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검사 많을수록 이득…“지불체계 손봐야” [의료 난맥⑤]

진료·검사 많을수록 이득…“지불체계 손봐야” [의료 난맥⑤]

기사승인 2025-03-14 06:00:10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를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대치가 계속되는 사이 의료의 질은 떨어졌으며, 환자들은 응급실을 찾아 헤매고 암 수술을 미루는 등 피해가 쌓였다. 전공의가 병원을 이탈하면서 세계 최고의 시스템을 자부하던 한국 의료는 휘청였다. 의료현장에선 “터질 게 터졌다”는 탄식이 나온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한숨이 깊어지는 가운데 지속가능성을 불어넣기 위해 짚어야 할 한국 의료의 민낯을 일곱 편에 걸쳐 전한다. [편집자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박효상 기자

고령화, 저출산 등에 따라 건강보험 재정이 빠르게 고갈되고 지역·필수의료 위기가 심화되는 가운데 국내 건강보험 체계 근간을 이루는 ‘행위별 수가제’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내 수가제도는 진찰료, 검사료, 처치료, 입원료 등 모든 개별 의료 행위마다 단가를 정해 지불하는 행위별 수가제를 근간으로 한다. 행위별 수가제는 지불의 정확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지만, 의료 행위가 많을수록 수익이 증가하는 구조 탓에 이른바 ‘3분 진료’나 ‘과잉 진료·검사’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있었다.

치료에 필요한 자원의 소모량을 기준으로 삼다 보니 오랜 기간 경험을 쌓은 의료인의 행위보다는 장비를 사용하는 검사에 대한 보상이 커져 필수의료가 소외되는 문제도 생겼다. 진료·처치가 비교적 빠르고 용이한 경증 환자를 많이 볼수록 더 많은 수가를 받게 돼 중증 환자 수술 등은 외면받게 됐다는 뜻이다.

정부는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지불제도 방식을 다양화할 계획이다. 건보 재정 건전성에 적신호가 켜졌기 때문이다. 노연홍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지난해 7월17일 “왜곡된 수가체계를 바로잡는 것은 의료개혁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라며 “지불제도의 불합리성과 불균형을 해소해 적정한 의료 서비스 공급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만들어나가겠다”고 말했다.

건강보험 재정 악화…“적자 전환 불가피”

노인 인구 증가, 경제 성장률 저하 등으로 인해 향후 건보 재정 축소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4월 발표한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에 따르면, 건강보험 당기수지는 2026년에 3000억원 적자를 기록하고 2028년에는 적자폭이 1조8000억원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국회예산정책처의 건강보험 재정 전망.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국회예산정책처(NABO)는 이보다 더 어두운 예측을 내놓았다. NABO는 ‘2023~2032 건강보험 재정 전망’을 통해 2025년 건강보험 당기수지는 -3조2000억원, 2028년엔 적립금이 소진되면서 누적수지가 -5조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봤다. 적자폭은 계속 커져 2032년에는 당기수지 -20조원, 누적수지 -61조6000억원으로 예상했다. 2023년 기준 적립금 누적액은 건강보험이 27조9977억원, 장기요양보험은 4조1699억원이다.

정부의 의료개혁 추진에 반발해 전공의가 현장을 이탈하면서 벌어진 의료공백 사태는 재정 확보 불확실성을 더욱 키우고 있다. 의료대란을 막기 위해 이미 많은 건보 재정이 들어간 상태다. 지난해 정부는 비상진료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건보 재정 1조4000억원을 투입했다. 전공의 수련병원 요양급여 선지급에도 1조5000억원을 썼다. 정부는 향후 5년간 필수의료를 강화하면서 건보 재정 10조원을 지원할 계획인데, 이 과정에서 적자 전환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지난달 20일 기자간담회에서 “건보료율이 2년 연속 동결되면서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비상진료체계가 이대로 지속된다면 건보 재정이 적자로 전환될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올해 건보료율(건강보험 직장 가입자 기준)은 지난해와 같은 7.09%다.

“행위별 수가제 수명 다해…필수의료 재정 보장 필요”

전문가들은 건보 재정 적자폭을 줄이고, 받지 않아도 되는 진료·검사가 무분별하게 행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지불체계 개편이 필수적이라고 분석한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심한 감기·몸살 때문에 응급실을 찾은 A환자가 독감 검사 외 에이즈, 매독, 류마티스, 갑상선, 간염 검사를 받는 등 과잉 진료·검사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A환자가 받은 검사는 총 18종으로 병원은 건강보험 진료비 48만원, 본인부담금 35만원을 청구했다.

행위별 수가제의 대안으로는 △중증·응급·분만·소아진료 등 필수의료 분야에 대해 더 많은 건강보험 수가를 지원하는 ‘공공정책수가’ △의료 서비스의 질과 성과를 반영해 차등 보상하는 ‘가치 기반 지불제’ △입원 기간 동안 발생하는 기본적 의료 행위는 포괄적으로 묶어 정해진 금액을 지급하되 환자 상태에 따른 추가 치료·검사 비용은 별도로 보상하는 ‘신포괄수가제’ 등이 꼽힌다.

한국형 ACO(Accountable Care Organization, 책임의료조직)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에서 이뤄지는 ACO는 지역 의료기관들이 협력해 환자의 건강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면서 의료의 효율을 높이고, 의료비가 절감되면 그 수익을 나눠 갖는 체계다. 이외에도 중증·필수의료에 투입된 비용을 사후에 보상하는 ‘대안적 지불제’도 거론된다.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 전경. 박효상 기자

문제는 의료계의 반발이다. 의사 10명 중 7명 이상은 현행 수가제가 가장 적합한 지불제도 모형이라고 생각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을 만큼 행위별 수가제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1차 의료기관 의사의 74.6%, 병원급 의료기관 의사의 69.3%는 행위별 수가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가치 기반 지불제 선호도는 30% 수준에 그쳤다. 의료정책연구원은 “지불제도 개편이 비용 절감에 그쳐선 안 되며, 의료서비스의 질 향상과 환자 안전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우리나라 상황에 맞는 정교한 정책을 설계하려면 의료계와 협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 의료체계에서 행위별 수가제가 지속 불가능하다는 시각도 있다. 정재훈 고려대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공공병원을 중심으로 의료 자원 구조가 형성된 외국과 달리 한국은 급격한 발전을 통해 민간 위주의 의료공급체계를 구축하면서 행위별 수가제를 고도화해 왔다”며 “의료 행위가 다양하고 복합해진 지금, 행위별 수가제는 수명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포괄수가제(DRG)나 가치 기반 지불제 등 다른 수가제도가 완벽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진 않는다”면서 “달빛어린이병원 같은 일종의 예산 사업처럼 환자가 없어도 필수의료가 유지될 수 있도록 국가가 재정으로 보장하는 체제로 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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