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건강한 명절”…‘24시간 출동 대기’ 119구급대원의 하루

“모두가 건강한 명절”…‘24시간 출동 대기’ 119구급대원의 하루

기사승인 2025-01-29 06:00:06 업데이트 2025-01-29 16:51:36
서울 강남구 세곡119안전센터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출신 5년차 구급대원 박인규(34)씨의 모습. 강남소방서 제공

생명의 불씨를 살리는 119 구급대원은 언제나 촌각을 다툰다. 인명 구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골든타임’이다. 순식간에 환자의 생사가 갈리기도 한다. 구급대원들은 오늘도 사람을 지키기 위해 사이렌이 울리면 지체 없이 뛰어나간다.

구급대원들에겐 설 연휴도 평일과 다름없는 긴장 속 하루하루다. 지난해 설 연휴 기간 동안 전국 권역응급의료센터와 지역응급의료센터의 환자 내원 건수는 하루 평균 3만6996건이다. 119 구급대의 환자 이송 횟수는 3만3869건을 기록했다. 장염, 복통, 감기 등 증상이 가벼운 경증 환자가 많긴 하지만 뇌졸중, 심정지, 출산 등 응급 환자가 발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연휴 중엔 문을 닫는 병원이 많다. 응급실에 제때 당도하지 못할 수 있다는 압박감 때문에 구급대원들의 근심이 커진다. 

더욱이 지난해부터 병원의 의료공백 상황이 이어지면서 원활한 구급활동이 어려운 상태다. 119 구급대원의 이송 업무가 차질을 빚고 있다. 다시 찾아온 설 연휴를 앞두고 서울 강남구 세곡119안전센터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출신의 5년차 구급대원 박인규(34)씨를 만났다. 박 대원은 “책임이 무겁지만 자긍심이 크다”라며 수행하는 업무들과 명절 연휴 이어지는 출동 사례, 의료공백에 따른 영향 등에 대해 전했다.  
 
박인규 구급대원이 22일 기자를 만나 구급대 활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남소방서 제공

- 구급대원의 업무는 어떻게 이어지나. 
대개 24시간 일하고 난 뒤 이틀간 쉬는 방식으로 근무한다. 세곡센터에서 일하기 전에는 역삼119안전센터에서 근무했는데 그곳에서는 하루에 보통 15건, 많으면 20건의 출동을 나갔다. 최근 개봉한 영화 ‘소방관’ 속 인물들처럼 밥 먹다 말고 뛰어나가는 일이 흔하다. 식사는 운이 좋아야 할 수 있는 셈이다. 

역삼소방서 근무 당시 힘은 들었지만 보람이 컸다. 근무 첫날에 심정지 환자를 구했다. 70대 할아버지가 동네의원에서 진료를 받던 중 쓰러졌는데, 의사도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라 제대로 가슴 압박을 하며 심폐소생술을 이어가기엔 체력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현장에 도착해 즉각 가슴 압박을 시행했다. 또 빠르게 정맥을 확보해 에피네프린 같은 응급 약물을 투여했다. 다행히 환자는 심장 박동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치료 뒤 퇴원했다. 이 일로 소방서에서 ‘하트 세이버’ 인증서를 수여받았다. 적절한 응급처치를 통해 생명을 구한 구급대원에게 주는 명예의 상이다. 

- 구급대원은 어떤 직업인가.
구급대원은 생명을 살리는 최전선에 가장 먼저 접근하는 사람이다. 판단이 늦거나 필요한 대응을 바로 취하지 않으면 환자의 예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겁지만 그만큼 자긍심이 크다. 

119 구급대원은 공무원인 만큼 구조 상황 등에서 주민을 대할 때 두 배는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오늘의 환자와 보호자가 내일은 민원인이 될 수 있다. 출동을 나갔다가 시민에게 폭행을 당할 뻔한 적이 여러 번 있다. 동료 대원이 이송 중인 환자에게 폭행을 당해 경찰서에 가서 진술을 하기도 했다. 

