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없어 ‘병원 마비’…“진료·교육 전담의사 배치해야” [의료 난맥②]

전공의 없어 ‘병원 마비’…“진료·교육 전담의사 배치해야” [의료 난맥②]

기사승인 2025-03-11 06:00:08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를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대치가 계속되는 사이 의료의 질은 떨어졌으며, 환자들은 응급실을 찾아 헤매고 암 수술을 미루는 등 피해가 쌓였다. 전공의가 병원을 이탈하면서 세계 최고의 시스템을 자부하던 한국 의료는 휘청였다. 의료현장에선 “터질 게 터졌다”는 탄식이 나온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한숨이 깊어지는 가운데 지속가능성을 불어넣기 위해 짚어야 할 한국 의료의 민낯을 일곱 편에 걸쳐 전한다. [편집자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박효상 기자

전공의 집단 사직에 따른 의료공백 사태로 병원들이 수술을 줄이고 응급실 진료를 제한하는 등 축소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전체 의사의 11%에 불과한 전공의들이 이탈하면서 대형병원이 휘청인 것을 두고 전공의에 의존하는 기형적 의료시스템을 쇄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공의는 근로자이면서 동시에 피교육생(수련의)인 이중 신분 보유자다. 전공의는 인턴으로 1년간 여러 진료과를 돌며 경험을 쌓고, 이후 전문 과목을 정해 레지던트로 3~4년간 수련한다. 신분대로라면 이들의 주 업무는 ‘교육’이어야 한다. 하지만 의료 현장에서 교수들의 수술과 진료를 보조하고 입원 환자들을 살피며, 새벽 내내 응급실을 지키는 ‘핵심 인력’으로 일하고 있다.

의료공백 사태 이전 서울 ‘빅5 병원’(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병원)의 전공의는 2745명이었다. 전체 의사(7042명)의 40% 규모다. 서울대병원은 전체 의사 가운데 전공의가 차지하는 비율이 46%로 절반에 가까웠다. 전공의가 없으면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해외 선진국과 비교하면 큰 차이다. 일본 도쿄대 부속 병원은 전공의 비율이 10% 정도에 그친다. 미국 메이요클리닉의 레지던트 비율도 10% 안팎이다.

빅5 병원이 전공의를 선호하는 이유는 이들을 비교적 저렴한 임금으로 기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의 ‘2022년 전공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공의의 월평균 임금은 397만9000원이다. 이는 주당 평균 77.7시간을 일하고 받는 대가로, 최저 임금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전공의들은 주당 80시간 가까이 일하며 병원 업무량의 약 70%를 처리한다.

국립대병원 경영난…5639억 손실

전공의가 빠져나간 국립대병원들은 경영에 큰 타격을 입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경북대·부산대·경상국립대·전남대·제주대·강원대·서울대·전북대·충남대·충북대병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들 국립대병원 10곳의 지난해 적자는 약 5639억7000만원이었다. 의정갈등 이전인 2023년 적자(2870억4000만원)의 2배 수준이다.

2023~2024년 국립대병원 10곳 적자 규모.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보건복지부가 권역 류마티스·퇴행성관절염 전문질환센터로 지정한 빛고을전남대병원의 경우 만성 적자로 인해 일부 외래진료 기능을 본원인 전남대병원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전남대병원도 2023년 12억원의 흑자를 기록했지만, 지난해 359억원의 적자를 냈다.

경상국립대병원은 의정갈등 이후 경영난이 심해지자 작년 4월부터 추진하던 사업을 전면 재정비하고 운영비를 감액하는 등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지난해 3~12월 경상국립대병원의 누적 손실액은 450억원으로 추정된다. 작년에만 15명 넘는 전문의가 그만둔 것으로 알려진 충북대병원은 매주 수요일 응급실 성인 진료를 제한한 지 122일 만인 지난달 3일 정상 운영을 재개했다. 20여명의 의료진이 상주했던 충북대병원 응급실은 의정갈등 이후 응급의학과 전문의 5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김대중 대한내과학회 수련이사(아주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예전부터 전공의가 귀했던 진료과들은 상대적으로 혼란이 적었는데, 전공의가 많았던 내과나 정형외과 등은 위기를 겪고 있다”며 “지금은 시간이 지나 상황이 나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환자 입원, 수술, 외래진료 등은 여전히 70~80%밖에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형병원들도 신규 전문의 채용이 어렵다”면서 “정부의 보조금에 기대 겨우 유지만 하고 있는 상태로 적자가 심하다”고 덧붙였다.

