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 시장의 상장종목 100개로 구성된 코리아 밸류업 지수가 공개됐다. 밸류업 지수는 기업의 주주환원 및 자본효율성 제고 노력 확산에 일조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투자업계는 세제혜택 지원 여부가 밸류업 지수의 성공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분석한다.
한국거래소는 24일 코리아 밸류업 지수의 구성종목과 선정기준을 발표했다. 밸류업 지수는 국내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한 정부 정책의 일환으로 기업가치 제고에 노력한 기업에 자금이 유입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이다. 지수를 추종하는 펀드상품을 통해 기관투자자의 패시브 자금(특정 주가지수를 추종하는 투자자금) 투입을 유도할 수 있어서다.
밸류업 지수에 포함된 기업은 유가증권시장 67종목, 코스닥 33종목으로 총합 100개다. 세부적으로 △정보기술 24개사(삼성전자, SK하이닉스, 포스코DX 한미반도체, 리노공업 등) △산업재 20개사(대한항공,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두산밥캣, 한진칼, 현대엘리베이 등) △헬스케어 12개사(셀트리온, 한미약품, 메디톡스, 종근당, 씨젠 등) △자유소비재 11개사(현대차, 기아, 골프존, 케이카 등), △금융 10개사(신한지주, 삼성화재, 한국금융지주, 현대해상 등) △소재 9개사(고려아연, 효성첨단소재, 효성티앤씨, 한솔케미칼 등) △필수소비재 8개사(오리온, 삼양식품, 동서, 오뚜기 등) △커뮤니케이션 5개사(엔씨소프트, 에스엠, JYP, SOOP 등) △에너지 1개사(S-Oil) 등이다.
밸류업 계획 조기공시 기업이 대거 포함됐다. 정부 정책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한 것이다. 거래소는 지난 23일까지 밸류업 계획을 조기 공시한 기업에 대해 지수 특례편입(2년간 유지)을 실시했다. 다만 지수 운영에 필요한 최소 편입조건을 충족한 기업만 편입됐다.
이부연 거래소 경영지원본부 상무는 “전날 기준으로 조기공시한 기업은 총 12개사다. 이들 기업 가운데 7개 종목이 밸류업 지수에 편입됐다”면서 “7개사 중 3개사는 공시특례와 관계없이 선정기준을 충족했다. 4개사는 조기공시 선도기업으로서 편입됐다. 그 외 5개종목은 최저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배제됐다”고 설명했다. 특례편입으로 지수에 입성한 종목은 DB하이텍, 현대차, 신한지주, 메리츠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미래에셋증권, 키움증권 등이다.
하지만 밸류업 지수 종목에서 부동산 기업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에 대해 이 상무는 “앞서 밸류업 지수에 편입될 후보 종목들에서도 부동산 기업이 현저히 적었던 영향이다”라며 “일부러 배제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밸류업 지수, ‘5단계 스크리닝’ 적용…가치제고·우수기업 편입
설명에 따르면 거래소는 지수 편입 기업을 선정할 때 특정 산업군에 편중되거나 소외되지 않고 고르게 편입될 수 있도록 상대평가 방식을 채택했다. 여기에 더해 주가순자산비율(PBR) 절대수치가 낮더라도 산업군에서 50% 이내일 경우 지수편입이 가능하도록 조정했다. 이로 인해 향후 가치성장이 기대되는 기업도 적극 편입됐다.
또한 밸류업 지수는 기존 코스피 200, KRX 300 등 시장 대표지수와 차별화를 위한 노력이 더해졌다. 기관 참여 확대와 관련 상품화 촉진, 신규수요 창출을 노리기 위함이다. 이에 지수 특성을 반영한 주주환원, 자본효율성, 밸류업 공시 등 다양한 질적 요건을 도입해 시가총액 상위기업이라도 배제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개별종목 지수 내 비중상한을 15%로 제한해 다른 대표지수와 상관계수를 감소시켰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초대형주의 지수 영향도 줄어들었다. 일례로 코스피 지수는 시가총액 1,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부진하면 궤를 같이하는 양상을 보인다.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만큼 지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상한 제도를 도입한 셈이다.
