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로 선불식 상조 서비스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상조 상품 보호 체계 정립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특히 상조 서비스 가입자를 보호하고 선수금 미반환 및 미등록 업체 난립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24년 선불식 할부거래업체 주요 정보 공개’에 따르면 선불식 할부거래업체 가입자 수는 892만명, 선수금은 9조4486억원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지난 2022년부터 2024년 8월까지 폐업한 상조회사로부터 고객들이 돌려받지 못한 보상금은 약 300억원에 달한다. 공정위는 지난 2010년부터 상조회사의 등록 요건과 결격사유를 강화했지만 소비자 피해 규모는 더 증가한 것이다.
20일 쿠키뉴스 취재결과 선불식 할부거래 시장이 커지면서 정부의 관리 감독 사각지대를 파고든 불완전 상조 결합 상품 판매가 성행하고 있다. 일부 선불식 할부거래업체는 폐업 후 이름만 바꿔 재가입을 유도해 보상금을 돌려주지 않거나 허위로 상호 주소를 기재해 운영해도 자금 운용 관련 규제를 받지 않는다.
상조 서비스와 전자제품 계약이 별도로 체결되는 상조 결합 상품은 문제 발생 시 선불식 할부거래법을 근거로 위반 행위를 판단한다. 문제는 선불식 할부거래업자로 분류되지 않는 전자제품 판매 업자, 상조 영업사원의 책임이 상조회사보다 가벼워 불완전판매가 확인되더라도 처벌이 어렵다는 점이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와 관련해 초고령 사회 진입에 맞춰 상조 보호 체계 정립에 대한 논의를 미룰 수 없다고 말했다.
민 의원은 “지난 2021년 이후로는 신규 등록업체보다 폐업한 업체 수가 더 많은 상황이다”며 “지난 2023년 기준 등록된 75개의 상조업체 중 42개 업체(56%)의 부채가 자산을 초과하는 자본잠식 상태다. 남아있는 상조회사들의 선수금 관리를 강화해 소비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 의원은 상조업계의 선수금을 예금보험공사 등 공적 영역이 일부 나눠 맡아 보호하는 ‘하이브리드형 선수금 보호 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소비자가 수년~수십년 동안 지불한 금액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상조회사가 존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현재 지자체와 공정위에서 감시하고 있지만, 부실 운영은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다”며 “상조업체가 고객들에게 선수금 한 예치금 절반을 공적 영역에서 맡으면 머지 포인트, 해피머니 상품권, 티메프 사태의 반복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 의원은 상조 계약을 금융서비스로 인정하고 금융당국의 포괄적인 규제를 적용하는 영국의 ‘금융서비스보상기구(FSCS)’를 예시로 들었다.
민 의원은 “현재 우리나라 선불식 상조 상품은 선수금 10조원 규모다. 하지만 선수금 50% 예치 외는 별다른 규정이 없다. 회계 감사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되어있지만, 미제출 시 과태료 처분 등 비교적 상조 회사의 부담이 적다”며 “반면 영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거액의 선불금을 지급하고도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선불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가 발생할 경우 ’FSCS)’로부터 보상받을 수 있도록 정비했다”고 설명했다.
영국은 2000년대 초까지 상조 가입자는 전체 인구의 2%에 불과했지만, 2006년부터 2017년까지 영국 상조시장의 연 매출 증가율은 200%가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 의원은 “시장참여자와 감독 당국이 상조를 기존의 할부거래로 규율할 것인지, 금융서비스 일종으로 규율할 것인지 추가적인 논의를 통해 소비자 보호를 강화해야 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민 의원은 지난 15일 국회에서 ‘900만 상조 가입자 보호를 위한 국회 토론회’를 개최한 뒤 향후 상조 상품 불완전판매 및 소비자기만 행위에 대한 논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황순주 KDI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도 해외 사례를 참고해 별도 관리, 건전성 규제, 공적 보상 제도를 통해 상조 서비스를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연구위원은 “미국의 경우 10개 주에서 선수금을 직접 보호하고, 모든 주에서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간접 보호가 적용된다”며 “선수금 100%를 상조업체를 거치지 않고 즉시 고객 명의의 은행 계좌에 별도 예치 하거나 별도 예치 의무 비율을 상향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선불식 할부거래 시장 확대에 따른 위험 요인이 증가한 것과 관련해 “올해 업무 계획에 상조 회사의 선수금 및 그 이외 자산 관리 실태를 점검하고 강화하는 내용을 포함한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입법은 ‘선수금 50% 예치’를 포함한 자금 운용에 관한 것으로 미등록 선불식 할부거래업 적발과 상조결합 상품 불완전판매에 대한 소비자 피해 예방은 제외됐다.
선불식 할부거래 관리·감독 주무부처인 공정위와 지자체는 미등록 선불식 할부거래업체의 적발이 어렵다고 말했다.
공정위 특수거래정책과 관계자는 “정부도 상조회사의 불건전한 자산 운용과 도덕적 해이를 방지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민원, 신고가 접수되면 필요 시 지자체와 협력해 해당 업체를 불시 점검해 적발한다. 등록 업체에 한해 정기 점검이 이루어지지만 미등록 업체의 경우 사전 적발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도 미등록 선불식 할부거래 업체는 제보에 의지해 조사하고 있다.
서울시 공정경제과 관계자는 “지난해 폐업한 상조 회사들이 늘어나 현장 전수조사를 나가고 있다”면서도 “미등록 상조 회사의 운영은 제보를 통해 알 수밖에 없다. 제보가 들어오면 현장 점검을 나가고 적발한 업체들은 선수금 보전 등을 확인해 시정 권고 및 수사를 의뢰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지자체가 적발한 미등록 업체들은 시민들에게 공유하지 않는다고 했다.
관계자는 미등록 선불식업체의 적발 및 폐업 사실 공개 여부에 대해 “선불식 할부거래업체의 폐업이나 미등록 운영 업체에 대한 내용은 내부 자료에 해당한다”며 “업체들이 직접 고객에게 폐업 사실을 안내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공정위와 서울시는 쿠키뉴스 기사를 통해 거론된 ‘리시스’, ‘대노복지단’(현 유어라이프), ‘케이비라이프’(현재 폐업 후 한신라이프로 사명 변경 추정) 업체들을 점검할 예정이다. 해당 업체에 가입한 소비자들은 장기 인수형 계약을 체결한 롯데렌탈에 대해 법적 대응을 예고하고 필요한 절차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