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태평양(APEC) 지역은 전 세계 에너지 사용량과 더불어 탄소배출량의 60%가량을 차지하고 있기에, 이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전 세계 기후위기 완화 및 번영 여부를 크게 가름할 것입니다.”
‘APEC 2025’를 계기로, 아태 지역 간 협력을 통해 탄소중립 및 에너지 안보를 제고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에너지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는 자리가 마련됐다. 특히 최근 세계은행이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원자력발전 사업에 대한 금융 지원을 재개한 만큼, 원전을 활용한 에너지 대전환이 더욱 속도를 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30일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본사에서 열린 ‘2025 APEC CEO 써밋-퓨처테크포럼: 미래에너지’ 포럼은 ‘APEC 지역의 에너지 문제 해결 방안’을 주제로 정부기관, 학계, 산업계 등 이해관계자들이 참석해 토론을 이어갔다.
이날 토론에는 진행을 맡은 최성열 서울대 원자력공학과 부교수를 비롯해 임승열 한수원 해외사업개발 수석부사장, 제인 나카노(Jane Nakano)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 묘 민트(Myoe Myint) 세계은행 선임 에너지 담당관, 마크 듀렛(Marc Duret) 프라마톰(Framatome) 개발·판매 담당 이사가 참석했다. 프라마톰은 프랑스전력공사(EDF)의 원전 자회사다.
최성열 서울대 부교수는 아태 지역의 높은 에너지 사용량 및 탄소배출량을 지적하며, “많은 APEC 국가들이 급성장을 목표로 하면서도 에너지 안보, 경제성, 지속가능성의 균형을 맞춰야 하는 복잡한 과제에 직면했는데, 아태 지역의 핵심 에너지 과제는 무엇이냐”고 질의했다.
이에 제인 나카노 CSIS 선임연구원은 “APEC은 매우 역동적인 지역이기 때문에 에너지 집약도(효율)를 개선해야 하고, 재생에너지원 비중을 2010년 대비 2030년까지 두 배 이상 늘려야 하는 목표를 갖고 있다”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선 재생에너지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며, 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면서도 제한된 토지 면적만을 필요로 하는 고용량 옵션인 원전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친환경 에너지원들은 석유·가스 등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의 취약점과 재정적 과제를 해결해 준다”면서 “아울러 액화천연가스(LNG), 수소와 같은 저탄소 연료 등 APEC 경제권이 활용할 수 있는 기술과 자원 측면에서 여러 선택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임승열 한수원 수석부사장은 APEC 신흥국의 원전 도입 검토가 증가하는 흐름에 대해 언급하면서, 한국의 과거 사례와 현재 보유한 기술력이 그 해답이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임 부사장은 “1960년대 이후 한국은 제조업 중심의 수출 지향적 국가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천연자원이 없었기 때문에 원자력에너지 산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며 “이 결정 이후 한국은 철강, 선박,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국가 중 하나가 됐고, 1971년 고리1호기 건설 시작 당시 250달러 수준이었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현재 150배 증가한 3만6000달러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원전이 단순히 경제 지표를 넘어 관련 산업의 전문성, 과학 및 공학 역량 발전에도 기여한 바, 궁극적으로 고도의 숙련된 인력을 양성해냄으로써 가장 강력한 원전 공급망을 보유하게 됐다”며 “원전 투자는 단순히 발전(generator)의 영역이 아닌 국가 역량에 대한 전략적 투자”라고 강조했다.
 
임 부사장은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APEC 회원국의 원전 도입 검토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고려해야 할 핵심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신규 원전 건설을 위해 △법·제도적 규제 체계 △프레임워크 구축 △인적 자원 확보 △자금 조달 △안전문화 정착 등 19개 핵심 인프라 영역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은 강력한 정부의 지원과 일관된 정책 추진으로, 통합 프로젝트 관리 역량을 갖춘 유능한 공급업체나 파트너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또 원전 사업은 장기 프로젝트인 만큼 인적 자원과 산업 기반을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노력이 필수적”이라고 답했다.
마크 듀렛 프라마톰 이사는 원전 기업의 입장에서 ‘표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원전 산업의 성장에 따라 향후 대량생산 형태로 나아가는 가운데, 진정한 과제는 모든 라인이 ‘표준화’돼야 한다는 것”이라며 “공장의 생산능력이 최고 수준이더라도 생산하는 제품이 (나라·지역별로) 각각 다르다면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고객사 및 해당 국가의 규제기관, 지역별 특성 등 각기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관련돼 있기에 표준화는 쉬운 여정이 아니지만, 초회 품질률을 높여 사업 지연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러한 준비(노력)는 필수”라고 덧붙였다.
원전에 대한 금융권의 시각도 변화하고 있다. 지난 6월 세계은행은 2013년 이후 중단했던 원자력 프로젝트 자금지원 금지 조치를 해제하고,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다양한 원자력 관련 지원을 본격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묘 민트 세계은행 선임 에너지 담당관은 “세계은행은 경제적으로 실행 가능한 투자이면서도 신뢰할 수 있는 에너지 공급의 역할에 중점을 두기로 결정하고, 몇몇 국가의 원전 규제 및 공공 인프라 개발 지원, 민간부문 동원 촉진을 위한 대화 등을 시작했다”면서 “해당 국가의 개발 목표와 부합하고, 또한 국가의 재정적 영향과 특정 원자력 요율에 대해서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도국 지원 옵션은 △기존 원전에 대한 재투자 △원전이 없는 국가의 새로운 투자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기존 원전을 보유한 국가의 원전 프로그램 강화 △핵연료 자원 개발 등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면서 “우리는 이 과정에서 확실한 파트너를 필요로 하며, 원전 개발에 있어 광범위한 경험을 가진 한국과 같은 파트너와 함께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