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 10년 가까이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었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 받으면서, 불안정한 글로벌 통상환경 속 ‘뉴삼성’ 비전을 확대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17일 오전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이 회장의 안정적 경영권 승계를 위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각종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검찰의 주장을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실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 나머지 피고인 13명도 무죄를 확정 받았다.
이번 결정으로 이 회장은 기소 후 4년 10개월간 이어진 재판 일정을 완전히 마쳤다. 2년6개월의 실형이 선고된 지난 2016년 국정농단 의혹 사건까지 포함하면 10년 가까이 계속된 사법 리스크에 마침표를 찍은 셈이다.
이 회장이 ‘사법 족쇄’를 완전히 풀어내면서 향후 등기임원 복귀 시점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현재 국내 5대 그룹 총수 중 미등기임원은 이 회장이 유일하다. 그는 부회장 시절인 2016년 10월 임시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선임돼 2019년 10월 임기 만료로 3년 만에 물러난 바 있다. 사내이사 선임 직후 사법 리스크가 발생해 직위를 연장하기 어려운 탓이었다.
현재 삼성전자는 이 회장의 장기 경영 공백 속에서 본업인 반도체 부진, 중국의 추격, 미국의 관세 등 큰 위기를 맞은 상태다. 반도체 사업에서는 파운드리와 시스템LSI(설계) 부문의 조 단위 적자가 이어지고 있고, 초격차를 자부해온 메모리 부문은 인공지능(AI) 핵심 밸류체인이 된 고대역폭 메모리(HBM) 개발에 실기한 채 글로벌 점유율 1위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영업이익 역시 재작년 현대차, 지난해 SK하이닉스에 밀려 2년 연속 국내 2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신성장 동력을 위한 빅딜은 2017년 3월 9조3000억원 규모의 하만 인수 이후 잠시 멈춘 상태다.
다만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 해소와 맞물려 지난 4월 자회사 하만을 통해 미국 마시모의 오디오 사업부를, 5월에는 독일 공조업체 플랙트를 인수하며 반등을 모색하고 있다. 이달 초에는 미국 디지털 헬스케어 회사 젤스를 인수하기로 했다.
새 정부 출범에 발맞춘 대규모 투자 청사진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삼성은 윤석열 정부 당시인 2022년 5월, 향후 5년간 미래 먹거리 분야에 45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기존 투자 정책들을 추진함과 동시에 이 회장이 등기임원으로 복귀할 경우 사업의 규모와 속도가 더욱 크고 빨라질 것이란 전망이다.
그룹 내부 쇄신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지난 3월 이 회장은 임원 대상 세미나에서 “삼성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존의 문제에 직면했다. 경영진부터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면서 “삼성다운 저력을 잃었다. 중요한 것은 위기라는 상황이 아니라 위기에 대처하는 자세”라고 이례적으로 강하게 질책한 바 있다. 그룹의 위기가 전사적으로 놓여 있는 만큼 반도체 외 다른 사업 부문의 경영 진단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은 지난해 말 연간 보고서에서 컨트롤타워의 재건, 최고경영자(이 회장)의 등기임원 복귀 등을 책임경영 실천을 위한 혁신적 지배구조 개선 과제로 꼽기도 했다.
한편, 주요 경제단체에선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 해소를 반기는 분위기다. 대한상공회의소는 판결 직후 자료를 통해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존중하고 환영한다”면서 “첨단산업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해당 기업의 경영 리스크 해소뿐만 아니라 한국경제 전반에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고 언급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이번 판결이 삼성전자는 물론 최근 한국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을 줄이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평가했으며, 한국경영자총협회 역시 “이번 판결을 계기로 삼성전자의 사법리스크로 인한 불확실성이 해소돼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