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기업의 역할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핵심은 부모가 직장을 다니면서 아이를 부담 없이 낳을 수 있는 환경이다. 일·가정 양립에 기여하고 있는 기업의 모범사례를 찾아봤다. |
“초등학교 입학 자녀 돌봄 지원 복지 제도를 활용하며 학교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자녀의 새출발을 함께 하는 귀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 증권회사 특성상 이른 출근으로 인해 아침 시간에 아이와 짧은 인사도 나누지 못하는 나오는 날이 대부분이라 등원·등교시간에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기 마련인데, 복지제도를 활용해 가장 중요한 타이밍에 유용한 육아 지원 제도를 활용할 수 있어 아이와 부모 서로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뜻깊은 시간이 됐습니다”
저출생 문제의 심각성이 날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다. 이는 기업 입장에서도 악재다. 기업은 사람들을 고용해서 자본을 넣어 생산 활동과 서비스를 창출하는 데 목적을 둔 만큼, 인구가 줄어들면 높은 수요 대비 공급이 치열해지면서 노동시장 쏠림 현상을 야기해서다. 반대로 생각하면 가족친화제도를 제대로 구비한 기업이 선택받는 시대가 올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이같은 기업의 행보는 저출산 문제 해결에도 크게 영향을 준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장기간 육휴 지원에 복귀 시 경력단절 예방까지…여성 인재 등용문도 ‘활짝’
증권업계에서 가족친화제도를 중시하는 곳은 KB증권이 꼽힌다. 업계 관계자들은 “타 대형 증권사들도 임직원들의 출산·육아를 지원하기 위한 복지제도를 구비하고 있으나, 제도 자체의 규모 측면에서 일부 미흡한 경우가 있다”며 “KB증권은 다른 증권사 직원들이 볼 때 부러움을 살 정도로 유연한 기업문화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KB증권의 가족친화문화 조성 핵심은 ‘일과 가정의 양립’이다. 실제 현장에서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지원 정책 및 제도 필요성에 공감하고, 출산·육아기 시기가 일·가정 양립 및 경력 단절 방지를 위해 가장 중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했다.
현재 KB증권은 임신근로자의 경우 단축 근무 및 유연 근무를 실시함과 동시에 연장 근로를 차단하고 있다. 출산 전후 휴가를 일태아의 경우 120일, 다태아의 경우 150일로 제공해 법정 기준일인 일태아 90일, 다태아 120일보다 많이 제공 중이다. 아울러 산후에는 일태아의 경우 60일, 다태아의 경우 75일의 휴가를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상태다.
육아휴직도 출산휴가 120일 포함 자녀 1명당 2년으로 법정기한보다 길게 부여했다. 또한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의 효과적인 육아를 위해 2회로 분할 사용이 가능하도록 구비했다. 난임을 겪는 직원들을 위해서는 6개월(연장 시 최대 1년)의 휴직 제도를 시행하고, 올해부터는 난임시술휴가를 기존 연 3일에서 연 7일로 늘렸다. 이외에도 PC-ON/OFF제, 임직원 대상 장기 휴가, 집중 휴가제도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같은 제도는 직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는 평가다. 쿠키뉴스 취재에 응답한 한 여성 직원은 “임신 초기 안정이 필요한 시기에 12주까지 하루에 2시간씩 단축 근무를 하며 무탈하게 보낼 수 있었고, 만삭의 몸으로 출퇴근이 힘들었을 즘에는 출산예정일 한 달 전에 출산휴가를 들어가 컨디션 관리를 하면서 새 생명을 맞이할 준비를 잘할 수 있었다”면서 “어린 자녀를 일찍 보육기관에 보낸다는 게 마음이 쓰였는데, 출산휴가 포함 2년간 육아휴직을 하면서 아이와 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엄마와 아이의 애착관계 형성에 큰 도움이 됐다”고 강조했다.
남성 직원들의 출산휴가도 제공한다. KB증권은 남성 직원 대상으로 배우자 출산 시 출산일 90일 이내에 10일 유급휴가(1회 분할 가능)을 지급한다. 지난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총 119명의 남성 직원이 배우자 출산휴가를 활용했다.
