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주가 연일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코스피가 사상최고치 랠리를 이어가는 것과 대조적이다. 미국 관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데다 노란봉투법과 관련한 우려까지 더해지며 주가를 억누르고 있다. 외국인과 기관이 연일 매도에 나서며 수급 공백도 이어지고 있다.
22일 한국거래소(KRX)에 따르면 KRX자동차 지수는 이달 들어(9월1~22일) 2.9% 하락했다. 같은 기간 현대차는 1.1% 빠졌고, 기아도 4.3% 내렸다. 코스피가 10.4%나 오른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부진이다.
외국인은 이 기간(9월1~22일) 기아를 1251억원, 현대차를 799억원 어치 순매도했다. 기아와 현대차는 각각 외국인 순매도 상위 7위와 11위에 올랐다. 기관도 같은 기간 현대차를 1336억원 어치, 기아를 1055억원어치 팔아치웠다.
관세 여파, 일본차 대비 가격 경쟁력↓
미국 관세 악재가 자동차주에 대한 투자심리를 위축시키는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국내 자동차 업체는 미국으로 수출하는 자동차에 대해 25%의 관세를 적용 받고 있다. 지난 7월30일 미국과 관세협상에서 자동차 관세를 15%로 낮추는데 합의했지만 후속 협상 타결이 교착 상태에 빠졌다. 미국은 3500억 달러(약 485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안을 두고 한국을 압박하고 있지만 양국은 여전히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특히 미국이 일본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15%로 낮춤에 따라 국내 자동차 업체들의 가격 경쟁력이 더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그간 국내 자동차업체는 지난 2012년 발효된 한미 자우뮤역협정(FTA)에 따라 미국으로 수출하는 차에 대해 0%의 관세, 즉 무관세 특수를 누려 왔다. 덕분에 2.5%의 관세를 적용받았던 일본 자동차업체보다 가격 측면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지난 4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동차 품목 관세를 부과한 이후에도 한국은 25%, 일본은 27.5%의 관세를 적용받았다. 하지만 지난 16일부터 미국은 일본이 수출하는 자동차에 기존 27.5%에서 12.5%포인트(p) 인하한 15%(기본관세 2.5%+품목 관세 12.5%)의 관세를 적용하기로 하면서 상황이 뒤바뀌었다. 일본 자동차 업체의 미국 시장 내에서의 상대적인 부담이 줄어든 것이다. 이번 조치로 일본 완성차 업체들은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건 물론 마진 개선 효과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기준 일본과 한국은 각각 미국 자동차 수입 시장 2위와 3위를 기록했다. 일본은 미국에 150만대의 자동차를 수출했으며 수출액은 399억 달러였다. 한국은 143만대를 판매하며 374억 달러의 수출액을 기록했다. 작년엔 미미한 수준이었지만 올해 관세 격차가 벌어지면 그만큼 한국 기업들은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불리해진다.

“관세 지속 시 현대차 월 4000억, 기아차 3000억 비용 발생”
실제로 호세 무뇨스 현대자동차 사장은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2025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15% 관세를 적용받는 일본이 경쟁 우위를 가질 수 있다. 매출을 늘려 마진을 유지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같은 날 올해 영업이익률(OPM)을 종전보다 1%p 낮춘 6~7%로 조정한다고 밝혔다.
미국 관세 부과 영향으로 현대차와 기아의 올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5.8%, 24.1% 줄었다. 관세 정책에 따른 두 회사의 영업이익 감소폭은 1조6000억원에 달했다. 2분기엔 미국 내 재고 물량을 소화하는 방법으로 충격을 최소화 했다. 문제는 3분기다. 재고가 이미 소진된터라 2분기보다 이익이 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현욱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수준의 관세가 지속되면 현대차와 기아차는 각각 월 4000억원, 3000억원 대의 비용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남주신 DB증권 연구원은 “미국 관세 25%에 대한 부담과 상대적으로 경쟁사(일본 업체) 대비 불리해진 영업환경을 반영해 현대차의 올 3분기와 4분기, 내년 실적 추정치를 하향 조정한다”면서 “따라서 목표주가도 종전 29만원에서 27만원으로 낮춰 잡는다”고 밝혔다.
앞서 미국은 일본과의 관세 합의 후 실제 관세 인하 발표까지 56일, 영국의 경우 53일이 걸렸다. 우리나라의 경우 당장 9월 말에 관련 협정이 원만히 체결된다 해도 올해 안에 자동차와 차부품 관세 인하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노란봉투법, 하청 많은 자동차 업계에 부담
지난 9일 공포된 ‘노란봉투법’이 내년 3월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는 것도 자동차 업체의 주가 상승을 억제하는 요인이다. 매년 불거지는 노조 리스크가 자동차주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히는 상황에서 노란봉투법 영향으로 사용자의 범위가 확대될 경우 노조 문제가 이전보다 더 빈번하게 발생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현대차와 기아 등 완성차 업체는 협력업체가 매우 많기 때문에 부담이 아닐 수가 없다”면서 “현대차가 로봇전문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하고 미국에 260억 달러(약 36조원)를 투자해 로봇 생산 공장을 세우는 등의 적극적인 활동이 이런 문제와도 완전이 별개라고 볼 수 없다”고 짚었다.
현재 현대차는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을 마쳤지만 기아는 여전히 매듭을 짓지 못한 상황이다.
일각 “관세 시간이 해결…밸류에이션+주주환원 ‘긍정적’”
다만, IT 대장주들에 비해 주가가 상승하지 못해 가격(밸류에이션) 매력이 있다는 점과 주주환원 총주주수익률(TSR) 35%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 향후 3년간 자사주 매입 4조원 약속을 유지한 점 등은 주가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관세 문제만 해결되면 이런 긍정적인 요인들이 주가를 끌어 올릴 것이라는 설명이다.
송선재 하나증권 연구원은 “미국 관세에 대한 우려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희석될 것”이라면서 “견조한 이익흐름과 낮은 밸류에이션, 우수한 주주환원 등의 투자매력이 유지되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