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현장이 아닌 ‘록 페스티벌’에 온 듯하다.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로제의 ‘APT.’가 울려 퍼지고, 시민들은 촛불 대신 응원봉을 들었다.
7일 오후 9시30분, 국회의사당 앞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시위 현장은 로제의 ‘APT.’, 에스파의 ‘위플래시’, 투어스의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다시 만난 세계’ 등 최신 노래가 울려 퍼졌다.
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 촉구 시위와 비교하면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김민기의 ‘상록수’나 양희은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무거운 분위기에서 시위를 진행했지만, 이제는 유행하는 아이돌 노래에 맞춰 떼창을 하며 춤을 추기도 했다.
그룹 ‘엑소’ 팬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나왔다는 최예빈(24·여)씨는 “대통령 탄핵을 논하는 심각한 상황이지만, 시위 참여 자체를 조금 즐기고 싶어 응원봉을 가지고 나왔다”며 “X(전 트위터)에서 팬들끼리 응원봉을 들고 나오자는 이야기도 나왔는데, 오늘 실제로 와 보니 정말 많이 보여서 반가웠다”고 설명했다.
응원봉에 ‘탄핵’이라고 글씨를 써 붙인 김모(23·여)씨는 “같은 응원봉을 들고 있는 팬을 서로 눈인사를 하며 힘을 얻었다”며 “한 팬이 X에 응원봉 전용 탄핵 문구 도안을 만들어서 팬들에게 공유했다. 프린트해서 붙였다”고 밝혔다.
아이돌 팬 친구끼리 각자 응원하는 가수의 응원봉을 들고 만났다는 안모(22)씨는 “샤이니월드(그룹 샤이니 팬덤명)라는 정체성으로 집회 현장에 나왔다. 우리 팬덤도 이런 탄핵 집회에 동참한다는 마음으로 참여했다”며 “시험기간이라 시위 참여를 망설였지만, 오늘만큼은 나와야 할 것 같아 두 시간 넘게 걸려 현장에 왔다”고 설명했다.
다이소에서 재료를 구매해 직접 발광 봉을 제작했다는 구모(23)씨는 “최대한 밝게 빛나는 물건을 들고 싶었는데, 마땅한 것이 없어 어제 만들었다”며 “오늘 탄핵이 확정돼 축하하고 싶다는 의미로 조화 꽃다발을 만들고, 그 위에 LED 전구를 사서 감았다”고 설명했다.
이틀 뒤 학과 전공 시험을 앞두고 있다는 김모(22)씨는 “7년간 응원하던 일본 가수의 응원봉을 들고 왔다"며 "꼭 참여해야 할 것 같아 아이패드로 시험 공부하면서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탄핵 투표 결과가 한두 표정도로 결정 날 것 같아서 조금이라도 힘 보태려고 왔다”고 전했다.
이들은 시대가 변하는 만큼 응원봉과 함께 집회 자체를 즐기는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아이돌 하이라이트 응원봉과 롯데 자이언츠 응원봉을 든 김현주(22)씨는 “5.18 민주화 운동 때 시위 방식과 지금 시위 방식이 다르다고 하지만 그 의미는 같다고 생각한다”며 “응원봉이 시대가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분위기가 ”고 말했다.
김씨는 “탄핵되지 않는다면 또 집회에 참여할 것”이라며 “민주주의가 다시 꽃피울 수 있게, 민주주의를 위해 다시 거리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