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가 30돌을 맞은 부산국제영화제 시작을 알렸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어쩔수가없다’(감독 박찬욱) 기자회견이 17일 오후 부산 우동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열렸다. 현장에는 박찬욱 감독, 배우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 박가언 수석 프로그래머가 참석했다.
‘어쩔수가없다’는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 만수(이병헌)가 덜컥 해고된 후 아내 미리(손예진)와 두 자식을 지키기 위해,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켜내기 위해, 재취업을 향한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박가언 수석 프로그래머는 본격적인 기자회견에 앞서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박찬욱 감독, 제작사 모호필름, 배급사 CJ ENM 그리고 (무대에) 같이 오른 배우들까지 당대 최고 영화인이 함께 완성한 작품”이라며 “한국 영화의 저력을 과시하는 작품을 개막작으로 선정하게 돼 무척 영광스럽다”고 밝혔다.
박찬욱 감독, 주연 이병헌과 손예진은 개막작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것은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오랫동안 명맥을 이어온 가운데 개막작으로 온 것은 처음이라서 설렌다”고 했고, 이병헌은 “저 또한 제 작품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적이 있나 찾아봤더니 정말 없더라. 기대되고 떨린다”고 덧붙였다.
‘어쩔수가없다’는 미국 소설 ‘액스’를 원작으로 두고 있다. 책을 읽자마자 영화화를 결심했다는 박찬욱 감독은 “소설에 이미 있는 것과 아직은 없지만 내가 보탤 만한 것이 바로 떠올랐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코미디의 가능성이라든가 가족들이 만수가 하는 일을 눈치챈다면 이야기가 대담한 방향으로 나아갈 레이어가 되겠다는 생각이 저를 사로잡아서 오래 들고 있게 된 것 같다”고 부연했다.

박찬욱 감독은 ‘액스’가 품은 “거대한 역설”에 끌렸다고도 했다. 박 감독은 “개인의 이야기와 사회적인 이야기가 완전히 결합돼서 바깥으로도 안으로도 향하는 영화를 만들 가능성이 있었다”며 “아주 순수하게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사랑하는 직업에 계속 종사하기 위해 한 일이 점차 도덕적인 타락으로 이어지는 것을 다루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직장을 잃은 제지업 종사자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현재 영화산업이 겪고 있는 부침을 떠올렸다는 평에는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이 영화인의 삶을 떠올리시겠냐. 각자 자신의 삶, 자신의 직업이 먼저 떠오를 것”이라면서도 “다들 종이 만드는 일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주인공들은 자기 인생 자체라고 말하지 않나. 영화도 어찌 보면 두 시간짜리 오락거리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가진 것을 다 쏟아부으면서 일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어쩔수가없다’가 한국 영화산업의 중흥에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박찬욱 감독은 “팬데믹 이후 회복이 더딘데 다른 나라를 보면 영영 이 상태에 머무르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저희 영화가 이 늪에서 빠져나오는 데 조금이라도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병헌은 “더 큰 어려움을 겪는 건 극장”이라며 “극장이 이 어려움을 타개하고 또다시 관객에게 사랑을 받는 공간이 될지를 모든 영화인이 생각할 것”이라고 의견을 보탰다.
이같이 묵직한 메시지 못지않게 깊은 여운을 남기는 미장센도 주요 요소다. “아름다운 작품”이라는 박희순의 말대로 박찬욱 감독 특유의 미장센은 관객을 압도한다. 특히 만수 가족의 집은 미장센의 집약체다. 박 감독은 “만수가 그토록 애정하는 집이 중요했다”며 “그 집을 찾는 데 많은 시간이 들었고, 미술팀이 개조했다. 시각적 요소에서는 온실과 정원 등이 제일 중요했다”고 귀띔했다.
작품 속 미술만큼 배우에게 전달한 디렉션 역시 정교했단다. 이는 ‘어쩔수가없다’를 극장에서 봐야만 하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이병헌은 “긴 시간 작업을 함께한 배우로서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한 번 볼 때와 두 번 볼 때가 다르다”며 “미장센을 새롭게 발견하고 왜 그때 감독님이 그런 주문을 하셨는지 깨닫는다. 그 디테일을 극장의 큰 화면으로 보셔야 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