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고 싶은 방향은 없어요. 그저 좋은 대본을 계속 만났으면 하고, 그 대본에 잘 얹혀서 흘러갈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배우가 아닌 나의 삶도 잘 살아 나갔으면 좋겠고요.”
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쿠키뉴스와 만난 배우 서현진(39)은 2024년을 “격변의 해”라고 지칭했다.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 ‘트렁크’에서 노인지로 분했던 그는 극 중 캐릭터의 결말처럼 더 이상 고이지 않고 흐르기로 마음먹은 모양새였다.
노인지는 결혼 직전 사라진 연인 도하(이기우)와 관계를 끊지 못하고, 기간제 결혼 회사 직원으로 일하면서도 그의 집을 떠나지 못하는 인물이다. 서현진은 이러한 노인지의 상처에 끌려 이 작품을 택했다.
“도하의 집을 5년 동안 지키고 있던 게 공감됐어요. 인지가 결혼 생활을 하는 게 사회적 가면이라면, 도하의 집은 인지의 내면이라고 생각했어요. 밖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집에 들어왔을 때 나만 느끼는 고독, 그게 아니더라도 나만 아는 내가 있잖아요. 인지도 이 집에서 나와야 한다는 걸 알았을 텐데, 도하에게 이기적이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스스로 벌주고 있는 것 같았죠.”
노인지가 홀로 카약을 타며 “섬 같아요”라고 말할 때 특히 와닿았다고 했다. “저도 집밖에 잘 안 나가는 스타일이고, 용감하게 변화하고 잘 적응하는 편이 못 돼요. 겁이 많거든요(웃음). 시간표가 있는 것처럼 루틴대로 사는데, 일주일이 비슷하게 돌아가요. 그게 저는 편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가끔 ‘내 삶이 너무 고여 있나?’, ‘너무 섬 같나?’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었어요.”
그간 작품 밖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서현진은 최근 ‘핑계고’, ‘덱스의 냉터뷰’ 등 유튜브 예능에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한정원(공유)을 만나면서 상처를 딛고 일어선 노인지 덕분에 도전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인지가 흐르기로 결정한 것처럼 작심한 건 아니지만, 인지의 태도에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회사에서 오래 같이 일한 실장님이 강력하게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시기도 했고, 저도 안 해봤으니까 이번에는 해볼까 하는 마음이었어요.”
전반적인 삶에도 작지만 큰 변화가 있는 요즘이다. “사는 데 너무 별일이 없나 싶더라고요. 별일 없는 게 최고지만요(웃음). 인지가 5년 동안 갇혀 살다가 결국 그 집을 나오잖아요. 그런 것처럼 최근에는 ‘대단히 큰일 나는 게 아니면 나가볼까?’라는 생각을 해요. 이사도 하고, 짐도 엄청 많이 버리고요. 요즘에는 안 하던 걸 좀 해보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