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학진흥원이 조선 초기 금속활자로 찍은 ‘사학지남(辭學指南)’을 비롯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과 시권 2점 등 총 5종을 국가유산에 지정되도록 신청할 계획이라고 7일 밝혔다.
사학지남은 송나라 왕응린(王應麟)이 편찬한 것으로 글 짓는 방법과 사례를 정리해 과거에 대비하게 한 지침서이다. 이 책은 조선시대 최초의 금속활자인 계미자(癸未字)의 단점을 보완해 1420년(경자년)에 만들어진 두 번째 활자인 경자자(庚子字)로 인출한 것이다.
책의 끝에는 이천(李蕆)과 남급(南汲)이 담당하고 김익정(金益精)과 정초(鄭招)가 감독 업무를 관장해 활자를 만들었다는 내용의 주자사실(鑄字事實)을 기록한 주자발문(鑄字跋文)이 있어 눈길을 끈다. 세종의 지대한 관심 속에 주조됐던 조선 초기 활자 인쇄술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이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한 호수(湖叟) 정세아(鄭世雅, 1535~1612)의 종가인 영일정씨 호수종택에서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한 정종소(鄭從韶) 문과 중시 시권은 현존하는 조선시대 시권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자료이다. 당대 현안에 대해 국왕의 질문에 답한 대책(對策, 세로 76㎝ 가로 244㎝)과 ‘팔준도’에 대해 국왕에게 올린 전문(箋文, 세로 75㎝ 가로 128㎝) 2점으로 구성돼 있다.
문과 중시는 현직 문신을 대상으로 한 시험으로 1447년(세종 29) 정종소는 을과(乙科) 삼등(三等) 제1인으로 급제했다. 당시 성삼문(成三問), 신숙주(申叔舟), 박팽년(朴彭年), 최항(崔恒) 등도 함께 응시했는데, 성삼문이 을과 일등(一等), 신숙주, 박팽년, 최항이 을과 이등(二等)으로 급제했다. 그들의 문집에 작성한 답안 내용은 수록돼 있지만, 실물이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서 15세기 문과 중시의 유일한 실물자료로 가치가 매우 높다. 보존 상태 또한 양호해 당시 과거제도 및 시권의 물리적 형태와 양상을 살펴보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이들 자료 외에도 1612년 초간본의 판식을 따라 복각한 만력본 ‘용비어천가’ 3책, 조선 전기 금속활자로 인출된 농암 이현보와 그의 넷째 아들 이중량이 왕으로부터 받은 내사본 3점, 퇴계 이황의 숙부 송재 이우가 수록된 1507년 갑인자본 ‘공신회맹록’ 등도 중요한 학술적 자료로 확인됐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추후 이 자료들에 대해 일련의 연구 작업들이 완료되면 그 성과를 정리해 국가유산으로 신청할 계획이다.
정종섭 한국국학진흥원 원장은 “앞으로도 민간 기록유산들을 지속적으로 수집하고 보존·관리하는 한편, 자료의 가치를 발굴해 국가유산 지정 신청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