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수련환경 개선하려면…“근무시간 줄이고 정부 지원 늘려야”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하려면…“근무시간 줄이고 정부 지원 늘려야”

전공의 복귀 뒤 최대 쟁점 ‘근무시간 감축’
“사회가 의사 길러낸다는 인식 만들어야”

기사승인 2025-09-18 06:00:27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박효상 기자

전공의 복귀 이후 주 100시간 이상이었던 근무시간을 줄이고, 정부의 지원은 늘리는 방식으로 수련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선 정부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지난 1일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에 복귀한 뒤 수련환경 개선이 병원과 의료계의 핵심 과제로 부상했다. 특히 개선 방안을 둘러싼 논의 가운데 가장 큰 쟁점은 전공의 근무시간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전공의법)은 전공의의 주당 근무시간을 80시간, 연속 근무를 36시간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전공의들은 이 규정이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아 근무시간 단축으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주 100시간 이상 근무하는 일이 빈번하다고 지적하며 실효성을 문제 삼고 있다. 

법으로 정한 근무시간이 지켜지지 않는 주된 이유는 인력 부족이다. 내과와 외과 등 필수 진료과는 전공의 수가 적어 당직 근무를 주 80시간 이내로 유지하기 어렵다. 지방 병원은 대체 인력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잦아 근로 한도를 초과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형성되기도 한다.

이처럼 법과 현실의 괴리가 큰 상황에서 전공의들의 과로를 줄이려면 제도 정비와 현장 관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오승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17일 의료공동행동이 주최한 기자간담회에서 “전공의들의 80시간 이상 근무는 의료사고 위험을 높여 환자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다”며 “병원별 초과 근무 실태를 공개하고 이를 점검하는 관리 감독 체계를 보강하고, 법을 지키지 않는 기관에 대한 행정적, 재정적 제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처벌 규정 강화와 함께 정부의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국가의 지원 부족이 전공의를 값싼 노동력으로 활용하게 만든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전공의 과로 문제를 해소하려면 미국과 일본 사례를 참고해 정부가 병원의 전공의 수련 비용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미국은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국가 건강보험인 메디케어와 저소득층·취약계층 의료보장 제도인 메디케이드 재정을 활용해 전공의 인건비를 지원한다. 영국은 국가 의료시스템(NHS)에 따라 전공의 임금을 책정해 지급하며, 일본은 보건의료 담당 부처인 후생노동성 예산으로 병원에 수련 보조금을 지급한다.

조윤정 전국의과대학 교수협의회 회장은 “우리나라는 병원들이 전공의 수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부담을 떠안도록 하고 있다”며 “정부 수련 비용 지원 없이는 제대로 된 전문의 배출이 어렵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전공의 수련비용 지원이 의료 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현 제도에서는 의사 양성 과정에 대한 재정 지원이 없어 의료의 공공성을 기대하기 어렵지만, 국가가 인건비 등을 직접 지원하면 의료계의 인식과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의료의 공공성을 강조하면서 의사 양성에 필요한 비용을 개인에게 맡기고, 의사가 된 이후에 공적 역할을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이 있다”며 “의사들도 공공에 봉사한다는 인식을 강화해야 하지만, 정부 역시 예산을 늘려 사회가 의사를 함께 길러낸다는 인식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과 영국, 일본 같은 국가들이 전공의 수련 비용을 이유 없이 지원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정부가 먼저 환경 개선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찬종 기자
hustlelee@kukinew.com
이찬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