 한 차례 방영된 이후 급속도로 유행이 퍼졌다.
이 같은 트렌드는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18년부터 2022년 사이 우리 국민의 평균 나트륨 섭취량을 분석한 결과, 세계보건기구(WHO) 권고 기준에 비해 1.5배 많았다. 여성 어린이·청소년의 경우 WHO 권고 수준을 넘어 하루 총열량의 10% 이상 당류를 섭취하고 있다. 식약처는 이에 대해 “유튜브 먹방과 배달 음식의 영향이 크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먹방은 비만 발생 위험도를 증가시킨다. 연세의대 예방의학교실 박은철, 김진현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국내 800여개 학교 중고생을 대상으로 먹방 시청과 비만 연관성을 조사한 결과, 매주 1차례 이상 먹방을 시청한 남학생의 비만 위험이 먹방을 전혀 시청하지 않은 남학생보다 22% 높았다. 먹방을 시청한 학생 중 38.6%는 ‘먹방이 자신의 식습관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한편에선 소식이나 채식에 대한 관심이 일었다. 일명 ‘헬시플레저(Healthy Pleasure)’라고 불리는 트렌드를 통해 시간과 비용이 들더라도 즐겁고 건강하게 소비하려는 성향이 불어났다. 과식과 육식을 절제하고, 되도록 채소 위주의 식사를 지향한다. 이로 인해 샐러드 등 일상에서 효율적이고 간편하게 건강 관리가 가능하도록 돕는 식품이 선호 품목이 됐다.
설탕을 빼고 대체 감미료로 맛을 낸 제로 식품 열풍도 대세로 자리 잡았다. 편의점이나 마트 곳곳은 제로 식품이 들어차 있다. 주류, 과자, 아이스크림 등 다양한 식품들이 무가당 기치를 내걸고 출시되고 있다. 롯데칠성의 제로 탄산음료 매출은 2021년 890억원에서 2023년 273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제로 식품을 쫓는 소비 성향은 시장 판도를 흔들었다.
상반된 소비 트렌드…‘SNS’와 ‘개인 욕구’ 반영
다양하고 상반된 소비 트렌드가 뒤섞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푸드 밸런스’(food balance) 경향이라고 정리했다. 자극적인 음식과 건강한 음식의 균형을 맞춰 소비하려는 심리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한다혜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박사는 “요즘 외식시장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극단적 맛의 인기’라고 할 수 있다”며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시장에서도 자극적인 맛이 심화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이는 ‘외식 일탈’의 범주 안에서 이뤄진다”면서 “허용할 만한 수준을 정해두고 그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조절하며 건강과 쾌락 사이를 넘나드는 영리한 소비자들이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정윤 성균관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도 “자극적인 음식에 빠지면 더 자극적인 음식을 원하게 된다”며 “이 때문에 자극적인 음식의 유행이 지속되는 가운데 새로운 음식이 계속 주목을 받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헬시플레저라는 키워드가 등장했는데, 이는 건강과 즐거움을 동시에 잡는 것을 말한다”며 “예전에는 자극적인 건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던 반면, 지금은 한 끼는 자극적으로 먹어도 이후에 채식을 하면서 건강을 보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부연했다.
소비 트렌드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매개체로는 단연 ‘SNS’가 꼽힌다. 860명이 참여한 2019년 글래드 트렌드리포트 설문조사 결과 ‘먹방을 본다’고 답한 사람은 72.8%에 달했다. 이 중 94.4%는 먹방에 등장한 장소를 검색해 본 경험이 있다고 했다. SNS가 소비자들의 식욕을 자극하는 강력한 도구가 되고 있는 셈이다. 한다혜 박사는 “SNS 유행과 더불어 개인의 욕구도 소비 트렌드에 반영되고 있다. 한 끼를 먹을 때 가성비를 중시하면서도 비싼 디저트를 먹으며 소소한 행복을 누리려는 욕구가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라면서 “유행 주기가 짧아지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들이 출시된 것도 식생활에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반된 소비 트렌드가 건강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극과 극인 식단보다는 균형감 있는 식생활을 유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권정윤 교수는 “자극적인 음식을 지양하려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유행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식생활을 건강하게 가져가기 위해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이어 한다혜 박사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혈당을 측정하고 자신에게 적합한 ‘건강 취식법’을 만드는 사례도 있다”며 “음식을 먹기 전에 칼로리나 영양 성분 등의 정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식약처는 이 같은 소비 트렌드가 건강한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 돼야 한다고 전했다. 박선영 식약처 식생활영양안전정책과장은 “매운맛, 단맛 등 즐거움과 재미를 추구하는 부분과 건강을 생각하는 부분이 공존하고 있다”며 “음식을 섭취하는 목적은 신체 기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영양 성분을 공급하는 것이지만 개인의 기호를 충족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선영 과장은 “다만 특정 제품이나 영양 성분을 과잉 섭취할 경우 영양 불균형을 초래해 건강을 유지하기 어렵다”며 “건강한 방향으로 향하도록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