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 국내에 사모펀드 프라이빗에쿼티(PE) 제도가 본격 도입된 후, PE는 20년간 경영권 인수, 구조조정, 신사업 확장 등의 핵심 플레이어로 성장했다. 한편으론 ‘포식자’ ‘기업사냥꾼’ ‘먹튀’라는 인식이 여전하다. 인수 기업을 성장시키기보다 단기 수익을 위해 기업을 ‘껍데기’로 만드는 사례가 끊이지 않으면서다.
최근 기업회생(법정관리) 절차에 들어간 사모펀드(PEF) 운용사 MBK파트너스(이하 MBK)의 홈플러스 사태는 이러한 우려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사례다. 그렇다면 PE는 기업의 가치를 키우는 자본시장의 꽃일까, 단기 차익을 노리는 기업 사냥꾼일 뿐일까.
M&A 큰손 된 PE…PEF는 또 뭔데?
기업을 사고파는 ‘회수시장(엑시트 시장)’은 자본시장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많은 기업이 유동성 위기를 맞는다. 기업 규모에 따라 계열사를 매각해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면 기업 자체가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IMF 외환위기 당시 국내 우량기업들이 혹독한 구조조정을 통해 많은 계열사를 인수합병(M&A) 시장에 내놨다.
모두의 돈줄이 말랐을 땐 매물을 사줄 사람을 찾기 어렵다. 이때 등장한 것이 외국계 자본이다. 사실 M&A는 기업 성장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도구다. 세계 1위 기업이 가장 많은 미국은 M&A 시장이 굉장히 활발한 대표적인 국가다. 한 예로 유튜브, 안드로이드, 딥마인드 등은 구글의 대표적인 M&A 성공 사례로 꼽힌다.
IMF 당시 국내 기업도 외국계 자본 PEF에 속절없이 팔려나갔다. 막대한 국부가 유출됐다. 이는 국내 시장이 PEF 중요성에 눈을 뜬 계기가 됐다. 2004년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 개정으로 토종 PEF가 활동을 시작했다. 2004년 2개, 출자약정액 4000억원으로 시작한 국내 PEF 사업은 2023년말 기준 1100여개, 140조원대에 이르며 비약적으로 성장해왔다.

기업 사냥꾼인가, 구원투수인가
여기서 PEF와 PE의 구분이 필요하다. PEF는 소수 투자자로부터 모은 자금을 주식·채권 등에 투자해 수익을 내는 펀드다. 이러한 PEF의 운용사를 PE라고 한다. PE는 투자 대상에 따라 △벤처캐피탈(벤처 투자) △바이아웃 △성장자본(기업에 필요자금 공급) △메자닌캐피탈(주식과 채권 중단 단계의 자금) △부실채권(부도·법정관리 등 부실화 기업이 발행한 채권 투자) 등의 형태로 유형이 나뉜다.
보통 사모펀드라 하면 바이아웃 펀드로 받아들일 정도로 바이아웃 형태의 투자가 일반적이다. 인수한 기업의 가치를 개선한 후 수익을 극대화해 재매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인수 자금 상당 부문을 피인수기업의 자산이나 미래 현금흐름을 담보로 자금을 빌리는 차입매수(LBO) 기법을 주로 쓴다.
PE가 ‘기업 사냥꾼’ 이미지로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은 이런 태생적인 한계와도 무관치 않다. PE는 보통 단기 이익 실현을 위해 기업 인수 이후 공격적인 투자와 구조조정, 사업 개편에 나선다. 자금을 빌려 투자하는 형식인 만큼 인수 기업의 수익이 저조하거나, 투자 기간이 길어질 경우 이자 부담에 허덕이게 된다. 이에 일정 기간 투자의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최대한 손실을 털어낼 전략을 택한다. MBK의 홈플러스 기업회생 개시를 이러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반면, PE는 정책 금융이 커버할 수 없는 기능까지 해낸 것도 사실이다. PE는 벤처, 스타트업과 같은 중소기업들의 운전자금 창구가 돼 신성장산업에 대한 지원을 해왔다. 국내 자본 축적과 기업 구조조정을 통해 부실기업을 살리는 역할도 한다. 기업 체질 개선을 위해 비효율적 경영체제도 손본다. 금융기관 부실채권을 정리하는 효과도 있다.