“의료 현장 전공의 교육자 다양화해야”

전문가들은 사태가 해결돼 전공의가 병원으로 다시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인 병원 인력 구조와 수련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이상 같은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대전협 부회장을 지낸 이한결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서울봄연합의원 원장)는 “노동자이자 피교육자인 전공의는 수련 시간 정상화만을 바라보고 수련에 임하지 않는다. 수련 과정을 통해 스스로 독립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전문의가 되기를 원한다”며 “교육자인 병원과 학회는 내실 있는 수련이 이뤄질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 홍보이사는 “의료 현장에서 교육이 잘 구현되려면 교수 등 교육자를 다양화해야 한다”라며 “질적 교육을 보장하면서 병원 운영은 가급적 차질을 빚지 않는 조직 운용안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김 수련이사는 “전공의가 병동을 지켜주니까 교수들이 그간 연구 등 다른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라며 “정부는 전문의 중심병원 전환을 통해 병원을 전문의와 PA(진료지원)간호사 등으로 채우겠다는 계획이지만 이는 영구적이지 않고 한계가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전문의와 PA간호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진료전담 트랙’과 진료를 보지 않는 전문의가 전공의를 가르치며 일반병동 당직을 서는 ‘교육전담 트랙’으로 구분해 병원이 돌아가야 한다”라며 “두 트랙으로 나눠야 진료, 회진, 연구, 전공의 교육 등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이동하고 있다. 박효상 기자

복귀한 전공의들이 교수, PA간호사, 병원 경영진과 마찰을 빚을 수 있다는 고민도 있다. 오승준 경희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의정갈등 사태 속에서 상급종합병원은 전공의 없이 진료를 볼 수 있도록 모든 체계를 바꿔나가기 시작했다고 했다. 또 지난 1년간 호흡을 맞춰온 PA간호사와 손발이 잘 맞는다는 교수들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돌아온 전공의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명확하지 않다고 짚었다.

오 교수는 “병원으로 복귀한 전공의들이 숙련된 PA간호사의 자리를 대체할 만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전공의가 피교육자 위치만 갖게 되면 교수들은 일부 환자 진료에 한해 전공의를 참여하게 할 것이고, 전공의들은 PA간호사가 자신들의 배울 기회를 빼앗는 걸 막아달라고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PA간호사의 역할이 중요해진 가운데 간호법은 오는 6월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정부는 이달 안에 PA간호사의 구체적 업무 내용을 담은 간호법 시행규칙을 입법 예고할 예정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PA간호사는 1만7103명이다. PA간호사의 업무 범위는 간호계에 배포된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보완 지침’을 토대로 정해질 전망이다. 지침에 따르면 PA간호사나 추가로 자격시험을 통과한 전문 간호사는 단순·복합 드레싱(소독), 봉합, 수술 보조나 의사 위임에 따른 검사와 약물 처방, 진단서 및 수술 동의서 초안 작성 등을 할 수 있다. 전문 간호사는 조직·뇌척수액 채취, 골수·복수 천자, 중심 정맥관 삽입·관리, 기관 삽관·발관 등도 가능하다.

PA간호사의 역할 범위가 어떻게 정해지든 의사와 업무가 겹치는 것에 대한 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오 교수는 “병원 경영진이 PA간호사와 전공의 모두에게 급여를 줘야 하는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라며 “의정갈등이 해소된다 해도 복귀 전공의들은 또 다른 갈등과 직면해야 하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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