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기적’ 뒤 어두운 이면…‘저출생 직격’ 韓 스포츠 [저출생, 텅 빈 운동장①]

‘파리의 기적’ 뒤 어두운 이면…‘저출생 직격’ 韓 스포츠 [저출생, 텅 빈 운동장①]

현실로 다가온 저출생 문제…“운동하는 아이들이 적어요”
정대현 모교 역사의 뒤안길…명문 야구부 줄줄이 해체
“체육을 ‘국영수’처럼…정식 교육 인정, 접근성 높여야”

기사승인 2024-09-02 09:26:48
사진은 본문 내용과 무관.

지난 8월11일 막을 내린 파리올림픽에서 한국은 ‘소수 정예’로 기적을 일궜다. 1976 몬트리올올림픽 이후 48년 만에 최소 인원(21개 종목·144명)을 파견해 역대 최고 성적과 동일한 금메달 13개(은 9·동 10)를 목에 걸었다. 

이제는 ‘파리의 기적’ 뒤에 감춰진 어두운 이면을 볼 때다. 현재 한국 스포츠는 ‘저출생 문제’에 직면했다. 선수가 줄어들었다는 하소연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저출생 문제는 현실로 다가왔다. 이번 파리 대회에서 한국 구기 종목은 여자 핸드볼을 제외하고 모두 전멸했다. 한국 최고 인기 스포츠인 축구도 속절없이 무너졌다. 축구는 1984 LA올림픽 이후 40년 만에 올림픽 티켓을 얻지 못했다.

현 시점 한국 스포츠 중심이자 전성기를 구가하는 선수들은 넓게 보면 1990년부터 2005년 사이 태생이다. 당시 한국 연간 출생아 수는 최대 72만1185명(1994년), 최소 43만8707명(2005년)이다. 2002년부터 50만이 붕괴됐지만, 합계출산율(15~49세 가임기 여성이 가임기간 동안 예상 평균 출생아 수)은 1 이상을 간신히 유지했다. 

이후 힘겹게 40만명 선을 지키던 출생아 수는 2017년부터 급격하게 감소했다. 2017년 35만7771명이 태어나며 통계청 집계 사상 처음으로 30만명 선에 진입했다. 급기야 2018년(0.98)을 시작으로 합계출산율 1이 무너졌다. 지난 28일 발표된 2023년 출생아 수와 합계출산율은 각각 23만28명, 0.72명에 불과하다. 이는 2022년 기준 OECE 국가 합계출산율 평균인 1.49에 크게 못미치는 수치다. OECD 국가 중 합계출산율 1 미만인 국가는 한국밖에 없다.

자연스레 체육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유소년 체육 전체가 위기에 봉착했다. 2017년생이 초등학교 1학년이 되면서 유소년 체육도 ‘인구 절벽’을 본격적으로 마주했다. 가뜩이나 아이들이 없는데, 그중 체육을 접한 인원은 더 적다는 게 현장 분위기다.

경기도 소재 리틀 야구단 감독 A씨는 “운동하는 아이들 수가 적다. 2~3년 전에 비하면 20명이 줄었다. 취미반은 어느 정도 확보했는데, 선수반이 다 빠졌다”고 운영 어려움을 토로했다. 야구부원 학부모 B씨는 “과거에는 학부모들이 지역 명문 야구부에 가려고 애를 썼다. 야구부는 아이들을 골라서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야구부가 학생이 없어, 역으로 학부모들에게 입학을 권유한다. 다 저출생 때문에 생긴 문제”라고 꼬집었다.

지표로 보면 위기는 뚜렷이 나타난다. 스포츠지원포털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2년까지 9년간, 12세 이하 야구부원은 연평균 4069명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올해 야구부원은 단 3140명에 그쳤다. 지난해 3804명도 적은 수치였는데, 이에 비교해 무려 650명 이상이 빠져나갔다.

사진은 본문 내용과 무관.

롯데 자이언츠 ‘레전드’ 마해영과 박정태의 모교로 알려진 부산 대연초 야구부는 매년 선수 수급 문제에 시달리는 중이다. 2023년 해체 위기를 맞이했으나 가까스로 이겨내고, 2024년부터 대회에 나서고 있다. 김성한, 정대현 등을 배출한 ‘호남 명문’ 군산중앙초 야구부는 지난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사실상 야구부 유지가 어려워진 셈이다.

마해영 리틀야구연맹 본부장은 모교의 위기를 안타깝게 바라봤다. 마 본부장은 “모교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참 아프다. 초등학교는 학생을 확보하기 어렵다. 저출생 영향을 피부로 느끼는 중”이라고 탄식했다.

프로야구 지방 구단 스카우터는 “우리 지방은 유소년(리틀), 초등학교 선수 수급이 원활하지 않다. 초등학교 감독님들이 힘들어하더라”며 “수급이 안 되면, 앞으로 리그 활성화에 어려움을 겪는다. 퀄리티도 떨어질 수 있다. 체육 산업이 위축될 시기가 조만간 올 것”이라 경고했다.

수도권 야구 구단 스카우트팀 관계자는 “아직 고교, 대학 무대에서 저출생이 체감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초등학교나 리틀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원이 50% 감소했다고 한다”면서 “한 개인이나 지자체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상위 기관 차원에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소년 대회를 주관하는 대한유소년야구연맹 관계자는 “예전보다 선수가 줄어든 건 사실”이라며 “저학년이 부족하다. 특히 1학년(2017년생)이 너무 적다 보니, 1학년 담당으로 코치를 편성할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생활체육과 엘리트 체육의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는 현장의 지적도 나온다. “저출생 영향으로 스포츠 클럽들은 학교 체육부 없어지듯 사라질 수밖에 없다”던 이지환 유소년 농구 클럽 대표는 “체육이 ‘국영수’가 돼야 한다. 정식 교육으로 인정받는 분위기면 모두가 할 것 아닌가. 체육 접근성을 높여야 해결되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김영건 기자
dudrjs@kukinews.com
김영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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