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정부의 연금개혁 방안을 두고 강하게 맞붙었다. 여당은 재정 안정, 야당은 소득 보장에 중심을 둬야 한다고 주장하며 격돌했다. 특히 국고 투입, 자동조정장치 도입 등을 두고서도 시각차를 드러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에서 국민연금공단과 한국사회보장정보원 등을 대상으로 국정감사를 실시했다.
이날 쟁점은 정부가 낸 연금개혁안이었다. 정부는 보험료율(내는 돈)을 9%에서 13%로, 소득대체율(받는 돈) 역시 40%에서 42%로 상향 조정하는 모수개혁안을 내놨다. 또한 세대별로 보험료율 인상 속도를 다르게 적용하고, 연금 수령액을 물가 상승률에 맞춰 자동으로 조정해 수령액을 깎는 ‘자동조정장치’ 도입을 제안했다.
여야는 연금개혁안을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는 데엔 공감대를 형성했다. 국민의힘 원내대표인 추경호 의원은 “연금개혁은 노무현 정부 등 역대 정부에서 많이 고민하던 문제”라며 “지난 문재인 정부 때는 정부안 자체가 없었고, 이번엔 정부가 고심해서 안을 낸 것이기 때문에 이제는 국회가 논의에 속도를 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미래 세대 청년을 위해서라도 개혁적인 방안과 함께 여야가 같이 고민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역시 같은 입장이다.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현행 보험료 9%, 소득대체율 40% 하에서는 2055년 기금이 소진된다”며 “연금개혁 방안은 미래 세대가 흔쾌히 자기 보험료를 부담할 수 있는 안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더 내고 덜 받는 개악” vs “文 정부 땐 단일안 못 냈다”
연금개혁 방안을 두고서는 여야의 의견 차가 좀처럼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야당은 정부의 연금개혁이 ‘더 내고 덜 내는’ 방식이라며 질타했다.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부의 연금개혁안에 담긴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면 연금 수급액 상승률은 물가 상승률보다 적어지게 된다”며 “자동조정장치는 곧 자동삭감장치”라고 비판했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 인상을 두고 “출생 시점 1년 차이로 연금 보험료를 더 내야 하는 역전 현상이 일어나는데 (정부는) 이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이 정도면 국민들이 ‘연금 봉기’를 할 상황”이라며 “더 내고 더 받는 연금개혁이 아니라 더 내고 많이 덜 받는 개악이다. 국민의힘도 ‘모순덩어리 정부안’을 더 이상 고집하지 말라”고 비꼬았다.
이에 대해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은 “국감에서 야당으로서 현재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정부안에 대해 비판을 할 수 있다”면서도 “(정부 측 연금개혁안의) 맥락을 정확히 이해하고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맞지 않나. 발언마다 꼬투리를 잡는다면 참 어렵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 때는 네 가지의 제도 개선 대안을 냈고, 단일안은 못 냈다. (윤석열) 정부가 낸 연금개혁안은 완벽하진 않다.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면서 “국회 차원에서 논의를 숙성시켜 국민 다수가 수긍할 만한 연금개혁안을 내는 것이 우리의 숙제다. 재정당국이 참여하는 국회 차원의 특위를 구성해 종합적으로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국고 투입 필요성’ 두고 공방…“부자가 더 혜택 봐” 비판도
특히 정부의 재정 투입 필요성을 두고서는 큰 소리가 오갈 정도로 정면 충돌했다.
야당은 기금 소진을 피할 수 없는 만큼, 선제적으로 국고를 지원해 미래 세대의 부담을 덜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은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해도 결국 2088년 기금이 고갈된다. 작년에 태어난 아이들부터는 연금을 줄 돈이 없는 것”이라며 연금제도 유지를 위해선 국고를 투입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반면 여당은 국고 투입 시 고소득층에 더 유리하다며, 크레딧 지원 등에 국가 재정을 투입하는 것이 맞다고 봤다. 안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국고를 투입하면 소득 상층부인 부자일수록 더 큰 혜택을 본다”면서 “국민연금은 낸 보험료 수준에 비례해서 받아가는 ‘소득비례 연금’이다. 사회보험의 원리에 따라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기초연금, 군 복무·출산 크레딧에 투입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안 의원의 발언 과정에서 김남희 민주당 의원이 ‘A값’을 언급하며 반박에 나서 소란이 일기도 했다. 급기야 정회 요구가 나오기도 했다. 국민의힘 간사인 김미애 의원은 “김남희 위원이 안상훈 위원의 발언 중 큰소리로 개입했다고 여겨져 중단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복지위원장인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이것을 가지고 계속 정회를 할 수 없다”고 했다.
김남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질의 시간에 발언 기회를 얻고 재차 반론을 펼쳤다. 국민연금에는 소득재분배 기능이 있기 때문에 국고 투입이 고소득층에게만 유리한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실제 국민연금 제도는 연금 수령액 산정 시 자신의 소득과 전체 가입자의 평균 소득인 A값을 더해 계산하기 때문에 고소득층보다 저소득층에 유리하도록 설계돼 있다.
김 의원은 “국민연금은 A값인 소득 재분배 급여 부분과 B값인 소득 비례적 급여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또 상한선을 두고 있어 (월 급여가) 1000만원이든 2000만원이든 연금 납부액이나 수령액이 동일하다”며 “소득비례 원칙 때문에 국고 투입을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은 국민연금에 적용하긴 어렵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동조정장치나 세대별 차등 지원안이 아니라 국내총생산(GDP)의 1% 남짓 국고를 지원하게 되면 국민들이 우려하는 기금 고갈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며 “국고 투입 논의를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정부는 국고 투입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다. 김 이사장은 “국고를 얼마만큼, 언제, 어느 수준으로 투입할 것인지는 가입자들이 보험료를 얼마나 부담할 건지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면서 “부실기업을 정리할 때는 채권단이 들어오는데 채권단이 그냥 돈을 주지는 않는다. 자구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