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세훈 서울시장은 21일 중구 시청에서 열린 ‘지속 가능한 번영을 위한 길’ 특별 대담에서 핵심 정책 기조인 ‘약자와의 동행’이 단순한 윤리적 가치가 아니라 “계층 이동 사다리를 통해 경제 발전의 원동력을 만드는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로빈슨 교수 “한국 성장 비결은 창의성·포용성”
이날 대담에는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공동 수상자인 제임스 로빈슨 시카고대 교수가 참석해 포용적 제도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로빈슨 교수는 “한국의 지난 70년간 성공은 혁신을 추구하는 국민의 열정과 창의성 덕분”이라며 “공정한 경쟁 규칙이 마련된 덕에 휴대전화·자동차 산업 성장뿐 아니라 케이팝 같은 문화적 창의성도 꽃피울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포용적 제도는 정치 권력의 광범위한 분배와 효과적인 국가 기관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독재자가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제도가 아니다”라며 “한국은 1970년대부터 꾸준히 발전해왔지만, 민주주의 전환 이후 더욱 폭발적으로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의 문제는 지난 50년간 세상은 변했는데 제도는 변하지 않은 점”이라며 “시대 변화에 맞춰 포용적 제도를 보호·발전시켜야 한다. 정치적 포용성이 경제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세훈 “효율적 복지로 경제 발전의 원동력 제공할 것”
오 시장은 “국가 번영의 조건은 인센티브 시스템의 작동에 있다. 잘 살고 싶다는 욕망이 성취를 만들고, 그 성과가 쌓일 때 국가적인 번영이 된다”며 “한국이 짧은 기간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이 배신당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일정 수준 경제 성장을 이루자 빈부격차가 커졌다. 경쟁 과정에서 자연히 생기는 격차를 어떻게 발전의 원동력으로 전환할지가 숙제”라며 “적당한 불평등은 발전의 에너지가 될 수도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계층 이동 사다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오 시장은 또 “기회의 형평성은 당연히 보장돼야 하지만, 본질적 효용은 경제 발전 동력 제공에 있다”며 “‘약자와의 동행’은 사회적 도리를 넘어 경쟁과 모험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라고 설명했다. 복지 정책과 관련해선 “재원이 한정돼 있는 만큼 무차별적 복지 대신 효율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며 “디딤돌 소득에는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들을 다시 출발선에 세우려는 철학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포퓰리즘 대항하려면 민주주의 제대로 작동해야”
대담에서는 포퓰리즘 문제도 다뤄졌다. 오 시장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일정 수준의 포퓰리즘은 불가피하지만, 자유시장 질서를 무너뜨릴 정도라면 국민적 저항으로 막아야 한다”며 노란봉투법을 “노동조합에 대한 큰 선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미국처럼 해고가 자유로운 고용 유연성이 제도화돼 있다면 궁합이 맞을 수 있겠지만, 한국은 해고가 경직된 상황에서 불법 파업까지 횡행하면 기업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로빈슨 교수는 이에 “민주주의는 파도와 같다. 번창하는 시기가 있으면 역류하는 시기도 있다. 지금은 역류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며 “이럴 때일수록 민주주의를 통해 사람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에 민주주의가 정착했기 때문에 많은 성취가 가능했다”며 “민주주의 제도를 개선하고 효용성을 높여야 반(反)제도적 포퓰리즘에 맞설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로빈슨 교수는 오는 12월 열리는 ‘2025 서울 국제 디딤돌소득 포럼’에서 기조연설을 맡아 ‘사회경제적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정책 기제, 디딤돌소득’을 주제로 발표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