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AIST가 우울증 원인이 단순한 신경세포 손상 때문만이 아니라 특정 신경 신호경로의 교란으로 발생할 수 있음을 밝히고, 고령 우울증 환자에게 기존 항우울제가 반응하지 않는 분자적 원인을 규명했다.
KAIST 생명과학과 허원도 석좌교수팀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이민주 법의관, 아주대의료원 김석휘 교수팀과 협력해 극단 선택을 한 환자의 뇌 조직의 RNA 염기분석과 면역조직화학 분석으로 우울증의 새로운 분자 기전과 더불어 신경 회복을 유도하는 신호경로를 조절함으로써 항우울 효과를 회복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연구팀은 기억과 감정을 담당하는 뇌 해마 중 ‘치아이랑(DG)’에 주목했다.
치아이랑은 해마 안에 정보가 처음으로 들어올 때 새로운 기억 생성과 신경세포가 자라고 감정 조절과 우울증과 연관이 있는 공간이다.
연구팀은 대표 우울증인 콜티코스테로이드 스트레스 모델과 만성 예측 불가능 스트레스 모델 생쥐를 이용해 스트레스가 유발될 때 DG 부위에서 성장인자(FGF)라는 신호물질을 받아 세포 안 성장·분화 명령을 전달하는 신호수용체 ‘FGFR1’가 늘어남을 확인했다.
FGFR1 유전자라는 특별 조건을 제거한 조건부 녹아웃 생쥐를 활용해 해당 수용체가 제거된 상황에서 스트레스에 더 취약하고 우울증상을 더 빠르게 나타냄을 규명했다.
이는 FGFR1이 정상적인 신경 조절 및 스트레스 저항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어 연구팀은 광유전학 기술을 활용해 스트레스 저항에 매우 중요한 FGFR1을 빛으로 활성화할 수 있는 ‘optoFGFR1 시스템’을 개발, FGFR1이 부족한 우울증 마우스 모델에서 이를 활성화함으로써 항우울 효과가 회복되는 현상을 관찰했다.
이는 FGFR1 신호 활성화만으로 우울 행동이 개선될 수 있음을 실험적으로 입증한 것이다.
하지만 노화된 우울증 생쥐에게는‘optoFGFR1 시스템’을 통한 FGFR1 신호 활성화에도 항우울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팀은 ‘Numb’이라는 단백질이 노화된 뇌에서 과도하게 발현돼 FGFR1의 신호전달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실제 연구팀이 수행한 사후 인간 뇌조직 분석에서 나이가 든 우울증 환자에게서만 Numb 단백질의 특이적 과발현이 관찰됐다.
이후 마우스 모델에 Numb을 억제하는 유전자 조절도구 ‘shRNA’를 발현시키고 동시에 FGFR1 신호를 활성화, 회복되지 않던 노화된 우울증 생쥐모델에도 신경 발생과 행동이 정상 수준으로 회복됐다.
이는 Numb 단백질이 FGFR1 신호 경로의 ‘차단자’ 역할을 하며, 해마의 항우울 기전을 막는 주요 인자임을 의미한다.

허 석좌교수는 “이번 연구는 우울증이 단순 신경세포 손상만이 아니라 특정 신경신호 경로의 교란에 의해 발생할 수 있음을 밝힌 것”이라며 “ 고령 환자에게 항우울제가 잘 듣지 않는 이유를 분자적으로 규명하고, 향후 Numb 단백질을 표적으로 하는 새로운 치료법 개발의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KAIST 생명과학과 신종필 박사과정이 제1저자로 참여했고, 연구결과는 지난 15일 국제학술지 ‘익스페리멘탈 앤 몰리큘라 메디슨(Experimental & Molecular Medicine)’에 게재됐다.
(논문명: Dysregulation of the FGFR1 signaling in hippocampus facilitates depressive disorder *DOI: https://doi.org/10.1038/s12276-025-015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