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악관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전제 조건 없는 대화’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이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북미 대화 재개의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촉박한 아시아 순방 일정과 미국의 기존 비핵화 원칙을 고려할 때 실제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27~29일 일본 방문 일정을 조율 중이며, 이후 29일 한국을 찾을 예정이다. 외교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에 긴 시간을 두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APEC 개막일인 31일까지 한국에 체류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가 29일 하루 일정만 소화한 뒤 곧바로 귀국길에 오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경우 경주에서 김 위원장을 만날 시간적 여유는 크게 제한된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며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 집념을 버리고 현실을 인정한다면 대화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
이에 백악관 관계자도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트럼프 행정부는 핵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도 북한과 대화하는 데 열려 있느냐’는 국내 통신사 질의에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전제 조건 없는 대화에 여전히 열려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완전한 비핵화’를 원칙으로 고수하는 만큼 북미 간 요구 조건의 간극은 여전히 크다.
한국 정부는 이번 북미 접촉 가능성을 두고 직접 중재에 나서기보다는 한발 물러서 있는 기조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역할을 ‘페이스메이커’에 비유했다.
이는 남북·북미 대화의 직접 중재자가 되기보다는 대화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의미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에서도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이끄는 것은 미국의 몫”이라며 북미 간 직접 대화가 우선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외교가에서는 북미 정상회담의 문이 닫힌 것은 아니지만, 이번 APEC에서 성사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다만 양측이 모두 대화 의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한 만큼 향후 북미 협상 재개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강경화 신임 주미대사는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에 입국해 부임 일성으로 “(한미 간) 난제들이 꼬여 있는 만큼 저뿐 아니라 공관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문제들이 잘 풀릴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