사모펀드 ‘빛과 그림자’
‘양날의 검’ 같은 PE의 투자 결과 역시 실패와 성공으로 갈릴 수밖에 없다. 스카이레이크가 매각한 아웃백코리아는 손에 꼽히는 엑시트(자금회수) 성공 사례다. 스카이레이크는 2016년 아웃백코리아를 570억원에 인수했다. 실적이 부진한 점포를 새 단장하고, 냉동 대신 냉장고기로 바꿨다. 추가 인프라 지출을 아끼지 않은 덕에 기업 가치가 2500억원대까지 올라 2021년 bhc그룹(현 다이닝브랜즈그룹)에 매각됐다.
UCK파트너스(구 유니슨캐피탈)은 지난 2014년 공차코리아를 340억원에 인수했다. 2019년 글로벌PEF인 TA어소시에이트에 공차코리아 지분 전량을 3500억원에 매각하면서 투자 원금 대비 6배 수익을 거뒀다.
글랜우드PE는 2014년 동양매직을 3010억원에 인수한 이후 렌탈 사업 경쟁력 강화에 주력하며 체질 개선에 나섰다. 인수 당시 50만개 수준이던 렌털 계정은 2016년 100만개 이상으로 늘었다. 글랜우드PE는 2년여 만에 동양매직 기업가치를 6100억원까지 끌어올려 대기업인 ‘SK그룹’에 매각했다.
업계는 최근 논란인 홈플러스 사태를 두고 PE의 경영 실패로 분류한다. 회생 신청은 결국 MBK가 PE로서 명분과 실리를 잡은 선택이란 것이다. 다만 PE의 비난과 책임론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인수기업의 경영 개선에 막대한 공급을 투자한 성공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PE 기업경영 역량 확보해야
MBK 측은 회생 개시를 두고 신용등급 하락에 따른 잠재적 자금 이슈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MBK 인수 후 10년간 홈플러스 실적은 계속 하락하는데, 점포 등 알짜 자산 매각으로 기업 경쟁력이 더 약화시켰다는 평가는 뼈아프다. MBK가 기업 가치 올리는데 충분한 노력을 기울였는가에 대한 의구심만 커졌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자구책보다 회생 신청을 선택했다. 이유도 잠재적 이슈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란 점에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PEF는 단기적 이익을 취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반 경영자처럼) 경영 하지 않는다는 것이 한계”라며 “(홈플러스 사태와 같은 사례가 계속된다면) PEF가 너무 단기적 이익만 취하지 않을 방안을 모색하는 등 금융당국이 문제를 살피고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PE가 인수 기업의 기업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핵심 역량은 기업 경영능력에 있다는 것이 전문가의 중론이다. PE의 경영 능력이 확보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제2의 홈플러스가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PE의 PEF 포토폴리오에 수십개의 기업이 들어가 있는데, 이 중에서 망하는 기업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MBK뿐만 아니라 전 세계 바이아웃 펀드들의 동일한 현상”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홈플러스 기존 경영진이 경영을 잘 못했기 때문에 MBK에 매각됐던 것. MBK 인수 없이 구 경영진이 계속 홈플러스를 운영했다고 해도 경영 결과가 좋을지 알 수 없다”며 “결과적으로 MBK는 홈플러스를 인수했고, 경영에 실패했다. PE의 장단점을 볼 수 있는 사례”라고 말했다.
PEF의 투자기간을 장기화할 수 있는 유인책도 필요하다. 삼일PwC경영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PEF의 평균 존속기간은 2017년 4.25년에서 2022년 3.9년으로 계속 짧아졌다. 연구원은 “성장자본 공급이라는 PEF 취지에 맞게 투자 기간을 장기화할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