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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 저가 철강재 공세에 몸살을 앓던 국내 철강업계가 반덤핑 제소 등 적극적인 대응을 통해 반격에 나서고 있다. 최근 몇 년간의 공세에 이른바 ‘버티기’로 대응해 왔지만, 트럼프 정부의 관세 부과 등 글로벌 통상환경 변화에 따라 적극 대응에 나선 것이다.
2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는 중국산 및 일본산 열연강판의 저가 공급에 따른 국내 철강산업 피해 여부를 조사하기 위한 최근 덤핑 조사 절차에 착수, 오는 4일 관보에 공고하고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할 계획이다. 덤핑 조사는 3개월(최대 5개월)간의 예비조사와 이후 3∼5개월간의 본조사로 이뤄진다. 이르면 6월 예비 판정 결과가 나올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현대제철은 중국·일본산 열연강판이 비정상적으로 싼값에 국내로 유입돼 피해를 보고 있다며 무역위에 반덤핑 제소를 했다. 열연강판은 철강 판재를 고온 가열한 뒤 밀고 눌러 얇게 펼치는 압연 공정을 거쳐 만든 강판으로, 자동차 차체 프레임, 조선·해양 선박의 외판 및 내부 구조물, 건설·건축용 철근과 H빔, 각종 기계 장비 등 산업 전반에 두루 사용된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열연강판 수입량은 약 343만톤으로, 이 가운데 중국산과 일본산이 각각 153만톤, 177만톤으로 전체 수입량의 96.2%를 차지했다. 업계에서는 중국산·일본산 열연강판의 국내 유통가격이 국산 제품보다 10∼20%, 최대 30%가량 낮게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제철은 이보다 앞선 지난해 7월 중국산 후판에 대해서도 같은 이유로 반덤핑 제소를 한 바 있다. 조사 결과 지난 20일 무역위가 중국산 후판에 대해 27.91∼38.02%의 잠정 덤핑 관세 부과를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건의하기로 하면서, 이번 중국·일본산 열연강판에 대한 관세 부과 가능성도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지난 27일 동국제강그룹의 도금·컬러강판 전문회사 동국씨엠은 건축용 중국산 컬러강판·도금강판에 대한 반덤핑 제소를 결정했다.
건축용 도금·컬러강판의 저가재는 단색 샌드위치 패널로 공장·창고에, 고가재는 디자인과 기능을 갖춰 지붕·내벽·외벽·간판 등 건축 내외장재로 사용된다. 동국씨엠에 따르면, 내수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연 280만톤(3조원대) 규모로, 이 중 수입산이 100만톤을 차지하는데 그 중에서도 중국산 비중이 90%에 달한다.
동국씨엠은 중국산 건축용 도금·컬러강판 수입 물량이 최근 3년간 연 76만톤에서 연 102만톤까지 34.2% 증가하고, 단가는 톤당 952달러에서 730달러로 23.3% 낮아져 실질적으로 피해를 봤다며 제소 사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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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관련 업계에선 최근 무역위가 열연강판에 대한 덤핑 조사를 개시함에 따라, 중국 내부에서 최소한의 도금·코팅 등 단순 후가공을 거쳐 도금·컬러강판류로 둔갑해 우회 수출하는 물량이 급증할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동국씨엠의 이번 제소 역시 이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으로 풀이된다.
동국씨엠 관계자는 “철강 생산 구조에 대한 거시 분석을 통한 전략적 통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최종 철강 제품부터 단계적 무역 규제를 적용함으로 주변국과 마찰을 최소화함과 동시에 철강업계 동반 생존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철강업계의 이러한 대응은 중국산 저가 철강재의 유입이 수년간 이어져 오면서 수익성 악화가 극에 달한 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대(對)중국 무역 제재가 심화하면서 미국에 수출되지 못한 중국 물량이 한국을 포함한 제3국으로 대거 유입될 우려를 선제적으로 방지하기 위함으로 해석된다. 특히 트럼프 정부가 우리나라의 대미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해서도 ‘263만톤 무관세 쿼터(할당량)’ 제도를 없애고 25% 관세를 부과하려 하는 만큼, 우리 역시 최소한의 수익성을 유지하기 위해 꺼낼 수 있는 카드를 모두 꺼내는 셈이다.
정부는 우선 우리에게 부과될 예정인 25% 관세를 막고 상호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발언 이후 철강업계 대상 美수입규제 설명회를 지속 개최하고 있으며,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지난 26일부터 28일까지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해 미 행정부 핵심 인사를 만나 협의에 나섰다.
안 장관은 지난 26일 오전 출국 당시 기자들과 만나 “우리 기업들이 그동안 투자한 것도 있고 앞으로 투자할 부분도 있어 충분히 그 기준을 맞출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서 “미국에 가서 우리 기업들이 미국 생태계에 투자하고 한미 간 산업 협력을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이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 어떻게 우리 기업들이 교역과 생산에서 불리한 부분이나 불이익이 없도록 해야 할지 협의해 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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