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을 사직한 지 1년이 지났다. 사직 전공의들은 수련 환경이 열악하다며 근무 여건 개선을 촉구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회입법조사처, 대한의사협회(의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가 공동 주최한 ‘의료현장 정상화를 위한 정책대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토론회가 10일 국회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병원을 사직한 전공의들과 휴학 중인 의대생, 의료계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박단 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의협 부회장)은 “2015년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등을 목적으로 한 ‘전공의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여전히 전공의 근무 환경은 열악한 상황”이라며 연속 수련 시간을 단축하고 휴게 시간을 법에 명문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공의는 근로자이면서 동시에 피교육생(수련의)이라는 이중 신분 보유자다. 전공의는 인턴으로 1년간 여러 진료과를 돌며 경험하고, 이후 전문 과목을 정해 레지던트로 3~4년간 수련한다. 신분대로라면 이들의 주 업무는 ‘교육’이어야 한다. 하지만 전공의들은 의료현장에서 교수들의 수술과 진료를 보조하고 입원 환자들을 살피며, 새벽 내내 응급실을 지키는 ‘핵심 인력’으로 일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2022년 대전협이 1만3000명의 전공의를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서 전공의 평균 근로 시간은 77.7시간이었고, 인턴 응답자의 75.4%는 평균 주 80시간을 초과해 근무하고 있다고 답했다”며 “유럽과 일본 등의 사례, 국제노동기구 지침 등을 참고해 전공의 수련 시간을 주당 80시간에서 64시간으로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기적으로는 근로기준법 특례 업종에서 의료인을 삭제해 주 52시간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면서 “연속 수련 시간을 현행 36시간에서 24시간으로 단축하고, 휴게 시간을 근로 시간으로 인정해야 하며 이를 법에 명문화해야 한다”고 짚었다.
최저 임금 수준인 보수도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박 위원장은 “실태조사에서 전공의 평균 급여는 397만원이었고 이를 시급으로 환산하면 약 1만1700원에 불과했다”며 “포괄임금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실제 근로 시간에 따라 임금을 지급해야 하며 연장·야간·휴일 근로에 대해 가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공의 수련 시간은 길지만 제대로 배우는 것은 없다며 교수 평가 제도를 도입해 지도전문의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도 했다. 박 위원장은 “전공의는 대개 교수의 시술·수술을 어깨너머로 지켜보거나 서적, 논문 등을 통해 스스로 학습한다. 교육의 대부분은 상급 연차 전공의가 담당한다”며 “독립적 시술·수술 수행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는 전공의를 위해 교수 평가 제도를 도입해 지도전문의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공의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경우엔 수련병원 지정에서 제외하거나 수가 삭감, 병원장 및 지도전문의에 대한 벌칙 부여 등의 행정적 제재를 도입해야 한다”면서 “현재 지역 수련병원과 수도권 병원 교육 격차가 심각한 수준으로, 전공의를 순환 근무시킬 것이 아니라 국립대병원 교수들을 순환 근무하도록 해 지방으로 분산 배치하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일부 수련병원 교수들의 갑질 문제도 거론했다. 박 위원장은 “교수가 전공의를 상대로 폭행하거나 돈을 갈취하는 경우가 있었다”라며 “수련환경평가위원회는 실질적으로 전공의를 대변하지 못하고 있으며, 수련이라는 명목 하에 노동 착취가 합리화되고 있다”고 했다.
김준영 전 순천향대서울병원 전공의는 “전문의 취득을 위해선 학술지 논문을 써야 하는데 교수의 허락 없이는 논문을 아예 쓸 수 없다”라며 “교수에게 반항할 수 없고, 전문의 취득 후 1년 동안 병원에서 근무해야 하며, 각종 심부름도 군말 없이 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전문의 취득 후에도 추가 근무와 대학원 등록을 강요받고, 365일 내내 당직을 강요받는 게 현실”이라며 “전공의법에는 과태료 외에는 별다른 벌칙 조항이 없어 ‘난장판 수련’이 계속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임신한 전공의를 출산 직전까지 당직을 서도록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김은식 전 세브란스병원 전공의는 “‘임신한 전공의가 당직을 면제받은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의국에서 당직 압박을 가했다”라며 “산부인과 전공의 A씨는 임신 당시 당직을 거부할 수 없는 분위기에서 일하며 압박을 느꼈으며, 다른 전공의 B씨는 임신 중 당직 근무를 선 뒤 자택에서 극심한 통증을 느껴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다”고 전했다.
직접 겪은 수련시간 규정 위반 사례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김 전 전공의는 “2022년 7월 모 병원 파견 근무 중 코로나19에 걸렸고, 후유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당 110~120시간을 근무했다. 휴게 시간은 전혀 보장되지 않았다”라면서 “병원 측은 전공의특별법의 허점을 이용해 전공의 착취를 지속하고 있다. 전공의를 법적으로 보호하고 양질의 수련을 보장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