박인규 구급대원이 구급차 안에서 의료 장비를 정리하고 있다. 강남소방서 제공

- 명절 연휴 어떤 출동 신고들이 접수되나.
명절이라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심정지, 뇌졸중 등 위중증 환자가 있긴 하지만 주로 복통, 오심, 구토, 고열 등 경증 환자가 대다수다. 다만 올해처럼 연휴가 길 때면 고독사 등이 종종 발생한다. 혼자 사는 노인분들은 이웃이나 방문 요양보호사가 챙겨주는 경우가 많은데 연휴가 길어지면 홀로 계셔야 하는 시간도 늘어난다. 그때 질환 상태가 악화되거나 불의의 사고가 생겨 세상을 떠난 어르신들이 뒤늦게 발견되곤 한다.

또 생활 속에서 사람을 만나면서 우울증을 견뎌내던 분들이 연휴 기간 혼자 있는 시간이 이어지면 좋지 않은 생각을 하시는 것 같다. 한국은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다. 구급대원들은 이같은 통계를 현실에서 체감한다. 사건 현장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분들의 명복을 빌며 올해는 부디 아픈 사람이 없고 119를 찾을 일이 없는 건강한 해가 되기를 기도한다. 

- 의료공백 사태로 인한 여파는.
이송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심야 시간대에는 복통, 마비, 경련 등 내과적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를 이송할 곳이 없다. 우리나라는 정형외과 진료를 24시간 볼 수 있는 병원은 많은 편이지만 심장내과나 두경부외과, 소아과 등의 야간 진료가 가능한 곳은 적다. 

한 번은 연세가 많고 기저질환이 있는 환자가 복통을 호소해 출동한 적이 있다. 3차 병원은 환자가 경증에 속해 받아줄 수 없다고 하고, 2차 병원은 연령이 높고 기저질환이 있으면 중증에 가깝다며 거절한 적이 있다. 이럴 땐 환자를 수용해주는 병원이 있을 때까지 연락을 계속 돌려야 한다. 산부인과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하혈을 하는 임산부의 신고를 받은 적이 있는데, 강남 주변 산부인과들은 새 환자를 받아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환자가 예전에 내원한 이력이 있는 수원 지역의 여성병원까지 이송한 적이 있다. 

최근 의료전달체계가 바뀌면서 난감한 일도 있다. 구급대원은 야간이나 공휴일에는 대학병원 또는 상급종합병원에 가야 하는 중증 환자가 아닌 이상 이송을 최대한 분산해야 한다. 하지만 2차 병원이나 의원급을 이용하도록 권하면, 환자나 보호자가 거부할 때가 있다. 환자, 보호자가 원하면 환자의 상태가 괜찮다는 전제 하에 평일에 병원을 찾아 외래를 볼 수 있도록 안내한다. 

가끔 직접 사설구급차나 자차, 택시를 이용해 응급실을 가겠다고 하는 분들도 있다. 그간 중증도를 구분해 병원으로 신속하게 이송하는 것이 주요 업무였다면, 지금은 이송 자체가 지연되면서 현장에서 해야 할 응급 처치가 늘어났다.

- 구급대원으로서 올해 바라는 점은.
출동을 나갈 때마다 ‘환자 이송이 원활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크다. 그래서 항상 기도를 한다. 올해, 이러한 구급대원들의 걱정을 없애 주길 바란다. 출동부터 이송까지 막힘없는 응급의료시스템이 정립되고, 24시간 운영하는 다양한 진료과목의 전문병원도 늘어나길 기대한다.

또 간호사, 1급 응급구조사 등 전문 의료 인력 출신의 구급대원이 늘었으면 좋겠다. 응급의료법상 일정 자격이 갖춰진 구급대원이 아니면 정맥주사용 혈관을 확보하는 등의 업무에 제한이 생긴다. 국민에게 더 나은 응급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도 전문 인력의 확대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한층 더 성장하는 구급대원이 되기를 희망한다. 같은 동료들이 보기에도 ‘이 사람이라면 나를 살려줄 수 있겠다’라고 생각할 만큼 신뢰감 높은 구급대원이 되고자 한다. 모두가 내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지난해 힘든 일이 많았지만 앞으로 근무 환경이 나아질 것이란 믿음을 갖고 모두가 힘을 냈으면 좋겠다. 

지난 16일 발생한 교통사고 현장 모습. 승용차 밑에 깔려있던 오토바이 운전자를 구조해 병원으로 이송하고 있다. 강남소방서 제공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박선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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