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현지 시간 오는 25일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첫 한미 정상회담이 개최될 예정이다. 이재명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수립한 국정기획위원회는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를 외교안보정책의 기조로 설파했다. 국제 정치사를 되돌아볼 때 실용외교(Pragmatic Diplomacy)는 명분과 실리를 함께 챙길 때 비로소 그 빛을 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중정치에 기반을 둔 강력한 트럼피즘(Trumpism, 트럼프주의)에 각국 정상들이 난색을 표명하는 상황에서 이번 한미 정상회담이 이재명 정부 집권 초반기 외교 성적표에 미칠 파급력은 매우 클 것이다.
실용외교는 흔히 국제정치에 있어 ‘현실 정치(Real Politik)’로 대변된다. 19세기 중반 독일의 정치인이자 언론인이었던 루트비히 폰 로차우(Ludwig Von Rochau)는 현실 정치 용어를 최초로 고안하면서, 국가의 정책은 권력 추구, 소유, 그리고 행사에 기반하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 트럼피즘의 부작용으로 ‘반미 패권주의’가 확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정부가 우리나라 대외정책의 가장 중요한 근간인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실용 외교를 성공적으로 전개하는 것이 격랑에 휩싸인 오늘날 국제 정세 상황에서 녹록하지 않을 것이다. 유럽, 아시아, 북미, 중동, 아프리카 등 어느 한 지역에서도 예외 없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고 냉정한 국익 중심의 외교전이 펼쳐지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의 백미는 양국 정상의 공동 선언문이다. 안타깝게도 과거 한미 정상회담 직후 채택된 공동선언문의 대부분은 각 정상의 임기 내에 성과 도출이 거의 불가능한 공통의 목표, 가치, 이념 등을 밝히는 데 치중되었다. 그렇지만, 국내 정치적으로 선언문의 내용은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되었고, 정부의 외교력을 총체적으로 평가하는 시금석으로 인식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우리에게 동맹국으로서의 부담을 가중할 것이라는 전망이 매우 우세적하다. 이런 상황에서 더욱 냉철한 국익에 대한 평가가 정상회담에 앞서 필요하지만, 한미 양국의 국익이 한미 양국의 관계 설정만으로 결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 같은 평가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선언적 정책(Stated Policy)’이 아닌‘선언적 행동(Declarative Action)’ 중심으로 한미 정상 간에 합의가 이뤄진다면 최선은 아니어도 충분한 차선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선언적 정책은 명분에 대한 정책적 홍보 가치는 크지만, 성과 중심을 판단되는 실리적 측면에서 있어선 다양한 평가를 불러일으킨다. 반면, 선언적 행동은 실리 추구를 우선시하고 그 실리 추구를 통해서 외교적 명분을 합리화시키는 것이다. 한반도 안보 상황의 특수성, 미국에 대한 높은 의존도, 미·중 경쟁 관계의 심화,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등으로 우리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서 ‘선언적 정책’을 미국과 공유하는 데 치중했고 이를 기반으로 대외 전략의 근간을 관행적으로 마련했다.
한미 정상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할 대부분의 주요 현안은 선언적 정책으로 그치기에는 너무나도 시급하게 다뤄져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위한 방미 기간에 한화오션에서 인수하여 운영하고 있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필리조선소 시찰 계획을 잡은 것은 한미 간에 선언적 행동을 끌어 낼 수 있는 전략적 기회가 될 것이다. 미국이 중국과의 글로벌 경쟁 속에서 가장 난해하고 독자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글로벌 해상 패권이다. 실례로, 중국의 상선과 군함 건조 실적이 미국의 수십 배가 아닌 수백 배에 달한다. 중국 정부가 최근에 세계 최대 규모의 중국 조선사 두 곳을(중국선반집단유한공사(CSSC), 중국선반중공업집단(CSIC)) 하나의 국영기업으로 합병한 것은 미국에 대한 엄청난 위협을 가중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 외교와 트럼프 대통령의 트럼피즘(Trumpism)의 대결이 어느 일방의 한판 대결이 아닌 양국 모두가 서로에게 중요한 실리를 챙기는 판정승이 되어야 한다. 한미 정상이 각국의 서로 다른 취약점을 공략하여 실리를 추구하기보다는 서로의 강점을 존중하여 보다 지속 가능한 실리를 극대화하는 새로운 전략적 접근법이 모색되어야 한다. 이러한 전략적 시도는 조선, 원자력, 반도체 등의 분야에 있어서 미개척된 한미 간 협력을 한층 더 강화할 것이고 지속 가능한 동맹 지평의 영역이 양국 차원을 넘어 글로벌 환경에서 크게 확장될 것이다.
박진호 전 국방부 정책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