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수가 크게 늘고 있다. 지난 5월 방한 외래관광객은 163만명에 육박하며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넘어섰고, 올해 누적 관광객도 지난해보다 14% 이상 늘었다. K-팝과 드라마, 지역 맛집 등 한류 콘텐츠를 앞세운 민간의 기획과 마케팅이 글로벌 팬들을 끌어모은 덕분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민간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며 한국관광공사가 보다 전략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장에서는 “공사가 단순 홍보와 예산 지원에 그치면서 존재감이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실제 통계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선명히 드러난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2025년 1분기 외래관광객 조사에 따르면, 한국 방문 이유로 ‘한류 콘텐츠를 접하고 나서’라고 답한 비율은 지난해 같은 기간 34.6%에서 41.8%로 크게 늘었다. 전통문화를 경험한 뒤 방한했다고 답한 비율도 27.2%에서 31.8%로 증가했다. 한류 콘텐츠가 방한 동기의 중심으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수요를 뒷받침하는 것은 다름 아닌 민간의 기획력이다. 방탄소년단(BTS) 팬 투어, 드라마 촬영지 성지순례, 지역 맛집·카페 투어 같은 ‘팬덤·콘텐츠 관광’ 상품은 대부분 팬 커뮤니티와 여행 플랫폼, 항공·호텔 업계가 주도해 설계하고 있다. BTS 팬 투어만 봐도 민간 주도의 역량이 두드러진다. 코레일관광개발은 ‘KTX 원데이투어 인더숲’을 출시해 BTS가 출연한 오리지널 콘텐츠 ‘인더숲 BTS편 시즌2’ 촬영지를 KTX로 찾아가는 상품을 운영 중이다. 하나투어ITC 역시 하이브의 ‘인더숲 BTS편 평창’ 촬영지를 방문하는 별도의 투어를 선보였다.
해외 플랫폼으로도 이 같은 움직임은 빠르게 확산됐다.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의 ‘서울 BTS 아미 팬 데이 투어’는 BTS 관련 장소를 소규모로 둘러보며 영어 가이드가 동행하는 일정으로 판매된다. 더 드래곤 트립(The Dragon Trip)은 서울과 부산을 아우르는 11일 일정의 ‘한국 BTS 아미 K-팝 투어’를 기획했고, 겟유어가이드(GetYourGuide), 트래블팩(Travelpack) 등에서도 유사 상품이 상시 판매된다. 교통과 가이드, 숙박까지 결합한 완전 패키지를 민간 여행사가 직접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 이제 표준이 됐다.
한국관광공사가 이런 흐름 속에서 기획자나 연결자로서의 존재감을 보여주었는지에 대해서는 업계 회의론이 짙다. 한 지방 여행사 대표는 “공사에서 팸투어나 단순 홍보 지원은 해주지만, 실제 상품 아이디어를 내고 현장 수요를 연결하는 것은 민간이 다 한다”며 “공사는 이미 만들어진 트렌드를 뒤따라가며 홍보물에 담는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전략 부재는 더욱 두드러진다. 일본 정부는 관광산업을 국가 경제 성장의 핵심으로 삼고, 2030년까지 연간 외래관광객 6000만명 유치와 관광 지출 15조엔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방일 외래객은 사상 최대인 3687만명에 달했다. 일본국제관광기구(JNTO)는 애니메이션 팬 성지순례 같은 틈새 테마 상품을 민간과 공동 기획해 매년 새로운 코스를 선보이고, 지역 여행사·지자체와 분산관광 프로그램을 패키지화해 실적을 쌓는다.
반면 한국관광공사는 ‘비짓코리아’ 앱 등 공공 플랫폼을 운영하지만, 대부분 정보 제공에 머물고 있어 민간 여행상품과 실시간 예약을 연계하는 기능은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관광분야 전문가는 “민간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영역에서 공공기관이 뒤늦게 따라가며 예산만 쓰면 경쟁력이 없다”며 “공공은 민간이 손대기 어려운 지역관광, 거버넌스, 지속가능한 모델 같은 전략적 영역을 먼저 발굴하고 기획자이자 조율자가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기적인 관광 활성화를 위해 공공의 적극적인 기획 역량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내 여행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민간이 만든 흐름을 공공이 옆에서 뒤따라가는 수준”이라며 “지속가능한 K-관광을 위해 공공이 틈새 영역을 먼저 발견하고 민간과 전략적으로 묶는 기획 역량을 보여줘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관광학과 교수는 “팬덤 기반 K-관광은 민간이 빠르게 기획하고 흥행을 만들어내는 힘이 분명하다”며 “하지만 이런 흐름은 유행에 따라 변동성이 큰 만큼, 장기적으로는 이를 뒷받침할 로드맵과 생태계를 공공이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소도시 분산관광이나 틈새 콘텐츠는 민간 혼자선 투자나 유통이 쉽지 않기 때문에 공공이 기획자이자 연결자 역할로 지역과 민간을 묶어내야 한다”며 “단기 행사성 지원에 머무는 구조를 벗어나 지속가능한 K-관광 모델을 만들어야 결국 글로벌 경쟁에서도 관광공사 존재감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