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령 인구의 급속한 증가와 함께 심장질환 환자 수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가운데 중증 심장질환인 대동맥판막협착증의 치료 접근성에 대한 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환자의 회복 기간을 단축하고, 합병증 위험을 줄이는 최신 치료법으로 주목받고 있는 ‘경피적 대동맥판 삽입술(TAVI)’에 대한 수가·급여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재승 고려대 안암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보험위원장)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개최된 ‘초고령사회 어르신 심장질환 보장성 확대를 위한 정책 토론회’ 발제를 통해 “현재 너무 저평가된 TAVI 수가는 반드시 인상이 필요하며, 환자 안전을 위해 수술과 같이 TAVI를 수행할 시 새로운 수가 신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양한 심혈관질환 중에서 사망률이 높은 질환 중의 하나가 대동맥판막협착증이다. 중증의 대동맥판막협착증은 호흡곤란, 흉통, 실신 등이 발생하면 1년 내 사망률이 30~50%에 달할 정도로 심각한 질환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중증 대동맥판막협착증 치료법은 심장을 열고 좁아진 판막을 제거해 인조판막을 삽입하는 ‘대동맥판치환술(SAVR)’이 거의 유일했다. 문제는 고령 환자에서 회복 기간이 길고 합병증으로 뇌졸중이나 심할 경우 사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를 개선한 치료법이 바로 TAVI 시술이다. TAVI는 가슴을 열지 않고 허벅지 동맥에 가늘고 긴 의료용 관을 넣은 뒤 그것을 통해 인공판막을 체내에 삽입하는 방법으로, 수술 없이 심장판막 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TAVI는 지난 2015년 보건복지부 고시가 발효돼 환자 본인부담금 80%가 적용됐다. 이후 2022년 3월 급여가 세분화돼 △80세 이상으로 △수술 연관 예측 사망률(STS 점수)이 8%를 초과하거나 △의료진 최소 2인이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환자 본인부담금 5%의 완전급여가 적용됐다. STS 점수 4~8% 환자군의 본인부담금은 50%, STS 점수 4% 미만의 저위험군은 본인부담금 80%를 적용받았다.
해외에서 TAVI는 80세 이하의 환자에게도 시술이 권고되는 등 활발하게 시행되고 있다. 대한심혈관중재학회에 따르면, 미국은 2015년 10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총 27만9066명의 중증 대동맥판막협착증 환자 중 14만2953명이 TAVI를 시행했다. 2015~2016년 대동맥판막협착증 TAVI 시술률은 44.9%에서 2021년 88%로 증가했다.
국내의 경우 2024년 기준 중증 대동맥판막협착증으로 인한 수술적 대동맥판막치환술은 2816건, TAVI는 1863건 시행됐다. 아직은 수술적 방법이 표준치료법이지만, 2015~2024년 TAVI는 연평균 45% 정도 성장한 것이다.
정 교수는 “상대적으로 젊은 환자에게 TAVI를 시행할 시 예후가 좋지 않다는 결과는 꾸준히 발표되고 있어 나이에 대한 급여 기준을 일괄적으로 낮추는 것은 신중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재수술이나 고위험군에 대한 나이 제한은 굳이 두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TAVI 시술 건수와 3년 전 국내 선별급여 이후 급격히 증가한 시술 건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건강보험 재정에 미치는 영향 등을 분석해 향후 급여 기준 조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TAVI는 대동맥판막협착증 치료에 있어 분명 효과적인 시술법인 것은 맞지만, 치료재료가 워낙 고가이고 환자 중증도가 높아 실제 시행 허가 규정도 까다롭다.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에 따르면, 대동맥판막협착증 치료 시 순환기내과(심장내과) 2인(중재전문의 1인, 심장초음파 전문의 1인), 흉부외과 2인, 마취통증의학과 1인, 영상의학과 1인 등 각 진료과 전문의로 구성된 ‘심장통합진료팀’에서 논의를 거쳐 SAVR 혹은 TAVI 중 한 가지 치료법을 결정하도록 돼있다. 현실적으로 진료팀 전문의가 전원 합의를 이루지 않으면 TAVI를 실시할 수 없게 돼있고, 전원 일치 판정이 나오지 않으면 심초음파 전문의가 치료 방법을 직권 결정할 수 있다.
이러한 까다로운 조건으로 인해 자칫 TAVI가 필요한 환자가 치료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존 순천향대 부천병원 심장내과 교수(대한심혈관중재학회 보험이사)는 “환자나 보호자는 현재 가이드라인에 제시된 TAVI 시술 여부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를 공유 받고 스스로 치료 방침을 결정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다”며 “환자를 오랫동안 관찰해온 주치의조차도 자신의 지식과 판단으로 환자 치료를 결정할 수 없다. 더군다나 진료팀 전문의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치료는 무산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TAVI는 대동맥판막협착증 수술의 차선책이 아닌 새로운 표준치료로 증명됐는데도 불구하고 수술 대신 TAVI가 적절한가 여부만 판단하는 후진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라며 “모든 중증 대동맥판막협착증 환자가 TAVI라는 치료법이 있음을 공지 받고 순환기내과, 흉부외과 전문의들이 협의해 최선의 치료 방침을 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