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답은 ‘체질개선’…수천억 베팅·고강도 쇄신 나선 석화업계

결국 답은 ‘체질개선’…수천억 베팅·고강도 쇄신 나선 석화업계

- 롯데 화학군, 반도체 등 스페셜티 1300억 ‘베팅’
- 中 공급 과잉 등 여파에 기초석유화학→스페셜티 전환
- 석화산업 지원책 드디어 내놓은 정부…업계 “정부 주도 必”

기사승인 2024-12-29 06:00:06 업데이트 2024-12-30 16:54:17
롯데케미칼 대산공장 전경. 롯데케미칼 

중국발 공급 과잉 등 여파로 긴 부진에 빠진 국내 석유화학업계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산업계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 등 기초석유화학에서, 스페셜티(고부가가치) 제품 양산을 위한 생산라인 전환에 기업들이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29일 석화업계에 따르면 롯데케미칼·롯데정밀화학 등 롯데 화학군은 반도체 핵심소재 계열사 한덕화학을 통해 경기경제자유구역청, 경기 평택시, 평택 포승지구에 1300억원 규모의 투자협약을 최근 체결했다. 포승지구에 3만2218m² 규모의 신규 부지를 확보해 오는 2025년 하반기부터 반도체 현상액(TMAH) 생산시설을 착공하고, 오는 2026년 말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TMAH는 반도체·디스플레이에 미세 회로 패턴을 현상하는 공정의 대체 불가한 핵심소재다. 

롯데 화학군 기업들은 기존 에틸렌·프로필렌 등 범용 제품을 생산하며 기초석유화학 부문을 통해 화학부문 실적을 이끌어왔다. 그러나 기조가 달라졌다. 기초석유화학 부문의 비중을 현재의 3분의 1 규모로 줄이고 스페셜티 비중을 오는 2030년 60%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관련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LG화학, 한화솔루션의 기초석유화학 비중이 지난 3분기 말 기준 각각 37.9%, 40.4%인 데 반해 롯데 화학군은 68.2%라는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변화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롯데 화학군은 저효율 공장의 가동 중단, 비핵심 자산 매각 등사업구조 재편 및 재무구조 개선 절차를 꾸준히 추진해왔다. 최근 단행한 2025년도 임원 인사에서 이영준 롯데케미칼 첨단소재부문 대표이사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하고 롯데 화학군 총괄 대표를 겸하도록 했다. 창사 이래 가장 큰 규모의 체질 개선에 더욱 속도를 낼 전망이다. 

기초석유화학 축소 움직임은 롯데 화학군 외 대부분의 화학기업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LG화학은 지난 2022년 석유화학 원료로 쓰이는 스티렌모노머(SM)를 생산하는 대산 SM공장을 중지한 데 이어 올해 3월 여수 SM공장도 가동을 중단했다. 전남 여수 NCC(나프타분해설비) 2공장 매각을 토대로 전기차 충전기 케이블 소재로 사용되는 초고중합도 PVC 등 스페셜티 제품 생산 비중을 늘릴 계획이다. 

국내 석화기업들이 기초석유화학에서 손을 떼려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발 공급 과잉, 유가 상승 등 여파가 단순히 ‘다운사이클’을 넘어 사업구조를 재편해야 할 정도로 장기간 악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난 2020년부터 에틸렌 생산라인을 대폭 늘려 2020년 생산량 3227만톤에서 지난해 5174만톤으로 전 세계 최대 에틸렌 생산국이 됐다. 그러나 글로벌 경기 침체, 미-중 무역 갈등 등으로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올해 목표였던 5%를 밑돌아 내수가 부진하면서 대량의 기초석유화학 제품들이 값싸게 한국 등 해외로 수출되기 시작했다.

또한, 지난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당시 두바이유가 120달러를 돌파하는 등 유가가 급등하면서 떨어진 에틸렌 스프레드(수익 지표)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톤당 300달러를 수익성의 기준으로 하는 에틸렌 스프레드는 지난 18개월 동안 월평균 200달러를 단 네 달 밖에 넘기지 못하며 크게 떨어졌다. 트럼프 2기 체제를 앞두고 원유 생산량이 증가하며 이달 200달러대를 돌파했지만 중국뿐만 아니라 중동에서도 에틸렌 설비를 늘리고 있어 리스크는 상존한다.

지난 10월31일 ‘2024년 제16회 화학산업의 날’을 맞아 신학철 한국석유화학협회 회장(LG화학 부회장, 왼쪽 네 번째) 등 주요 석유화학기업 CEO와 박성택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왼쪽 다섯 번째)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화학산업협회 

석화기업의 끝모를 부진에 정부도 팔을 걷어붙였다.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지난 23일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내놨다. 업계에 총 4조원 규모의 정책금융자금 및 사업구조전환지원자금을 공급, 설비 폐쇄, 사업 매각, 합작법인 설립, 설비 운영 효율화, 신사업 M&A 등 사업재편을 지원토록 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사업재편 기업의 경우, 지주회사 지분 100% 매입을 위한 규제 유예기간을 현행 3년에서 5년으로 늘려 매수자가 수익이 발생한 이후 지분 규제를 이행할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를 제공한다. 나프타 제조용 원유 등에 대한 무관세 기간을 내년 말까지 1년 더 연장하는 등 제도적 지원책도 마련했다. 아울러 체질 개선 지원 목적 차원에서 △고부가 소재기술 △탄소감축 △환경규제 3대 분야 R&D에 집중해 내년 민관합동으로 ‘2025∼2030년 R&D 투자 로드맵’을 수립하고, 500억원 규모의 중견·중소 R&D 투자 전용 ‘고부가 스페셜티 펀드’를 결성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자발적 사업재편 유인’ 개념이 아닌 정부 주도의 M&A 등 과감한 실천 방안들이 주입돼야 하는 시점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의 지원책이 올해 안에 나오게 돼 다행이지만, 한편으로는 기업에서도 대대적인 변화를 단행하고 있는 만큼 국가기간산업 보호 관점에서 정부의 폭넓고도 실효성 있는 지원책이 지속적으로 반영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석화업계가 스스로 자구 노력을 해오고 있고 사업재편 의지도 충분한 것을 인지하고 있는 만큼 정부는 이를 촉진하도록 꾸준한 제도적 지원에 나설 계획”이라며 “업계가 사업재편 계획을 마련하면 관계부처와 신속히 지원하고, 실제 정책 수요를 바탕으로 내년 상반기 후속대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재민 기자
jaemin@kukinews.com
김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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