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정국이 길어지는 가운데 산업계 경기 한파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31일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경기실사지수(BSI)를 조사한 결과, 다음달인 2월 BSI 전망치는 87.0을 기록했다.
BSI가 100보다 높으면 전월 대비 긍정적으로 경기를 전망하는 기업이, 100보다 낮으면 전월 대비 부정적으로 전망하는 기업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BSI는 2022년 4월(99.1)부터 기준선 100을 밑돌며 2년 11개월 연속 부진을 기록하고 있다.
업종별로도 제조업(93.0)과 비제조업(81.4) 모두 동반 부진이 예상되고 있다. 특히 비제조업은 지난달(84.9)에 비해 더 악화되며 2020년 7월(72.4) 이후 4년 7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제조업 10개 업종 중 일반·정밀기계 및 장비(126.3)와 전자 및 통신장비(105.3)가 긍적적인 전망치를 나타냈다. 비제조업 7개 세부 업종은 정보통신(56.3)과 건설(76.2)을 비롯한 전 업종의 업황이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제조 기업들의 올해 1분기 체감 경기 역시 하락하며 4년여 만에 가장 나쁜 수준을 기록할 전망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전국 제조 기업을 대상으로 2025년 1분기 BSI를 조사한 결과, 전 분기(85) 대비 24포인트, 전년 동기(83) 대비 22포인트 하락한 61로 집계됐다. BSI가 55로 역대 최저였던 지난 2020년 3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계엄 사태 전 실시된 1차 조사(2024.11.19∼2024.12.2)는 2281개 제조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1분기 BSI 전망치는 72로 집계됐다. 이후 2차 조사(2025.1.6∼2025.1.15)는 지역·업종 등을 비례 할당해 추출한 413개 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결과 1분기 전망치는 1차 조사보다 11포인트 추가 하락한 61로 조사됐다.
정국 불안, 강달러, 트럼프 정책 기조 등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가 기업 심리에 반영된 것이다.
문제는 경기 악화가 1분기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국내 상경계 교수들은 올해 한국의 잠재성장률 역시 2%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시장조사 전문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상경계열 교수들을 대상으로 ‘한국경제 중장기 전망 및 주요 리스크’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한 교수 111명 중 57.6%는 올해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1%대(평균 1.8%)일 것으로 추정했다.
1%대에 진입했다고 보는 응답에서는 1.7~1.9%(31.5%), 1.4~1.6%(12.6%), 1.1~1.3%(13.5%) 순으로 나타났다. 2% 이상에서는 2.0~2.2%(32.5%), 2.3~2.5%(9.0%), 2.6~2.8%(0.9%) 순이다.
한국의 경쟁력이 정점을 찍은 후 내리막길에 들어섰다는 ‘피크 코리아론’도 어느 정도 동의(52.3%)하거나 매우 동의(14.4%)하는 의견이 절반을 넘었다. 한국경제의 중장기 위협요인으로는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절벽(41.8%)이 가장 많이 꼽혔다. 인구절벽에 따른 경제적 영향으로는 경제활동인구 감소(37.9%), 연금 고갈 및 복지비용 증가(19.8%), 내수 침체(15.3%), 지방 소멸(15.3%) 등이 전망됐다.
이에 대해 이지호 한국은행 조사국장은 ‘2025년 경제 전망’에서 “그간 한국경제 성장을 견인해 온 수출이 미국 신 행정부 출범, 주요국과의 경쟁 심화 등 구조적 요인 변화로 제약받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대내외 악재로 인해 우리 기업들의 체감경기가 악화하고 있는 만큼 정부와 국회의 발 빠른 대처가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내의 정치 불확실성이 경제 전반의 성장 둔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책 당국이 예산 조기 집행, 추경 편성 등 과감한 재정정책과 소비 활성화 대책으로 내수를 자극해야 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김현수 대한상의 경제정책팀장은 “1%대 경제성장률이 연이어 발표되는 등 성장률 저하라는 경고등이 켜진 상황에서 대내외 리스크까지 겹치며 불확실성이 더욱 증폭된 상황”이라며 “경제지표와 대외 신인도에 대한 철저한 점검과 무쟁점 경제법안에 대한 조속한 입법 지원을 통해 한국 경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긍정적 시그널을 보여주는데 국가적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미국 트럼프 신정부 등 대외 경영환경 변화에 더해 국내 정치 불확실성이 고조되며 환율 변동성 확대, 내수 부진 장기화 등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환율 안정 노력과 산업 활력 회복을 위한 지원 등 경제 살리기에 최선을 다하고, 이사 충실의무를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 등 경영 불확실성을 가중하는 입법 논의를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들이 혁신, 기업가정신 재점화, 미래 먹거리 발굴 노력 등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