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세포를 위한 단백질 항상성 유지에는 샤페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환경 스트레스, 유전적 변이, 노화 등은 샤페론의 전반적 기능을 감소시켜 독성 단백질 응집체를 세포에 축적한다. 축적된 단백질 응집체는 헌팅턴병을 포함한 퇴행성 신경질환의 주요 발병 원인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노벨화학상 수상의 핵심 기술인 단백질공학은 단백질 구조와 기능을 바꾸거나 최적화하는 것으로, 질병치료제 개발의 혁신을 이끌 열쇠로 주목받고 있다.
단백질공학으로 샤페론 치료제를 개발할 때 샤페론의 효능 증가뿐 아니라 샤페론과 상호작용하는 요인을 제거해 부작용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단백질공학으로 퇴행성 신경질환 치료
기초과학연구원(IBS) 바이오분자및세포구조연구단 조현주 차세대연구리더(YSF) 연구팀이 김호민 KAIST 생명과학과 교수(전 단백질커뮤니케이션그룹 CI), 이성배 DGIST 뇌과학과 교수팀과 공동연구로 퇴행성 신경질환 헌팅턴병에 효과적인 치료용 샤페론을 단백질공학으로 개발하고 작동 메커니즘을 규명했다.
헌팅턴병은 유전적 돌연변이로 헌팅틴 단백질 유전자에 CAG 반복서열이 비정상적으로 증가해 발생한다.
CAG 반복서열은 시토신, 아데닌, 구아닌 등 세 개의 염기가 반복되는 서열로, 정상 헌팅틴 유전자는 CAG 서열이 10~35회 반복되나, 돌연변이 유전자에서는 36회 이상 반복되며 병리학적 변화가 발생한다.
때문에 CAG 반복서열 증가는 헌팅틴 단백질의 급격한 응집을 유발해 독성 응집체를 형성하고, 신경세포 내에 축적되면서 세포 기능을 방해해 결국 신경세포 사멸을 초래한다.
증상은 보통 30~40대에 진행이 시작돼 비자발적이고 제어되지 않은 움직임, 발음장애, 연하곤란, 인지장애 등이 나타나며, 합병증이나 신체 기능저하로 사망에 이를 수 있지만 아직 근본적 치료제를 찾지 못해 완화를 위한 약물치료에 그치고 있다.
연구진은 세포 내 단백질 항상성 유지의 핵심인 샤페론에 주목했다.
샤페론은 세포 내 단백질이 3차원으로 바르게 접히도록 하고, 잘못 접힌 단백질의 응집을 방지해 단백질이 제 기능을 할 수 있게 돕는다.
이에 연구진은 막단백질 샤페론 중 하나인 PEX19에 무작위 돌연변이를 유도, 수십만 개의 변이 라이브러리를 제작한 후 이를 이용해 만든 변이체를 효모 독성기반 스크리닝 기법으로 선별해 헌팅틴 단백질의 독성을 억제하는 변이 샤페론 PEX19-FV를 개발했다.
PEX19-FV는 변형된 소수성 잔기를 통해 헌팅틴 단백질의 소수성 부위와 결합하고, 헌팅틴 단백질 간 상호작용을 차단함으로써 헌팅틴 단백질의 응집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고 독성 응집체 축적을 막았다.
연구진이 헌팅틴 단백질이 과발현 돼 신경퇴행 증상을 보이는 초파리에 PEX19-FV를 발현시킨 결과 시험관 벽을 기어오르는 능력이 약 2배 향상되며 운동능력이 크게 개선됐고, 평균 생존율이 약 3배 증가했다.
또 생쥐 뇌에서 추출한 신경세포를 배양해 헌팅틴 단백질과 함께 PEX19-FV를 발현시킨 결과 80%에 달하던 신경세포의 심각한 구조적 손상이 5% 이하로 감소하고 신경세포 사멸도 10배 줄어드는 효과를 보였다.
연구를 이끈 조현주 YSF는 “이번에 개발한 변이 샤페론은 헌팅틴 단백질의 응집을 효과적으로 억제해 신경세포를 보호할 수 있고, 기존 샤페론을 변형시켜 헌팅턴병뿐 아니라 다양한 퇴행성 신경질환 치료도 가능할 것”이라며 “이번 연구는 단백질공학을 이용한 퇴행성 신경질환 치료의 가능성을 확인한 대표적 사례”라고 설명했다.
김호민 전 CI는 “단백질공학은 생명과학의 지평을 넓히고 혁신 치료법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되고, 구조생물학, 신경생물학과의 긴밀한 협업은 이를 더욱 앞당기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지난 17일 온라인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