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밴드 동아리 기타리스트를 꿈꿨던 소녀가 배우가 됐다. 상업 데뷔작은 넷플릭스 시리즈 ‘애마’, 극중 포지션은 무려 타이틀롤이다. “어쩌다가” 연기를 시작해 30대에 접어들어서야 큰 기회를 잡은 사람치곤 부담이 없었단다. 카페부터 옷가게까지 무명 시절 아르바이트한 장소도 여럿이다. 뭐 하나 딱 떨어지는 것 없이 자유분방했다. 27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방효린(30)은 어쩐지 이것저것 묻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애마’는 1980년대 한국을 강타한 에로영화의 탄생 과정 속,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 가려진 어두운 현실에 용감하게 맞짱 뜨는 톱스타 희란(이하늬)과 신인 배우 주애(방효린)의 이야기다. 지난 22일 공개됐다.
노출을 감수하고 ‘애마’로 주연 데뷔에 나선 배우라 하면 독기 가득한 신인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방효린은 달랐다. 처음 제목을 보고 자동차와 관련된 드라마인 줄 알았다는 그의 엉뚱함은 웃음을 자아냈다. 하지만 수천대 경쟁률을 뚫고 합류하기까지의 과정은 우습지 않았다.
“대본을 읽었는데 대사들이 정말 좋아서 직접 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제가 신인 배우 캐릭터를 하면 의미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비대면 영상 오디션 통과 후 감독님과 미팅을 했고, 3차 오디션을 마지막으로 출연이 결정됐어요. 1부부터 6부까지 모든 대사를 읽었는데, 대사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연기하는 모습을 좋게 봐주셨다고 해요. 대사를 잘 표현해 주는 배우를 처음 만났다고도 얘기해주셨어요.”
캐릭터 준비 역시 녹록지 않았을 터다. 클럽 댄서 출신이라 탭댄스에 능해야 했고, 제목에 걸맞게 승마 실력도 특출나야 했다. 아울러 섹시 심벌로 소비되는 인물이다 보니 살을 찌워야 했다.
“감독님이 팔뚝을 비롯해 전체적으로 벌크업이 되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매일 헬스장에 가고 밥차 음식을 열심히 먹었어요. 승마와 탭댄스는 캐스팅되고 3일 후부터 바로 배우기 시작했어요. 촬영 끝날 때까지 연습했으니까, 반년 넘게 했던 것 같아요.”
흡연도 처음이었다. 초행길답게 거리를 배회하며 연습 장소를 찾으러 다닌 일화가 흥미로웠다. “어디에서 피워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금연초를 들고 집 주변을 돌아다녔어요. 골목에서 피워도 되는 건지 고민도 하고, 결국 흡연 부스를 발견해서 연습했죠. 흡연하는 분들한테도 많이 물어봤어요.”

주연의 무게를 차치해도 긴 호흡의 작품이 처음이라서 지칠 만도 하지만, 소화해야 할 신이 빨리 줄어들지 않아서 오히려 기분이 좋았단다. 선배 이하늬의 살뜰한 보살핌도 한몫했다.
“전지 위에 장면들을 적어두고 중요한 신은 체크하고 촬영이 끝난 신은 지웠어요. ‘길게 쫙 펼쳐 놓았는데 하나하나 사라지는 게 싫다’는 마음이었어요. 평소 좋아하던 하늬 선배님이 희란 역할이라고 들었을 때 기뻤는데, 촬영하면서 잘 챙겨주셔서 감사했어요. 컷이 끝나면 늘 안아주시고, 체력적으로나 심적으로나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알려주셨어요. 늘 잘하고 있다고도 해주셨고요. 힘든 것보다 기쁜 게 훨씬 컸어요.”
세종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으로 오랫동안 배우를 지망했으리라 짐작하기 쉽지만, 고등학생 시절 방효린의 진짜 꿈은 의외다. 바로 대학교 밴드부 기타리스트. 기타 학원인 줄 알고 찾아갔던 연기 학원에서 종합예술을 접하면서 그의 인생은 달라졌다.
“고등학교 때는 그냥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어요. 대학에 가면 밴드 기타리스트를 해보고 싶었고요. 밴드부에 들면 인기가 많아진다고 들었거든요(웃음). 어쩌다가 연극영화과에 가게 된 거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게 재밌더라고요. 다양한 걸 해볼 수 있다는 점도 그렇고요.”
실제로는 조용하고 무던한 편이란다. 침묵이 불편하지 않고, 참을성도 많다고도 했다. 방효린의 말처럼 주애와는 확실히 다른 성격이었다. 그래서인지 단정 짓기 어려운 인상이었다. 다만 “아직도 파괴되지 않고 물들지 않고 오롯이 우리한테 온 배우”라는 이하늬의 평에 공감이 갔다.
“가끔 저도 신기해요. ‘내가 어떻게 사람들 앞에서 연기하고 있지’ 하고요. 그런데 연기할 때는 (주변이) 잘 안 보이는 것 같아요. 그러다 커트 하면 구석진 곳에 가서 조용히 앉아 있죠. 이제 ‘애마’가 세상에 나왔고, 많은 분이 저라는 사람을 알게 되셨는데, (지금까지의 기다림이) 답답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기다림도 좋거든요. 지금은 마냥 설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