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급속한 인구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로 의료 환경이 급변하면서 의료 인공지능(AI)이 미래 의료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영상 진단, 병리 분석, 개인 맞춤형 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의 정밀도와 처리 속도는 임상 전문가를 능가하거나 그에 필적할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 AI의 오작동에 따른 법적 책임 문제 등 넘어야 할 산도 많아 의료계와 기술 기업 간의 협력과 정부의 제도적 정비가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서울 중구 서울신라호텔에서 ‘2025 세계 바이오 서밋’이 열린 가운데 ‘의료 AI의 미래: 글로벌 협력과 지속 가능한 혁신’이라는 주제로 발전하는 글로벌 의료 AI 현황과 올바른 활용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전문가들은 AI가 고령화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증가하는 의료 수요에 대응하고, 암·치매 등 사회적 부담이 큰 질환에 대한 조기 진단과 치료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최근 AI가 수천 건의 의료 데이터를 분석해 의사의 진단을 보조하거나, 환자의 유전체 정보를 바탕으로 최적의 치료법을 제시하는 기술도 상용화 단계에 들어섰다. 한국에서도 AI는 진단 보조 분야, 중환자실, 응급실 등에서 활용되고 있다. 관련 시장 전망도 밝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의료 AI 시장은 오는 2030년까지 연평균 4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AI는 신약 개발에도 활용되고 있다. 유키히로 히사나가 일본의학연구개발기구(AMED) 국장은 “AI 기술은 매우 잠재력이 높은 신약 물질을 개발하고 그 기간을 짧게 만들 수 있으며, AI를 접목한 의료기기 소프트웨어가 정밀화되며 질병의 조기 발견과 진단의 정확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AI는 의료 현장에서 의료진의 의사 결정을 돕고 업무 부담을 경감시키는 등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삼성서울병원의 경우 병원 내 물류 업무의 75%를 로봇으로 처리하는 등 ‘디지털 병원’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를 통해 단순 반복적인 물품 운송은 물론, 환자 이동 지원까지 로봇이 대신하면서 의료진은 환자 진료와 돌봄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차원철 삼성서울병원 디지털혁신센터장은 “병원에 로봇과 AI를 도입하면서 간호사 등 의료진의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여 환자 돌봄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며 “여기에 생성형 AI 기반 임상 의사 결정 지원 시스템(CDS)까지 접목해 진단 정확도를 높이고, 의료비 부담을 낮추는 디지털 전환을 추진 중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의료 AI 도입이 확산되면서 새로운 도전 과제도 부각되고 있다. 의료 AI의 오작동에 따른 법적 책임 문제, 의료기관 간 인프라·기술력 격차로 인한 지역 간 의료 형평성 문제, 그리고 환자 데이터의 프라이버시 보호 등 윤리적 쟁점이 그 중심에 있다.
전문가들은 기술의 발전은 빠른 반면 이를 보조하는 규제나 보호 장치는 미흡하다며 글로벌 협력과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박기동 세계보건기구 서태평양지역 사무처(WPRO) 국장은 “정보 편향성과 프라이버시, 형평성, 투명성 문제 등 보건의료 AI 사용에 있어 잠재적인 우려가 있다”며 “나라별로 AI 기술 준비 정도에도 편차가 있어 근거 기반의 보건의료 AI 활용을 위한 표준 거버넌스 규제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주한 서울대 연구부총장 겸 산학협력단장은 “AI는 매우 강력한 문제 해결 파트너인 것은 맞지만, AI가 인간의 편견을 반복하거나 개인정보 보호를 위배하거나 불투명한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어 전반적인 통제가 필요하다”면서 “AI가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강력한 윤리적 기준 확립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