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분쟁 중인 영풍·MBK파트너스와 고려아연의 임시주주총회 표 대결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양측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다만 여론전 등 분쟁 과정에서 시장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7일 IB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최근 이사회를 통해 다음달 23일 열릴 임시주총에 올릴 안건을 확정하고 의결했다. 안건에는 사외이사의 이사회 의장 선임과 소수 주주 보호 규정 신설, 분기 배당 도입, 발행주식의 액면 분할 등의 내용이 담겼다. 특히 주주 ‘유미개발’이 제안한 집중투표제 도입 안건과 이사회 이사 수 19명 상한 등도 포함됐다.
집중투표제란 기업이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출할 때 주주가 후보별로 1주당 1표씩 행사하는 것이 아닌, 1주당 뽑을 이사 수만큼의 투표권을 받은 뒤 선호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이사 2명을 뽑을 때 1주를 가진 주주는 총 2표를 행사할 수 있는데, 2표를 1명에게 몰아줄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고려아연 측은 “집중투표제가 소수 주주들의 의결권이 사표가 되지 않도록 하는 상법상 대표적인 ‘소액주주 권리 보호 방안’으로 평가된다는 점을 고려해 이를 적극 수용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MBK 연합은 고려아연 현재 정관이 집중투표제를 통한 이사 선임을 배제하고 있고, 정관 변경 이후에나 가능하기 때문에 유효하지 않다며 맞서고 있다.
이처럼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와중에 이번 표 대결 여론전의 핵심이자 경영권 분쟁 초기부터 꾸준히 제기된 MBK의 ‘외국인 투자’ 논란도 다시 점화되고 있다. 미국인인 김병주 MBK 회장이 투자심의위원회(투심위)를 총괄하며 유일한 거부권(비토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산업기술보호법과 국가첨단전략산업법 시행령에 따르면, 외국인과 외국인이 지배하는 회사가 합산해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을 인수하려는 행위는 외국인 투자로 판단하고 정부 승인을 받아야 한다. 비철금속 분야 세계 1위 기업인 고려아연은 관련 국가핵심기술 등을 보유하고 있다.
앞서 고려아연 역시 “중국을 비롯해 대부분이 해외자본으로 구성된 투기적 약탈자본이자 회장과 대표업무집행자, 주요 주주 등이 모두 외국인으로 알려진 MBK의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입장을 낸 바 있다.
이에 대해 MBK 측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외국인 경영진’이라고 언급한 인물 대다수는 MBK 홍콩 법인 소속이라 관련이 없고, 고려아연 투자를 진행 중인 ‘바이 아웃’ 부문의 MBK 유한책임회사 대표업무집행자는 윤종하 부회장이며, 고려아연에 대한 투자 및 주요 결정은 MBK 유한책임회사 공동 최대출자자이자 한국기업투자홀딩스 대표이사인 김광일 부회장이 주도한다”고 해명했다.
또 김병주 회장의 비토권과 관련해서는 “리스크 관리차원에서 투자결정에 대한 반대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 권리”라며 “금융기관의 최고위기관리책임자(CRO)와 유사한 역할로 투자에 관한 캐스팅 보트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같은 해명에도 외국인 투자 논란은 확산하는 모양새다. 미국 의회 내에서 핵심광물을 다루는 의원협의체인 ‘핵심광물협의체’ 공동의장 자격을 갖고 있는 에릭 스왈웰 미 하원의원은 최근 호세 페르난데스 미 국무부 차관에게 ‘탈중국 공급망 구축이라는 관점에서 중국 자본이 투입된 사모펀드가 고려아연과 경영권 분쟁을 겪는 데 우려를 표하며 이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공식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이처럼 연일 확산되는 여론전으로 시장 혼란이 가중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 지난 6일 최고가 240만원을 돌파하고 종가 180만원을 기록했던 고려아연의 주가는 지난 20일 종가 99만원대까지 떨어졌다가 26일 120만원대까지 오르면서 급등·급락을 반복하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여러 부문에서 제기되는 의혹과 해명에 주가가 시시각각 반응하고 있고, 임시주총 이후에도 소송을 비롯한 장기전이 전망되면서 불확실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면서 “특히 집중투표제 안건만으로 통과 여부가 불투명해 향방을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집중투표제가 통과되면 MBK 연합 측이 이사회 과반을 장악하기 더 어려워져 정기주총을 넘어서도 ‘표 싸움’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대내외적 경기 둔화 속 산업 명맥 유지를 위한 대비책 마련도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