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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체스 선수들을 주축으로 ‘대한체스선수협회’가 만들어지고, 선수협회에서 대한체스연맹을 겨냥한 성명서가 세 차례 나왔다. 하지만 대한체스연맹은 “대한체스선수협회는 대한체스연맹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단체”라고 선을 긋고 있어 갈등이 심화될 조짐이다.
3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대한체스연맹이 오는 8일까지 진행하는 2025 전국 체스 선수권대회 및 2025 국가대표 선발전에 대한체스선수협회(이하 선수협회) 소속 선수들이 ‘보이콧’ 선언을 하면서 맞서고 있다. 체스 국가대표이자 대한체스선수협회 부회장인 이준혁 선수는 “현재 저를 포함한 많은 선수들이 대한체스연맹의 부당함에 항의하기 위해 전국선수권대회를 보이콧했다”고 말했다.
지난 2024년 9월 열린 세계 체스 올림피아드에 한국 국가대표로 출전한 바 있는 이준혁 선수는 “4주 이내에 지급된다는 지원금을 현재까지도 받지 못했다”며 “또한 2024년 월드 래피드&블리츠 대회에 참여할 기회조차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준혁 선수는 “제가 힘들게 우승한 국가대표 선발전이 대한체스연맹에 의해 없었던 일이 돼 버렸다”고 연맹을 직격했다.
이에 대해 대한체스연맹 측은 “최근 일부 단체(선수협회와 ‘참칭 단체’)가 연맹이 주관하는 공식 대회를 보이콧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며 선수들에게 혼란을 초래하고 있는 것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는 입장을 냈다.
대한체스연맹 관계자는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대한체육회 산하 단체 중 별도의 선수협회를 운영하는 사례는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 “선수들은 초등연맹, 중·고연맹, 대학연맹, 실업연맹 및 17개 시·도 연맹에 소속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반적으로 선수협회는 프로 스포츠(야구·축구 등)에서 선수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구성된다”고 부연했다.
해당 관계자는 “대한체스연맹은 선수협회를 둘 수 없는 구조”라고 강조하면서 “현재 선수협회 명의로 성명서를 발표하는 활동은 연맹에 대한 압력 단체로 기능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날을 세웠다.
선수협회가 주장하고 있는 ‘2024 체스 올림피아드’ 경비 미지급 건과 관련해서도 대한체스연맹 측은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다. 선수협회는 4주 이내에 지급해야 하는 지원금을 연맹이 지난 9월 대회 종료부터 현재까지 약 5개월 동안 지급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해왔다. 이에 대해 연맹 관계자는 쿠키뉴스에 “지난 2월20일 FIDE 회계팀으로부터 금액 처리가 완료됐다는 답변을 받았고, 2월28일 국민은행으로부터 FIDE 측 송금이 완료됐음을 확인했다”면서 오는 4일 필요한 서류를 제출해 최종 입금이 완료된 후, 공제 금액(타이틀 획득 수수료 및 코치 인건비)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선수들에게 지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연맹 관계자는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2022년 인도 첸나이 올림피아드 당시에도 동일하게 5개월 정도가 소요됐다”면서 “해당 대회 국가대표 파견팀 감독이었던 송진우 전 감독이 현재 선수협회에 속해 있는데, 동일한 절차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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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협회에선 국제 대회 출전 시 감독 및 코치의 참가 경비를 선수들이 내고 있는데, 감독과 코치 선임 과정에서 연맹이 선수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에 관해 아시안게임, 올림피아드 등 다양한 국제 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한 이준혁 선수는 “올림피아드 국가대표 감독으로 동행한 A감독은 FIDE 레이팅이 없는 분으로, 체스 선수 경험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면서 “대회 현장에서 체스적인 부분은 감독의 도움 없이 혼자 해결해거나 다른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대처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제45회 체스 올림피아드에 한국 대표로 출전했던 이경석 선수는 “선수들이 감독·코치 비용을 부담한다면 선수들의 의견이 감독·코치 선임에 반영돼야 하지 않냐”고 주장했다가 ‘공개 사과’ 요구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이경석 선수가 “대한체스연맹의 선택에 불만을 갖고 질문드린 것은 아니며 연맹의 절차가 궁금했을 뿐”이라며 “연맹 관계자, 감독·코치 분들께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고 공개 사과하면서 사태가 일단락됐다. 이경석 선수는 연맹 측으로부터 “감독 선임은 현인숙 대한체스연맹 회장이 했으니, 불만이 있을 경우 현 회장에게 직접 건의하는 걸 권유한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한체스연맹은 쿠키뉴스에 “대한체스연맹은 대한체육회 인정단체로 국제대회 파견 경비 등에 대한 대한체육회나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있다”면서 “따라서 관례상 감독 및 코치의 대회 참가 경비는 선수들이 분담하여 부담하는 방식이 유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선수들이 감독·코치 선임에 불만을 갖는 주된 이유는 ‘사전 논의 부족’과 ‘기존 지도자들과 관계’로 분석된다”면서 “연맹은 보다 투명한 절차를 마련하고, 선수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