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부산’ 하면 ‘고백의 역사’가 떠오를 것 같아요. 정말 행복하게 찍었는데 그 감정이 영화에 잘 녹아났어요. 보시는 분들도 힐링하시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3일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신은수(23)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이같이 밝혔다. 하지만 그의 말에 온전히 동의할 순 없었다. ‘신은수’ 하면 ‘고백의 역사’였고, ‘고백의 역사’ 하면 ‘신은수’였기 때문이다.
신은수는 지난달 29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고백의 역사’에서 고백을 앞두고 콤플렉스인 악성 곱슬머리를 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고등학교 3학년 박세리 역을 맡았다. 실제로 마주한 그는 자신이 연기한 인물과 똑 닮아 있었다. 타고난 듯 싱그러운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고, 현장을 추억하면서 까르르 웃다가도 스스로 답변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시무룩해지는 모습이 특히 그랬다. 극중 한윤석(공명)이 왜 박세리에게 마음이 동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물론 다른 점도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말투였다. 박세리는 부산 사투리를 쓰지만, 신은수는 표준어를 구사했다. 서울 출신이니 별스럽지 않은 일이지만, ‘고백의 역사’를 본 이에게는 아주 별스러운 포인트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 사투리 연기에 인색한 기자도 그의 출신지를 검색했을 정도로 억양을 잘 구현해 냈다는 뜻이다. 당연히 철저한 준비가 따랐다. 신은수는 당시를 회상하며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어 웃음을 자아냈다.
“촬영 들어가기 두세 달 전부터 레슨을 받았어요. 부산 사투리의 억양이나 높낮이가 엄청 디테일해요. 높이마다 번호를 정해놓고, 아이패드에 넣어둔 대본에 음절마다 적어서 연습했어요. 그 대본을 통으로 외운 셈이죠. 촬영 때마다는 사투리 선생님이 오셔서 봐주셨고요. 부산 토박이 바이브가 한 끗 차이인데 정말 어렵더라고요. 제가 듣기엔 똑같은데 틀렸대요. 언어를 새로 배우는 느낌이었어요.”

사투리만 배운 것이 아니었다. 신은수는 자신의 마음에 늘 솔직하고 이를 숨기지 않는 박세리를 통해 깨달은 바가 있다고 했다. “표현할 때 주저하는 편이었어요.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 앞섰고요. 세리는 자기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잖아요. 그 용기가 부럽더라고요. 세리를 통해 거침없이 표현하는 법을 배웠어요. 그리고 말을 못 해도 내가 말을 못 하는 성격이라고 인정할 수 있게 됐고요. 또 저는 뭐든 준비를 정말 많이 하는 성격인데요. 장점이지만 직업 특성상 변수가 많으니까 한계가 있어요. 조금 더 과감해도 되지 않을까 하게 됐어요.”
다만 사랑스러움은 본디 지닌 매력이었다. 한윤석과 교내 원톱 인기남 김현(차우민) 중 누가 더 좋냐는 물음에 “경쟁자가 많은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저만 가져야 된다”고 답하는가 하면, 한껏 들뜬 채 유치원 시절 첫사랑 일화를 전해 취재진을 미소 짓게 했다. “저의 낭만적이고 소중했던 첫사랑은 유치원 때였어요. 유치원 공식 커플이었는데 그 친구가 반지를 줬어요. 되게 감동이잖아요. 그렇게 잘 지내다가 어느 날 전학 간 거 있죠. 그리고 저도 세리처럼 초등학교 때 미래의 남편에게 주겠다고 접은 학이 아직 집에 있어요. 친구들이 같이 접어준 것도 세리랑 똑같네요.”
그렇다고 마냥 소녀는 아니었다. 성숙한 어른 같은 구석이 있었다. 데뷔 10년 차다웠다. “저는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참 좋아해요. 연기가 너무 좋은데 ‘내가 진짜 잘하는 일이 맞나’라는 생각을 너무 당연하게 했던 때가 있었거든요. ‘그냥 하자’ 하면서 지나왔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렇게 넘겨서 다행인 거죠. ‘계속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해요. 그래도 생각이 많아질 때는 일기를 써요. 글로 감정을 다 쏟아내면서 풀고, 시간이 지나서 다시 보면 별것 아니거든요. 그렇게 스스로 위로를 얻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