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당국이 보험사의 혁신·벤처기업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자본 규제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 정책 펀드 등에 보험사가 투자할 경우 적용되는 위험계수를 낮추는 방안이 핵심이다. 다만 실제로 투자 확대의 마중물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5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보험사가 인공지능(AI)나 반도체 등 첨단 산업에 투자하는 정책 펀드 등에 자금을 투입할 경우, 해당 자산에 적용되는 위험계수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위험계수는 보험사가 보유한 자산의 위험 수준을 수치화한 지표로, 자본 적립 부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현행 제도상 보험사는 자산의 위험도에 따라 일정 수준의 준비금을 적립해야 한다. 원금 손실 위험이 클수록 높은 위험계수가 적용된다. 위험계수가 높을수록 보험사가 쌓아야 할 자본금 부담이 커지면서 투자 여력은 줄어든다. 이 때문에 보험사들은 안정성이 높은 채권이나 일부 우량 부동산 외의 대체투자에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이번 규제 완화로 위험계수가 낮아질 경우 보험업계는 포화된 국내 시장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현재 감독규정에 따르면 국채나 우량 회사채 등 안전자산에는 위험계수가 0~2.5%의 수준이지만, 주식 등 변동성이 큰 자산에는 20~49% 수준의 계수가 부과된다.
금융당국은 이번 조치가 시행되면 보험사들이 최소 수조원 규모의 자금을 혁신 분야에 투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3월 말 기준 국내 생명·손해보험사의 운용자산은 총 1070조 원에 이른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벤처나 인프라 투자 등은 이미 일부 보험사들이 참여하고 있지만, 위험계수가 낮아지면 투자 유인이 더 커질 수 있다”며 “적용 범위가 확대되면 포트폴리오 다변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보험업계 쪽에선 온도차가 조금 있다. 자본건전성 관리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보험사의 특성상 신지급여력제도(K-ICS) 비율 등 주요 지표에 대한 부담이 함께 완화되지 않으면 실제 투자 확대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현재도 자본건전성 지표를 맞추는 데 부담이 큰 상황이라 실제 혁신 자산으로의 투자가 늘어날지는 확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이론적으로는 투자 촉진에 도움이 되지만, 다양한 보완책이 병행돼야 실질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방안이 하반기부터 도입 예정인 기본자본 중심 규제와 상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금융당국은 올해 하반기부터 후순위채 등 보완자본을 제외하고 측정하는 기본자본 기준의 킥스 제도를 시행할 방침이다. 이는 자본의 ‘질’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지만, 보험사 입장에서는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로 업황 부진과 기준금리 인하 등의 영향으로 전체 39개 생명·손해보험사 중 26곳의 기본자본 비율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우려에 금융당국도 업계 의견을 수렴한다는 계획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현재 실효성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며, 최근 EU의 개선 사례에서도 참고할 만한 요소들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업계의 애로사항을 수렴하는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