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 ‘소멸론’까지 불러온 저출생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정부는 물론 기업과 가계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위기 극복에 선발주자로 나선 정부의 노력이 한계를 보이면서 이제는 기업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업이 나서야 하는 이유와 역할을 중심으로 저출생 위기 극복을 위한 해법에 대해 들어봤다. |
0.72명. 합계출산율은 매해 낮아지고 있다. 올해 안에 0.6명대 추락이 전망될 정도다. 저출생은 기업의 위기로도 이어진다. 인구 감소는 노동력 감소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저출생 극복을 위한 사회 정책은 이미 마련됐다. 문제는 기업 내 현장 안착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저출생 문화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김영미 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과 인터뷰를 통해 기업의 저출생 역할과 기업 간 격차 해소 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김 위원장은 저출생과 돌봄, 복지 정책을 연구해 온 전문가로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상임위원을 거쳐 2023년 1월부터 1년여간 부위원장을 맡아 국가 저출생 정책을 주도했다.
통렬한 성찰 필요…재생산시스템 붕괴
내년 합계출산율은 0.68명으로 전망됐다. 김 위원장은 이는 한국 사회 재생산시스템의 붕괴라고 진단했다. 그는 “합계출산율 0.68명은 한국 사회 재생산시스템의 붕괴를 의미하며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근원적이고 통렬한 성찰을 요구하는 숫자”라고 진단했다.
김 위원장은 “저조한 합계출산율은 정책‧정치‧공동체 실패를 의미한다”며 “세계 최고 수준의 수도권 집중과 급등한 집값으로 인해 끊어진 주거 사다리, 양질의 일자리 부족으로 인한 취업 경쟁 심화, 일가족 양립이 어려운 노동시장 등의 정책 실패에 따른 결과물”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단편적 정부 정책이 아닌 사회적 합의를 통해 장기적으로 추진됐어야 할 노동‧교육‧부동산 개혁 등을 등한시하고 연기한 정치권의 실패”라고 말했다.
또 “공동체에 대한 신뢰, 미래에 대한 전망을 청년들에게 주지 못한 채 소중한 가치를 등한시한 공동체의 실패”라며 “2021년 퓨리서치 연구센터가 ‘당신의 삶을 의미있게 하는 것’에 대해 조사한 결과 17개 국가 중 한국만이 물질적 가치를 1위로 꼽았다. 가족은 3위”라고 꼬집었다.
정부는 저출생 완화를 위해 금융‧주거 등 다방면으로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초등학교 늘봄학교‧신생아 특례대출‧필리핀 가사관리사‧출산 가구 공공임대 특별공급 1순위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쏟아지는 저출생 정책과 달리 합계출산율은 2015년 1.24명 이후 매해 감소해 2022년 0.78명을 기록했다.
김 위원장은 정권마다 바뀌는 단편적인 정책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는 “정책이 영향을 미치고 총괄적 지표로 가시화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며 “선진국의 저출생 대응 정책은 장기적인 목표를 갖고 일관성 있게 지속적으로 실행해 효과를 발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의 경우, 정책의 효과가 드러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고 대선‧지선을 거치면서 수시로 정책이 나왔다”면서 “정책 방향이 유지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지켜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출생은 기업 위기로도 이어진다. 출생아 감소는 인구 및 노동력 약화를 불러온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한국 기업 10곳 중 7곳은 급속한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경제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경제위기는 인력 절대 부족, 세수 급감, 내수기반 붕괴, 자산 가격 급락 등을 의미한다.
김 위원장은 기업이 인구 감소의 위기감을 적극적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인구 위기는 주력산업 분야 노동력 부족, 거시경제 불확실성 증대, 산업구조 변화 등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실질적 일가족 양립 환경 조성에 기업이 적극 나서야 한다”며 “가족친화경영을 핵심 목표로 육아기 유연한 근로 방식이 보편화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답은 정해져 있다…현장 안착이 중요
이미 우리사회에 저출생 완화를 위해 기업이 해야 할 역할은 정답처럼 정해져 있다. 일가족 양립을 위해 사내어린이집, 육아휴직, 유연근무제 등이다. 제도는 마련됐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눈치 보며 쓰지 못하는 상황이 많다.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가 크다. 통계청 ‘2022년 육아휴직 통계 결과’에 따르면 육아휴직 사용자 수는 19만9976명으로 전년 대비 14.2% 증가했다. 그러나 이 중 62.7%(12만5484명)이 대기업‧중견기업으로 분류되는 ‘300인 이상 기업체’ 소속이다. 5인 미만 소기업에서 육아휴직 비율은 각각 32.7%와 3.2%로 훨씬 낮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복지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김 위원장은 “공공기관과 대기업 등은 마련된 제도 안에 추가적인 지원으로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지만 중소기업은 인식 부족 혹은 인력을 유연하게 운용하기 어려운 여건 때문에 우수 인력 기피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에는 일가족 양립 정책의 제도적 기반이 미흡했다. 그러나 요즘 시대에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제도는 갖춰졌다. 기업에 필요한 것은 맞춤화된 제도와 현장 안착이다. 김 위원장은 “현재 기업 내 저출생 제도는 수준만 보면 선진국보다 뛰어나다”고 진단했다. 다만 “실질적으로 제도가 정착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기업, 작업장마다 달라 현장 정착이 어렵다”며 “정책 도입 후 원활하게 될 수 있도록 기업별 세밀한 조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답은 현장에 있다”며 “(저출생 관련 제도를) 정부가 제시하는 것이 아닌 구성원들이 만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기업 내에서 ESG 위원회, 출산장려위원회 등을 만들어 각자 맞는 모델을 찾고 그 과정에서 근로자 의견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며 “노동조합 역시 문제에 무관심했는데 핵심 의제로 삼고 적극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의 저출생 역할 확대를 위해서는 정부 지원도 필요하다. 김 위원장은 “기업별 맞춤형 ‘가족 친화 일터 조성방안’ 컨설팅을 강화하고 가족 친화 우수 기업에 대한 법인세 감면 등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청년 고용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확대도 필요하다”며 “특히 지방 청년 고용 기업 지원을 확대해 지방 일자리 확대를 위한 전략적 산업 이전 등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고용보험기금을 벗어난 새로운 기금 조성 필요성도 제기됐다. 김 위원장은 “정부는 일가족 양립의 실질적 환경 조성을 위한 재정 확보를 근본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며 “육아휴직‧출산휴가 급여, 육아기 근로 시간 단축 등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제도 이용률이 낮음에도 고용보험기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는 한계에 도달했다”며 “새로운 기금 검토를 통한 재정 투입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영미 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졸업 △ 서울대 사회복지학 박사 △ 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보건복지부 사회보장위원회 위원 △ 한국사회보장학회 이사 △ 한국가족사회복지학회 연구분과 위원 △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상임위원 △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