앞서 밸류업 정책을 진행한 일본 사례와도 차이점을 뒀다. 일본 JPX Prime 150 지수의 경우 자본효율성 75종목에 시장평가 우수기업 중 시총 상위 75종목으로 이원화된 기준을 적용했다. 이는 산업군별 특성을 배제하고 자본지표를 평가기준으로 선정한 것이다. 이에 은행 등 일부 섹터와 도요타자동차를 비롯한 대표기업이 지수에서 제외되는 문제로 이어졌다. 거래소 관계자는 “밸류업 지수는 여러 투자지표와 업종 특성 및 시장 간 밸런스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설계했다”고 말했다.
거래소는 이러한 선정 방향에 따라 밸류업 지수 종목을 ‘5단계 스크리닝’을 통해 선별했다. 구체적으로 △시총 상위 400위(전체누적시총의 90% 수준 이내 △최근 2년 연속 적자 또는 2년 합산 손익 적자 기업 배제 △최근 2년 연속 배당 및 자사주 소각 실시 △PBR 순위 전체 및 산업군 내 50% 이내 △자본효율성 평가(산업군별 자기자본이익률 순위비율) 우수 기업 등이 조건이다.
거래소는 내년 6월 정기심사부터 최소 편입요건을 충족하는 표창기업도 특례편입을 실시할 예정이다. 이후 2026년 6월 정기심사부터는 밸류업 공시이행기업 중심으로 지수를 구성할 방침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다양한 지수상품 개발 및 투자 활성화를 통해 한국 자본시장 재평가에 일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상장기업에 지수 편입 및 유지에 대한 동기를 제공하여 주주환원 및 자본효율성 제고 노력 확산도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밸류업 지수 성패 결정, 세제혜택에 달렸다”
증권가에서는 밸류업 지수가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세제혜택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진단한다. 권병재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밸류업 지수 성패에 있어 향후 세제혜택이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7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4 하반기 경제정책방향’과 ‘역동경제 로드맵’에서 언급된 세제혜택은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기업에게 주주환원 증가 금액에 대해 법인세 5% 세액공제를 제공한다는 내용과 투자자 대상 배당 증가 금액 등에 저율 분리과세를 지급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상속세와 관련해 최대주주 할증평가를 폐지하는 방안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남아있다. 향후 발표될 밸류업 지수를 추종하는 ETF 분배금에 당장은 세제혜택 적용이 어렵다는 점이다. 권 연구원은 “밸류업 개별 종목의 배당에는 세제혜택이 적용돼도, 이들을 구성 종목으로 하는 펀드나 ETF의 분배금에 대한 배당소득세는 그렇지 않다”며 “앞으로 세제혜택의 범위가 ETF로 확장된다면, 밸류업 ETF 역시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 이사장은 밸류업 지수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세제상으로 보면 배당과 관련된 투자소득에서 사전정산의 개념으로 해석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예를 들어서 펀드에 가입하게 되면, 펀드에서 자산운용을 통해 얻은 소득을 배분할 경우 그게 배당소득으로 편입돼 종합과세대상이 되는 문제가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런 문제에 대해서 투자자들이 주식 투자에 대한 단기화를 부추기는 측면도 존재한다”며 “금융투자소득세에 대한 도입 시기 문제를 포함해 이런 부분들도 함께 논의해서 개선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밸류업 지수는 오는 30일부터 실시간 지수 산출(1초단위)을 개시할 예정이다. 이후 11월초 관련 ETF를 증시에 상장할 계획이다. 상장예비심사, 증권신고서 효력발생, 상장심사 및 펀드 설정 등에 통상 6~8주 소요되기 때문이다. 국내 ETF 시장 진출 운용사 26개사 중 10개사 내외로 밸류업 지수 ETF 상품화에 참여할 전망이다.
거래소는 밸류업 지수를 기초로 하는 후속지수를 개발할 방침이다. 후속지수는 밸류업 지수를 활용한 옵션 전략지수, 레버리지 지수, 섹터 지수, 밸류업 Top 10 지수 등이 거론된다. 거래소는 “저평가주와 중소형주 등을 대상으로 하는 밸류업 지수 개발 수요도 존재한다”면서 “향후 신뢰할 수 있는 세부 선별기준 마련 및 시장 의견 수렴 등을 거쳐 지속적으로 후속지수 개발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