KB증권은 국제연합(UN) 여성역량강화원칙(WEPs) 공식 지지기관으로써 출산·육아기에 임신근로자의 경력 단절 방지를 위한 대책도 마련했다. 육아휴직 직원 대상으로 업무 복귀 시 연결성 제고 및 역량 강화를 위한 KB W.I.T.H 온라인교육과 전문가 특강 등 자기주도 학습을 지원한다.
아울러 유능한 여성 인재가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임원 및 관리자 직책까지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여성 일잘러 과정 △예비 여성 리더 과정 △여성 팀장 Value-Up 과정 △신임 여성 부점장 △WE STAR 멘토링 과정 등 주니어부터 리더 직급까지 단계별 맞춤형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같은 제도에 힘입어 지난해말 기준 KB증권 전사 부점장급 이상 여성 인력 22.3%, 본사 팀장급 여성 인력 26.7%, 본사 팀원급 여성 인력은 43.9%로 각각 전년 대비 2.2%p, 2.7%p, 1.8%p 상승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일·가정 양립을 위한 가족친화제도 구비 및 지속 개선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홍석철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금융권은 하나의 서비스업인 만큼 최근에는 남성보다 여성들이 많이 진출해 있을 것이다. 이 경우 내부에서도 일·가정 양립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으로 짐작된다. 이에 최근 금융권에서는 혁신적인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진단했다.
“임직원 출산과 건강한 가정생활을 응원하는 제도 발전에 힘쓸 것”
가족친화제도들이 취지에 부합하게 잘 운영되기 위해서는 임직원들의 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 기업문화·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이태엽 KB증권 이사(인사관리부장)은 KB증권이 가족친화문화를 적극·지속적으로 조성하는 것에 주력한다고 귀띔했다. 이태엽 이사는 KB증권에서 25년째 근무 중으로 기업문화 등 인적 자원을 관리하고 지원하는 역할의 책임자다.
이 이사는 “가족친화적 기업문화 덕분에 임신기간 근로시간 단축, 유연근무제, 출산 전후 휴가, 육아휴직 등 다양한 제도들을 눈치 보지 않고 온전히 사용할 수 있는 회사 분위기 자체가 가장 큰 자랑 중 하나라고 많이들 말씀하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에서 환경과 분위기를 제공함과 동시에 주변 동료 직원들도 출산·육아기의 직원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눈치 보지 않고 육아휴직 및 근로시간 단축 등 다양한 제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이해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KB증권은 육아휴직 이후 경력 단절이 우려되는 여성 직원에 대한 다양한 지원책을 제공하는 상태다. 이에 지난해 기준 여성 정규직 근로자 근속연수는 16년으로 업계 최상위권 수준에 도달했다. 특히 여성 직원이 임원 등 경영진까지 발돋움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있다. 이 이사는 “경영진 후보군 중 여성 비율을 확대하고, 업계 전문성을 보유한 여성 경영·관리자를 영입하는 등 양적, 질적 노력도 병행 중이다”고 했다.
이어 그는 “양적측면에서는 예비 경영진 후보인 부점장급에서 여성이 지난 2019년 24명에서 현재 43명으로 크게 증가하는 등 후보 풀을 확충했다”며 “질적으로는 자산관리(WM)부문의 핵심인 리테일사업총괄본부의 경우 업계 최고 전문성을 보유한 이재옥 전무가 총괄지휘하는 등 여성 리더를 중용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또한 KB증권은 출산·육아기 단계뿐 아니라 양육 단계 지원을 위한 △중·고등·대학 학자금 지원 △주거 불안정 해소를 위한 주택 자금 대출 △생활안정 지원을 위한 생활안정자금 대출 등 생애 주기에 필요한 다양한 지원책을 운영 중이다.
이 이사는 “저출생은 자녀 양육에 대한 부담, 주거 불안정, 고용 불안정, 출산 후 직업적 성취에 대한 불안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야기된다고 생각한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임직원의 생애 주기 전 과정에 거쳐 촘촘하고 빈틈없는 지원책들을 잘 정착시키고 활용도 장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KB증권은 가족친화제도 제고에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이 이사는 “향후 임직원들의 출산과 건강한 가정생활을 응원하는 좋은 제도들을 발전시키고,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등 일·가정 양립을 위한 문화를 지속해서 적극 조성해 나갈 것”이라며 “성별 균형 제고 및 경력단절 예방을 위한 노력도 병행해 우수 인재들이 마음껏 역량을 발휘하고 일할 수 있는 좋은 일터를 제공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창희 기자 windo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