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째 이어지는 의정갈등 상황에서 차기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을 선출하는 보궐선거전의 막이 올랐다. 후보자 5인은 첫 정견발표 자리에서 정부를 규탄하며 의협이 주축이 돼 의료개혁을 저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대한의사협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0일 의협 대강당에서 제43대 의협 회장선거 후보자 첫 합동설명회(정견발표)를 열었다. 지난 3일 후보자 심사와 등록이 마감되며 보궐선거에 출마하게 된 최종 후보자는 총 5명이다. 번호 추첨 결과 △기호 1번 김택우 전국광역시도의사협의회장(강원도의사회장) △기호 2번 강희경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소아신장분과 교수) △기호 3번 주수호 전 의협 회장(미래의료포럼 대표) △기호 4번 이동욱 경기도의사회장 △기호 5번 최안나 의협 기획이사 겸 대변인으로 정해졌다.
김택우 후보는 “정부는 의료의 본질을 외면하고 오직 정권의 논리에 따라 추진한 거대 의대 정원 모집 확대를 지금 당장 중단해야 한다”며 “한번 시작한 의료 붕괴는 도미노처럼 국민 생명을 위협하고 회복하기 어려운 국가적 재앙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 후보는 지난 2월 이필수 전 의협 회장 집행부가 정부의 의대 입학 정원 2000명 확대 및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발표 등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 후 ‘의대 증원 저지 비대위원장’을 맡아 이름을 알렸다.
강희경 후보는 “어떤 의료체계가 가장 좋을지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개선해 나가겠다”면서 “상급병원 구조전환이 아닌 1차 의료를 근간으로 하는 의료체계 구조 전환이 먼저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의협이 의료계의 대표성이 있냐는 의문에 반박하기 어렵다. 회비 납부와 무관하게 모든 회원이 투표권을 행사해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비로소 의협이 의사 대표단체라고 할 수 있다”며 “의협이 권익단체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의료정책을 선도하고 장기적인 보건의료 계획을 마련할 수 있게 하겠다”고 덧붙였다.
주수호 후보는 “전공의, 의대생을 보호하기 위해 만약 회장이 감옥을 가야 한다면 명예롭게 생각하고 기꺼이 그 길을 가겠다”고 공언했다. 주 후보는 “지금처럼 엄중한 시기에 회장이 적응하기를 기다릴 여유가 없다. 회무에 대한 경험이 있고, 선거 이후 곧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준비돼 있는 사람이 회장이 돼야 한다”면서 “의료계의 일치된 의견을 사회에 어떻게 전달하고 정치권, 정부가 알도록 만들어 해결을 이어갈 것이냐가 핵심이다”라고 주장했다.
주 후보는 이날 과거 음주 운전을 하고 교통사고를 낸 것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2016년 3월 술을 마시고 서울 역삼동에서 양평동까지 약 15㎞를 운전하다 오토바이를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오토바이 운전자는 머리를 다쳐 숨졌다.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는 0.078%였다. 그는 이전에도 한 차례 더 음주운전이 적발돼 벌금형을 받은 바 있다.
이동욱 후보는 “모두 경찰의 처벌을 두려워할 때 가장 선봉에 서서 전공의 멘토·멘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눈보라를 맞으며 54주차 의료농단 투쟁을 했다. 서슬 퍼런 윤석열 정부를 향해 피켓을 들고 피멍이 들면서 싸워왔다”라며 “가장 잘 싸울 자신이 있다”고 했다. 이 회장은 주말마다 서울시청 대한문 앞에서 전공의·의대생과 정부의 의료정책을 비판하는 집회를 가져왔다. 윤석열 대통령의 아침 출근길에 맞춰 의학 교육 정상화를 촉구하는 1인 시위도 벌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발표에 나선 최안나 후보는 “정부 입맛대로 좌지우지 못 하도록 불합리한 실손보험과 수탁고시를 반드시 해결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최 후보는 “지난 6개월간 대변인으로서 의협이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봤지만 제대로 일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면서 “수세적으로 밀려오는 법안을 막는 데 그쳐선 안 된다. 의협으로 뭉쳐야 정부를 바꿀 수 있고, 당장 치고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친 비상계엄은 2월 대통령이 내지른 의대 증원 2000명으로부터 시작됐다”며 “정부가 날린 수많은 어음을 모두 현금으로 받아오겠다”고 부연했다.
의협 회장 선거 후보자 합동설명회는 이날을 시작으로 17일 부산, 19일 대구 등에서도 진행될 예정이다. 보궐선거는 내년 1월2일~4일 전자투표 방식으로 치러진다.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1, 2위 후보를 대상으로 7일부터 이틀간 결선투표를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